나무늘보같이 게으른 이번 주
이제 검사 날까지 대략 4일이 남았다. 지난주 주말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다들 내색을 하지는 않으나, 온 신경은 오로지 내 건강에 쏠려있었다. 엄마는 오래간만에 끊임없이 요리를 하면서 나를 먹이고, 동생은 기분전환을 시켜주기 위해 궂은 날씨임에도 두 다리가 아플 때까지 나랑 친정동네를 걷고 또 걸었다. 평소에도 늘 교회를 나가는 나이지만, 이번에는 그 마음가짐이 달랐다. 내가 하는 기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전해지고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라는 장소는 왠지 꺼려지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지만, 내게는 가장 힘든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주었던 곳이기에 지금 같은 시기에 내가 완전히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곳은 교회뿐이다.
혼자 있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모르게 자꾸 증상을 검색하게 되고 치료법이나 수술, 혹은 방사선, 항암까지도 찾아본다. 사실 엄마가 20년 전 항암치료를 받으셨고 친척 중에도 암을 앓으셨던 분들이 많아서 일반인보다는 그래도 아는 바가 많다고 자신하지만, 막상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과거 내가 보았던 그 과정들은 단순히 가족의 일이 아닌 게 되었다.
커피도 디저트도 그리고 기름진 음식도 선뜻 손이 가질 않고 나도 모르게 저염식으로 먹는 모습이 예전의 엄마 같다. 그래도 엄마가 이상소견을 발견했을 때는 지금 나보다도 나이가 많았을 때였는데..
요즘 유일하게 생각을 잊는 순간들은
크리스마스 파격세일을 하는 옷들을 보고 골라볼 때,
음악을 종일 틀어놓고 책을 볼 때,
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시청할 때,
그리고 헬스장에서 마음껏 달려볼 때이다.
나는 정말 옷을 좋아했다. 늘 예쁘게 옷을 입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색상에 어울리게 기본 아이템들을 배합하거나 소재가 좋은 옷을 찾아내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가 결혼을 한 뒤로는 소비를 많이 줄였다. 당장의 소비보다는 미래를 위해 남편과 함께 저축을 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으니깐. 사실 당연한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59% 로 가슴을 절제할 가능성이라거나, 혹은 이후 치료의 가능성까지도 듣고 나니 사지도 않을 옷을 고르고 또 고르는 것이 일종의 힐링이 된다. 매장에 가서 손으로 만져도 보고, 거울 앞에도 서보고, 아니면 웹으로 아이쇼핑을 하면서 이 색깔과 저 색깔을 배합해보고 있노라면 잠시 검사나 병원일을 잊을 수 있어 좋다. 덕분에 남편은 하루나 이틀마다 종종 날아오는 옷 사진과 함께 [어떤 색?]이라는 질문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지겨울 법도 한데 늘 신중하게 대답을 해주는 착한 남편.
혹시 큰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가장 예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매일 신경 써서 옷을 골라 입어본다.
우리 부부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특히 연애물이라던지 현대판 사극은 왠지 모르게 그 시나리오가 너무 뻔하기도 해서. 오래전 전 국민이 해품달, 도깨비, 동백꽃필 무렵 등등을 이야기하며 떠들썩했을 무렵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큰둥하던 내가 어제부터는 도깨비를 본다. 하하
말도 안 되는 캐릭터와 내용이라고 비웃던 내가 세상 열심히 보고 있다니.. 수업 준비도, 그간 했던 영어공부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그래도 이 도깨비가 내 정신을 쏙 빼놓는다.
저녁에는 아무리 그날 수업 이동 거리가 길었어도, 수업 시간에 기운을 뺐어도 반드시 헬스장을 간다. 마음껏 달릴 때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나의 호흡과 보폭, 그리고 속도에 신경을 쓰게 되니 좋다. 그리고 내가 뛰어야 우리 남편도 뛰기 때문에 - 남편이 옆에서 열심히 뛰고 운동할 때가 가장 기쁜 나는 힘이 들어도 더 열심히 뛰게 된다. 사실 검사 앞두고 이렇게 뛰어도 되나 싶긴 하지만.. ㅎㅎ 어차피 검사하면 지혈 때문에라도 못 뛴다고 하니 남은 이번 주는 열심히 뛸 예정이다.
매해 크리스마스를 참 기대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초를 불고 캐럴을 들으면서 함께 식사를 하고, 교회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을 다해 축복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즐겁다. 그러나 올해 12월은 건강검진을 한 이 달 초부터 마치 광야에 있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가슴 졸이는 연말이라니.. 거리에 데이트를 하고 연말답게 레스토랑에도 가는 사람들의 저 염려 없는 표정이 부럽다. 물론 그들에게도 걱정거리가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당장에 큰 병 걱정은 안 하고 있을 테지. 본래 여행도 계획했고, 수업도 좀 더 늘릴 계획이었고, 내년에 다시 기관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우선은 모두 정지상태다.
검사 결과가 긍정적이라서 가까운 곳으로라도 우리 기쁨이랑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요즘 매일같이 듣는 곡-
[깊어진 삶을 주께]
은혜로 날 보듬으시고
사랑으로 품어 주셔도
내 마음 한 자락도 지키지 못하는
이 모습 부끄럽습니다
따스한 곁을 내어주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표현 못 할 긍휼로 나를 붙드시는
주 이름만 바라봅니다
매일 마주한 슬픔을 견뎌 나가며
주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네
두려운 걸음마다 주가 동행하니
주 의지하며 오늘을 걷네
주의 신실한 소망을 깊이 담으며
주 예수의 풍요를 채워가네
하나님의 자녀로 명예 지켜가며
깊어진 삶을 주께 드리네
따스한 곁을 내어주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표현 못 할 긍휼로 나를 붙드시는
주 이름만 바라봅니다
매일 마주한 슬픔을 견뎌 나가며
주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네
두려운 걸음마다 주가 동행하니
주 의지하며 오늘을 걷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