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7만 명의 구독자가 되었다. 라이브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1개월 만이다. 중국에서 라방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1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해야 하는데 제법 그럴듯한 제휴나 협력 제안을 받기까지는 3만 명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미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갖춘 왕홍의 경우라면 상황은 다르다)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위챗과 연동 가능한 앱 개발이다. 프로그래머인 지인과 함께 설계를 하고 앱 개발 중에 있다. 지인이 앱을 만드는 동안 나는 꾸준히 라방을 하는 동시에 판매 가능한 상품을 물색하고 앱에 얹을 수업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5월 말에 코엑스에서 하는 화장품 박람회에 가서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고, 문구점들을 돌며 문구 트렌드를 알아볼 생각이다. 중국에서도 통할 만한 상품과 트렌드를 미리미리 공부해 놓는 것이다.
구독자가 늘수록 협업 제안도 많아지는데 작년에는 공부하는 셈으로 미팅까지 했었다면 최근에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주고받는 선에서 정리한다. 이유는 올초 홍콩 측과의 협업 논의 과정에서 사람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대련 사무실을 정리하고 홍콩에 있는 일본어학센터와 유학 사업을 해보고자 시장조사차 심천에 내려갔었다. 이 사안에 대해 몇 개월 동안 논의해 온 터라 말은 시장조사였지만 홍콩 측에서 사무실을 미리 점찍어 놓고 나는 가서 결정을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가서 지도를 펼쳐놓고 다녀보니 사무실 자리 주변의 초중고등학교 개수, 교통 인프라, 식당, 경쟁 학원들의 입지를 고려한다면 절대 선택할 것 같지 않을 곳들로 후보를 골라 놓은 것이다. 나중에 보니 홍콩 측에서 세금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고 홍콩과 가까운 곳을 우선하여 내게 보여준 것 같았다. 학생 유동성이 높은지는 생각조차 안 한 것 같았다. 세무나 법적 문제를 충분히 조사한 것 같지도 않았다. 홍콩 측에서는 홍콩 세무사 말과 심천 세무사 말이 달라서 혼동이 있다고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러 세무사와 변호사를 만나서 조언을 듣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준비라는 건 할 수조차 없다. 앞으로 달리며 대응만 하면서 가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홍콩 측 일본어학센터장과 함께 경쟁 관계의 학원들을 돌면서
‘심천에 한국어센터장으로 와 달라는 제안을 몇 달 전에 했으면서 정작 내가 오기 전까지 경쟁 학원들은 한 군데도 제대로 안 돌아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깊은 실망감이 들었다. 공동 투자가 아니라 홍콩에 있는 일본어학센터 측에서 법인을 세우고 나는 한국어센터장으로 가기로 한 것이라 만약 사업이 잘 안 된다면 홍콩 측의 손해가 클 터였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내가 심천에 왔을 때 학생 관리와 강의, 마케팅뿐 아니라 세무나 공안 관련 이슈까지 신경을 써야 할 터였다. 문제가 생길 시 홍콩 측은 ‘홍콩에서만 사업을 해서 본토 법은 잘 모른다’며 손 놓고 있을 거였고, 나는 어떻게든 여길 살리겠다며 물불 안 가리고 심장이 터져라 여기저기 뛰어다닐 게 눈에 선했다. 세금이나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홍콩은 심천 지역을 버리고 홍콩으로 철수하면 된다지만 외국인인 나는 5년 추방을 당하게 되어 중국 시장 전체를 잃는 꼴이 된다. 게다가 중국은 생활용품은 물론 부동산, 자동차, 여행 상품, 유학 프로그램 등 모든 것이 온라인 시장으로 옮겨가 있는데 홍콩 측은 ‘홍콩은 오프라인 위주라서요, 일본은 온라인으로 학생이 잘 안 모이던데요’ 하면서 본토 SNS 계정은 개설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대륙 시장에 들어온다면서 ‘홍콩은 안 그래요, 일본은 안 그래요’는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러시아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베트남 시장에 들어오면서 ‘러시아는 이렇게 안 더워요, 러시아에서는 오토바이 많이 안 타요’ 하는 것과 같다. 이 같은 상황을 심천에서 20년 넘게 금융업을 한 지인에게 털어놓으니
“홍콩과의 미팅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홍콩의 자본을 활용해 온라인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할 수는 있지만 네게 리스크가 커. 아직까지 심천에 제대로 이름난 한국어 학원이 없다는 건 아직 아무도 본격적으로 손 안 댔거나 위험이 크고 돈이 별로 안 된다는 얘기지. 오프라인 시대는 끝난 지 오래야. 중국은 온라인 경제가 급속하게 크고 있어. 반면 홍콩은 예전의 홍콩이 아니지. 사고방식도, 사업하는 방식도 본토에 한참 뒤처져서 홍콩 시장은 점점 작아질 거야. 중국 온라인 시장의 황금기는 앞으로 길어야 5년이야. 5년 후 한국 기관이나 대형 중국 기관들이 대거 진출하면 독점 체제가 형성되고, 네 기회는 매우 줄어들게 돼. 나이도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생길 거고, 시장 규제는 점점 더 강화되겠지. 현재 한국은 겉으로는 한류와 첨단 기술, 유학 비용의 경쟁력 등으로 매력적이지만, 홍콩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시장이 협소해지고, 사고방식이 굳어지고, 고령화와 자본의 한계로 결국 국가 경쟁력이 약해질 거야. 5년 남았어. 한국이 가진 매력을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5년 안에 반드시 네 시스템을 만들어.”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몇몇 대만, 홍콩의 사장님들과도 얘기를 나눈 후 고심 끝에 홍콩 측에 ‘함께 하기 어렵겠다’고 말하니
“윤 선생이 안 오더라도 우리는 심천에 진출할 겁니다.”
라는 답을 받았다.
“예. 응원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줌 화면을 끈 채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먹먹해졌다. 머리는 무거웠지만 가슴은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