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 페루 3
생각하지도 못한 사고로 매일 새벽 수영 일 킬로미터, 일만 보를 걷던 나는 깁스와 함께 방 안에 갇히고 말았다. 최종 합격은 되었지만 남미에 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일단 깁스를 풀 때까지 정해져 있는 교육 일정을 최선을 다해 소화하기로 했다.
온라인 교육이 끝나고 한 달 정도 후에 열린 오프라인 교육에는 반깁스를 하고 참여했다. 1주일 동안의 합숙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간다, 못 간다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흔들리게 마련, 회복 중인 팔에 좋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조금씩 회복세가 빨라졌다.
교육이 끝나고 파견 일정이 정해지자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왔다. 솔직히 그 당시 내 자신감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자신감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던 나였지만, 깁스와 함께 몸도 마음도 굳어져 버렸다. 마침 한겨울이어서 밤새 눈이라도 온 날 아침이면, 팔을 다쳤던 새벽 눈길이 떠올라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쩐다, 내가 남미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 몸조차 마음대로 못하면서…’
‘아니야, 이대로 포기한다면 후회는 물론, 지금 포기한 것이 내 발목을 계속 잡을 거야.’
병원 주치의는 팔은 다 나았다며, 선뜻 남미행을 지지했다.
‘그래 가자, 일단 가자, 팔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질 거야!’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S와 연로하신 시부모님, 친정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1년이었다. 파견 전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생각 외로 많았다. 은행, 카드, 자동차 등 행정적인 업무부터 시작해서 예방주사 맞기까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건강과 직결된 예방주사. 꼭 맞아야 하는 황열, 파상풍, A형 간염, 장티푸스, 독감 외에 개인적으로 폐렴과 대상포진까지 맞았다.
행정적인 정리와 함께 짐 싸기를 시작했다. 팔 때문에 짐은 최소한으로, 옷은 당장 입을 것 몇 벌만, 신발도 운동화 두 켤레, 화장품도 3~4개월 쓸 것만, 그 대신 전기밥솥과 정수기, 얇은 전기담요, 누룽지와 김, 간편식 몇 개를 챙겼다.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짐을 줄여 나갔지만 29인치 대형 트렁크 하나가 어느새 가득 찼다.
출국 날짜가 정해지고, 떠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S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S는 지금까지 나의 선택과 결정을 늘 지지해 주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냈지만, 1년 동안 서로의 일상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허해졌다. 내가 떠나는 날은 일요일, 내가 떠난 후에 읽어볼 수 있도록 짧은 메모를 S가 자주 사용하는 음식 보관 용기 안에 넣어 놓았다. 그래 우리 잠시 떨어져 지내야 하지만 남미에서 만나자. 건강하게.
아, 이제 정말 떠나는 건가. 남미행 비행기를 타면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마구 쏟아질 것 같다.
남미행 비행기를 타면 정말 눈물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