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후 3시 01화

오후 3시

오후 3시의 시작

by 오후세시



# 나는 왜 불안할까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어려운 요즘 집에서 무언가 사부작 거리는 것이 유일학 낙이다. 최근에는 오일 파스텔에 빠져있다. 핸드폰으로 sns를 뒤져가며 금손들이 그려놓은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에 재미 들렸다. 막상 완성한 내 그림이 핸드폰 너머의 그림과 달라 아쉬움도 남지만,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대부분은 만족스럽다. 무언가의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나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활동은 위로가 된다. 어느 날은 몸이 안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일상에 불안감이 들었다. "집안일할 건 없나." "그림을 그려볼까"라는 생각은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불안감을 떨쳐버리는 수단을 찾기 위해 우러나왔다. 오래도록 우러나면 씁쓸한 홍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불안함이 우러나는 듯하다.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을 붙잡고 있는 내가 싫어진다.


" 난 왜 이렇게 생산성에 집착스러울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뛰어들었다. 대학원 공부와 함께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것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오던 나의 생활에 지진과도 같은 충격을 주었다. 만만치 않은 등록금과 수익이 크지 않은 이 진로에서 경제적인 불안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안 그래도 걱정이 많고 예민한 성격까지 더해져서, 하루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면 꼭 '잘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30대가 되어 나름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이렇게 '불쑥 튀어나오는 낯선 나'를 수용하는 것은 과제에 가깝다.




# 오후 3시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나서 집에 혼자 있는데, 시간 대비 나의 효율성에 다시 의문을 갖게 되었다(다시라고 적었지만 이때의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해서 나를 평가하려 들었다).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시계를 보면서 내 신세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전이었다면 하루를 계획하고 가보고 싶은 곳을 나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또 점심만 돼도 오후에 계획을 세워보고 실행할 수 있다. 또 그것이 설령 실패하고 재미없는 계획이라 할지라도 돌이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후 3시는 말이 좀 다르다. 무언가 계획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실행하기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시간. 그리고 돌이키지 못할 내 선택 하나하나에 신중해지는 시간. 그 신중함 때문에 용기가 적아지고 겁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차라리 저녁이라면 하루가 마무리되어간다 치지만, 앞으로 있을 시간이 텅 비어있으나 딱히 할 것도 없어, 나조차도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후 3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지금의 나와도 같구나 생각했다. 애매한 시간이 꼭 지금 나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하루가 꼭 인생 같기도 했다.

나는 윤 식당이란 프로그램을 참 재밌게 봤는데, 거기서 윤여정 배우님이 해가 져가는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나와 같아서 매우 슬프다고 이야기하셨던 적이 있다. 나 또한 3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면서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여유롭게 시간을 좀 즐겨" 나 스스로가 아 쉼을 허락했다면, 기꺼이 즐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오후 3시'가 전혀 즐겁지 않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이 시간에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데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은 꼭 인생에서 내가 당면한 '해야 할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령 '나는 도대체 집을 언제 소유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던가, '이 직장에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그러다 경력이 단절된다면', 하지만 아이는 가져야 하겠는데... 와 같은 생각들은 "누가 누가 더 긴 기차를 만들어볼까" 내기하는 것만 같았다. 창피하게도 오후 3시를 가리키던 시곗바늘을 보며 눈물이 났다. 나는 이 30대가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걸까. 명색에 상담심리사인데, 스스로 안쓰럽고 불안한 이 마음을 어떻게든 다루고 싶었다.


그 이후 나는 "다 커서 시계 앞에서 울다니"라는 생각에 시계와 대면 대면했다(얼마 가진 않았다). 그리고 애써서 3시에 할 일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느낀 그 불안함과 인생의 고민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나와 똑 닮은 것만 같은 '오후 3시'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미뤄놨던 책을 읽었고, 하루는 운동을 해봤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조금씩 기록하면서 내 마음을 관찰했다. 여전히 불안한 인생을 한 큐에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길고도 자유한 시간'을 어떻게 조립해야 아름답다 느낄까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하면서 이 마음을 내가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나를 좀 더 잘 이해해보기 위해 그동안 공부했던 심리학 전공 책도 다시 펴보았다.


나는 오늘도 오후 3시를 채워가고 있다. 채워가는 와중에도 이따금씩 초조해지고 불쑥 불안해지는 건 여전하지만, 내가 하는 이 고민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언젠가 도자기를 하는 분께 들었는데, 도자기를 빚을 때는 도구나 손으로 잘 눌러주어야 흙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 금이 안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손으로 찰흙을 잘 눌러지고 다져주면서 빚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아마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걷고 있는 듯하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얻어지는 것이 없어도 이 시간을 내가 소중하게 바라보며 내 안에 꼿꼿한 가치로 채워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4시가 되고 5시가 되고, 6시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나를 잘 이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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