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오후 3시를 보며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했던 질문이다.
나는 왜 불안할까.
어디선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안을 더 쉽게
느낀다고 들었었다.
우리는 뼈 아픈 식민지 시절을 거치고,
남북 분단의 해체를 경험하고,
그 힘든 IMF 경제위기를 경험했으나
단기간에 성장을 이룬 나라이다.
빠르게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라고도 불리며
IT의 강국으로 일어섰다.
그 위치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제언이었다.
빨리 이룬 나라인 만큼, "빨리빨리"가
일상화되어 있기에
조금 더딘 것에 익숙지 않은 것이다.
어떤 특강에서 한 교수님은 요즘 MBTI가
유행하는 이유도 그 맥락이라 한다.
MBTI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기반으로 사람의
성격 유형을 나누는 심리검사이다.
성격의 유형을 나누어, 타인을 파악하기 용이하며
나와 같은 유형을 만나는 것에 동족 감을
느끼는 것이 불안을 쉽게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셨단다.
내가 알 수 없는 사람을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짓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좋은 토대가 된다.
만약 판단에서 나는 f인데,
타인은 t라는 걸 알게 되면
이유 없이 "저 사람은 왜 이 감정 하나 이해 못하지"
보다 "아 저 사람은 이성이구나, 난 감정이고"라고
이해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f라 t를 이해 못한다.
감정이 우선이지! 안 그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실제로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는 국민의 8명 중 한 명이
항불안제를 복용한다고 보고한다.
또한 치열한 입시주의 역시 기반이 불안인데,
빠른 성장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거나
엄마 아빠의 열등감에서 낳은
학벌주의에서 오는 불안이라는
이야기를 상담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주인공, 아들러.
나는 아들러를 참 좋아했더랬다.
아들러 아저씨는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이고,
우월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적당한 열등감은 인간을 건강하고
능동적이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열등감이 커서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게 되면,
내가 내 삶의 가치와 주인공이 아닌
다른 것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다른 것은 부모나, 부자, 강남 빌딩 몇 채 뭐 대략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열등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고, 가족 내 출생순서(실제로나 심리적으로나)로도 영향을 받는다.
여담으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아들러 학파가 일본을 거쳐서
원래의 개인 심리학과 조금은
변형이 생겼다고 한다.
(다른 이에게 들었지만 나도 한표, 개인심리학을
배운 내용과 미움받을 용기에서의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다시 돌아와 아들러는 사람이 가진 열등감이
건강하고 인정하며 건강한 우월성이라는 목적을 추구할 때,
그리고 그 삶이 공동체 안에서 이뤄질 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이 열등감이
적당하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열등감이
더 나은 나를 바라보며 건강하게
목적을 설정하며 살아갈 때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그런 열등감을 가진 나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질 것이다(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가).
왜 청소년을 주변인이라고도 하지 않나.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호르몬으로 뿜 뿜 해서도 있지만..
대표적인 뜻은 아이에 속하지도,
어른에 속하지도 않는 나이라서
그리 부른단다.
근데 그렇게 치면 서른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왠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온다.
마치 장애물 달리기의 선수처럼
연애 혹은 결혼, 육아, 직장에서의 위치,
안정적 경제 상황들을
술 술 뛰어넘어야 할 것만 같다.
왜? 우리는 20대를 그렇게 바쳐왔으니까
보상은 30대에 주는 거 아닌가
아쉬움마저 억울함으로 변하고,
그 변하는 시간마저 아깝게 가고 있는 것이 서른 같다.
아직 달달한 것을 좋아하고,
기분 좋으면 내적 댄스도 추고
(집에서는 외적 댄스도 가능)
혼나면 기분 나쁜 건 20대나 다름없고,
아직 내 삶도 잘 살 자신이 없는데
결혼은, 육아는, 직장은
왜 계속 나에게 소일거리마냥,
해결 안 하면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졸 졸 따라오는지...
아들러 아저씨 이야기와
우리나라에서 서른 쟁이들의 위치를 보자 하면
열등감 때문이다.
취업해서 장애물 하나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앞에 또 있고, 빨리 뛰지 않으면
옆에서 보란 듯이 앞서 나간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꼭 내가 열등하게 느껴진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사업가들이 내 나이와 같을 때면
배가 되고, 정신 차리고 보면 로또를 사고 있다.
그러면 또 이런 생각이 든다.
"돈 만이 해결이 아닌데"
결국 나는 이 열등감이 쫓는 방향에서의 것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들러가 말하는 열등감의 순기능을
누리려면, 내가 열등하다는
생각에 빠져있지 않고
보다 나은 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니 나는 더이상
상대가 넘어져야 끝이 날것 같은
이 장애물 달리기 판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직장을 다니는지.
그 가치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바라보는 결혼은 어떤 결혼인지.
씨름 선수가 모래판에서 떠밀리지 않기 위해
발을 모래에 깊숙이 안정적인 곳에 밀어 넣듯이.
내 삶에 이런 기록들을 밀어 놓고
덤벼봐라 태세를 갖추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