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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man Sep 03. 2023

어른이 되는 것

어른이 되는 것

38. 나를 위로하는 것     

위로가 참으로 듣고 싶다. 그런데 내가 나를 위해서 위로하기는커녕 왜 이리 사람들을 위로하는데만 그리 신경을 썼는지 모른다.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잘했어!” 이 말인 것 같다.      

구체적이지 않고 그저 단순하지만 내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한마디 “잘했어!”     

나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늘 분노하고 속상해서 온전히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잠을 못 잔 것도 마음이 아직 힘들다는 이야기였는데, 나를 힘들게만 했던 이들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분노할지에만 신경 썼던 것이 바로 나였다.          

마음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런 치료조차 소용이 없을 만큼 제대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받은 상처를 그저 감추기만 했고 작은 반창고에 나의 상처를 숨기기만 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치료법이었고, 다시 일어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점점 벌어지는 상처의 크기가 심상치 않다. 몸으로 반응되는 순간 이제는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어려워졌다.           

사람들에게 그 상처를 보여줬다. 어느 정도는 가리면서도 나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수십 번 이야기를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상처를 이야기를 했는데 또 다른 상처로 돌아오곤 했다. 너무나도 실망했는지 그 사람과는 또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더러워서 그저 피해버리는 것이 나였다.           

시간이 흐르면 치료되는 것이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는 나의 상처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점점 더 아파오는 상처가 있다.           

물론 세월에 침식되어 희미해지는 상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어떤 상처건 받아들이는 법을 천천히 배워 나가데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 몫의 아름을 품고 살아갈 힘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리드리드출판)          

세월이 지나 침식되거나 잊히는 상처들은 있지만 깊게 파인 상처는 그리 짧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생각하거나 기억하는 것도 독을 품는 독사 같은 것이기에 품은 독이 언제 우리 몸에 퍼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가능하면 내 안에서 뱉어버리는 것이 가장 먼저인 듯하다.           

상처는 침식되거나 희미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잊힐 수도 있겠지만 늘 언제나 우리 인생 속에서 받게 되는 상처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것 같다. 그러나 방법도 특별한 대안도 없겠지만 성난 파도를 즐기며 버티고 버텨 나아간다면 조금이 나라 살아갈 힘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가능하면 상처 같은 건 받지 않는 게 일쑤겠지만 이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온실 속에서만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버티며, 조금은 내려놓으며 약간의 힘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당장 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은 아닐까 싶다.           

“나는 함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리드리드출판)          

상처를 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억지로 그를 용서하였다 하여도 매일 생각나는 가해자의 모습은 더욱 힘들게만 한다.      

어느 날 그렇게 상처를 무자비하게 주었던 그의 미소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자기가 상처를 준 것도 모른 채 어찌나 친철한 말투와 모습인지 참으로 혼란스럽기만 했다.      

때론 그를 도리어 안쓰러워하고 안타깝게 여기며 용서하라고 하는 가해자 측근들이 참으로 미웠다. 나도 깊게 상처를 받았는데, 솔직히 내 몸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면 직접 보여주고 싶었는데 마음에 깊이 박혀버린 상처 때문에 말로만 대변할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용서하라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당사자라면 그를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자기 가족에게 해를 주었고, 주변 지인들에게 큰 손해를 주었는데도 그렇게 말처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리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꼭 나를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라며 줄곧 말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믿지 못합니다. 아직은 그렇게, 너그럽게 용서할 때가 아닙니다.           

누구도 이해나 관용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리드리드출판)          

용서하고 이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를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악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아닙니다! 용서하는 것보다 그를 내려놓으세요!라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정말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그를 내려놔야 당신이 삽니다.      

내려놓지 않으면 밤낮 그를 간절히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사랑하지 않은 채 복수의 칼날이 당신의 목으로 향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는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점차 그는 커가면서, 나중에는 버거운 상대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내려놓는다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이기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복수하는 것은 그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범죄행위입니다.      

그 답답한 당신의 좁은 방에서 그를 쫓아내십시오. 그가 나가는 순간 자기는 발을 뻗을 수 있고 좀 더 숨 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복수하지 않아도, 내가 어찌 무엇을 한다 하여도 그는 변화되지 않고 내가 아니라 다른 누가 그를 바꿔놓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버리거나 내려놓으세요 그것이 당신이 사는 길이랍니다.           

세상에는 왜 이리 싫은 이들이 많을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받은 이들 덕분에 이제야 내 마음에 울리는 위로가 더욱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남들을 위로하는 것 참 좋고, 그렇게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남이 아닌 때론 가족들이 아닌 나를 위해 간단한 말 한마디라도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39. 나의 길, 너의 길     

연회비를 냈다면,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내가 무엇을 지지하든, 내가 누구를 투표하든 그건 나의 권리며, 나의 선택이 아닌가?     

이런 권리를 내가 하겠다는데 강요하며, 나의 선택에 왜 이리 관심이 높으신가?          

한창 투표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각자 자기가 일꾼이라며 이야기를 건네는 것인데 도대체 그 많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현실에 적합한 사람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하여튼 자기를 뽑아달라며 이야기하는 것이 때론 안쓰러우면서도 그의 열정에 그의 도전에 참으로 대단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온라인으로 좋아요 버튼 하나를 눌렀더니 난리가 났다. 누구를 지지하는 것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이기에 하는 일인데 자기편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했단다. 내가 무엇인데 나의 개인적인 영역까지 침범하며 나를 시험하고자 했던 그의 모습이 참 우습기만 하다. 더욱 회사의 리더에게 전화를 걸어 고스란히 전하는 그들의 잘못된 대응 모습이야말로 참 우습다. 그래서 참 무서웠다. 그 자리가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것인지 개인 영역까지 침범하며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무섭다.           

하여튼 자기를 소개하고, 자기를 강조하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테지만...     

그것이 각자의 울림일 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적을 두며 대치하는 꼴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각자의 열심히 조금이나마 지금의 현실을 바꿔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다.           

잘 알지는 못해도 옆에서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조금이나마 지지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반대편에 있는 그들의 생각은 다소 다른 듯하다. 왜 자기편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상대편을 내려앉으려는 비난의 소리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서로의 비난 소리가 왜 이리 싫은 것일까? 정말 그들은 변화를 원하는 것이며 그 변화를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작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아직도 그 여파가 있어서 그런지 서로가 헐뜯고 이젠 도전조차 못하도록 목 밖으려고만 하는 치사한 그의 행위가 참으로 싫다. 좀 더 양보하고 조금 더 협력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 좀 더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자기가 그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니 그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 같다. 헐뜯고 넘어지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무하다.           

그 자리에 가더라도 그들이 원했던 것들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이 있는가? 어느 누가 되었든 간에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들인데 그래도 상대방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그 자신감은 무엇일까?          

이런 빡빡한 세상이 너무나도 싫다. 그렇게 싸워봤자 남는 것이 무엇이며, 남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그 세상이 온전히 유지는 되는 것일까?          

각자의 다툼이 보기 좋기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들뿐만 아니라 무겁기만 하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나만 할 수 있다는 그 자신감 참 좋다. 리더라면 더욱 그 자신감이 필요하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며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싫다. 하여튼 싫다. 너무 싫다.     

그런데 그것도 싫은데, 누구를 찍으라며 강요하는 것이 참 좋지만은 않다. 누구의 강요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나의 선택이며 권리이다.           

리더가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내가 그것을 따라갈 이유는 분명 없다.     

바보처럼 나의 권리를 빼앗는 일일 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의 인생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참 많다. 이렇게 저렇게 관심을 가지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서 참견하는 못된 꼴을 보여주곤 한다.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잘 가고 있는 인생 속에서 참견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도움보다는 방해를 줄 수 있으며, 감사보다는 불쾌감이 더해져만 간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 결정되지 않는 내 인생이지만     

여러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인생이지만 결국 나에게 주어진 인생일 뿐이다.      

그것은 내가 책임져야 하며, 잘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인생인 것이다.     

내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나의 인생인 것이다.     

남들이 섣부른 훈수를 두어서 남의 인생을 저울질하는 것 참으로 무례한 일이다.      

당신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분명 다르다. 어설픈 잣대를 가지고 당신의 인생이 옳은냥 남들의 인생에 갑자기 껴들어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 일뿐이다.           

“내가 가족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너를 생각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진심인가? 그것이 나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머리를 기르고 싶기도 하고 때론 염색도 하고 싶었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지금 내가 선택해서 내가 하는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파마를 해주고 싶어 하셨다. 솔직히 나는 하고 싶지 않아서 얼마나 때를 쓰며 파마 강요를 절대 방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를 먹고 머리숱이 많이 없다고 생각될 무렵 시키지 않아도 파마를 결국 하게 되었다. 과거 파마하는 것을 너무 싫었던 나였는데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국 했다는 나의 모습이 참 놀랍기만 하다.           

할 수 없이 했던 파마이기는 하지만, 내가 좋았던 것은 좀 더 풍성해진 내 머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결정한 나의 모습이 훨씬 더 좋았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들의 강요로 시작한 것보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그 과정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나중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고집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권리인 것이다.           

각자 가는 인생, 나의 길 너의 길이지만 나름 선을 지키며 자기 길을 걷자.      

가끔 가는 길이 같아 마주칠 수 있겠지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그 길을 걷자.          

하여튼 나는 선택할 것이다. 누구의 이야기보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여 직접 선택할 것이다.     

리더의 선택과 나의 선택은 다를 수 있다. 리더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없다.      

오로지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며, 자기가 미는 사람이 잘할 수 있다는 착각 그만 내려놓으시고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먼저 하시는 것이 먼저다.           

모든 선거든 뒷맛이 참으로 씁쓸하다. 과거를 탓하고 선배들이 그렇게 했다고 우리가 그것을 답습하고 따라갈 이유는 분명 없다. 그것을 끊고 새롭게 시작하는 리더 이번에 다시 세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상대편이 적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우리들의 동료일 뿐이다.           

그런 적대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자리싸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던 상대방의 업적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각자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면서 함께 그 해결점을 찾아가는 모습 그것이 내가 바로 원하는 모습이다. 어느 누가 야당이고 여당이겠는가? 어느 누가 빨간색이고 파란색인가?           

제발 내 색깔과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방하는 것을 당장 멈추고     

제발 나와 성향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깎아내리려는 그의 모습부터 고치자.     

항상 높은 자리는 어렵고 위험한 자리이며, 어느 누가 있던 어렵고 힘들 뿐이다.      

힘을 합쳐야, 좀 더 연대를 이끌어야 우리가 원하는 세상 그것이 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순간 그 길을 가기는커녕 함께 죽는 것이며 무너지는 것일 뿐이다. 당장 철옹성을 무너트리자!          

하여튼 나는 소신껏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다.     

제발 나의 영역까지 침범하며 권리까지 강요하지 마시라.     

각자 갈 길 갑시다!     


40. 나도 모르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힘들었나 보다.     

많은 일들을 정신없게 보냈었는데, 나도 모르게 지쳤나 보다.          

나를 위한 이야기인데도 그리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게 완벽하지 않는데 나를 향한 조언이 곧 나를 향한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연약함을 고스란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미치도록 마음이 무거웠다. 나를 위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참으로 날카롭게만 느껴질 뿐이다. 차 안에서 느껴지는 그 답답함이 내 목을 조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벌써부터 평가해 버린 나의 초라한 모습이 어떠한 변명도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잘 안다고 해서, 나를 위한 이야기라고 해서 뱉어버린 말 한마디가 참으로 쓰디쓰다.     

상담을 전공했던 한 사람과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상담을 할 줄 아는 그의 모습이 상상했던 모습과 참 달랐다. 상담도구를 통해 상대방을 그저 판단해 버리고, 판단해 버려서 상대방의 이야기조차 배제하고 왜곡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의 시선이 참으로 날카롭게 느껴져서, 단지 그의 생각과 경험으로만 나를 판단하는 것 같아 얼마나 불쾌했는지 모른다.           

잘 알지도 모르는데 내가 좀 더 안다며, 상담 기술을 배웠다면 섣불리 판단해 버리고 조언하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 보였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듣기는커녕, 벌써부터 판단해 버린 그의 시선과 말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그 자리가 참으로 어려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부족한 점도 많이 나타날 텐데, 사람인지라 완벽하지 못했을 텐데 나를 향한 조언이 도리어 상처로 남게 된다.          

부족한 사람인데 제법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버겁기만 한 일들을 그저 붙잡으면서 억지로 이어간다. 휴식도 없이, 밤낯을 가릴 것이 없이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 맘 같이 않게 제대로 안 되는 듯하다.           

아침 새벽부터 시작한 일들을 하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는 일들이 참으로 버겁기만 한다. 그런데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일이라 군말 없이 하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커버린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진다.           

쉬고 싶어도 쉬면 늦쳐질 수 있다며 나를 채찍질을 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잔인하기만 한다.     

어릴 적부터 왜 이리 욕심이 많은지? 하고 싶은 일이 왜 이리 많은지? 아직도 부족한 나인데도 버거워 힘들어하는데도 여전히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내 모습이 그저 안쓰럽다.           

그런데 탈이 났나 보다. 휴일도 반납하면서 애써 일을 하고 있는데 된통 탈이 나고 말았다.     

탈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나름 숨기고 있었다. 바쁘게 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저 그렇게 살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나에게 상대방의 조언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쓰던지 그저 뱉고 싶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위한 그 이야기가 참으로 싫었다. 나도 알고 있고 지금까지 무단히 노력했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았던 부분인데, 밖으로 나와 뱉어 나오는 순간 너무나도 창피하면서도 애써 숨기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컸다.           

나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인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더 큰 상처로 돌아온 그 말이 나를 주저앉게 했다. 나를 위한다면 그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면 더 좋았을 텐데...          

정신없이 보낸 하루, 느지막하게 한 퇴근길     

내가 언제까지 이 길을 걸어야 하며, 그 일들을 감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아무런 격려와 칭찬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비난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멍한 기분이 정말 뿌옇게 가득 찼다. 내 앞길이 보이지 않고, 때론 이 길이 참으로 무서워서 급히 멈추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는 것 같지 않고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가득 앉고 들어오는 듯한 큰 부담감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주저앉았다. 조금이나마 반갑게 맞이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의 존재가 이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참 씁쓸하기만 했다.           

주저앉아 손에 쥔 핸드폰을 보면서, 재미는 없지만 멍하게 영상을 보면서 나름 한숨을 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여유도 부리지 못한 채 쉬고만 있는 것이 참으로 불편했는지 아들 여석이 아빠를 향해 한마디를 건넨다. 왜 동생들을 돌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일하고 돌아온 아이의 말한다미가 참 힘들었다. 옳은 말을 건네었겠지만 그 말이 또다시 씁쓸했다. 아빠 힘들어서 그랬어라고 댓 구도 못했다.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해 버렸다. 아이들에게 정말 크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평소와 다르게 소리를 크게 지른 모습을 본 우리 아이들을 온몸이 얼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소리를 계속 질러도 아빠만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내가 지금 대단히 큰 일을 벌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런데 늦어버렸다. 겁에 질려버린 아이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것 같았다.           

괜히 아이에게 퍼부어 버렸다. 나 지금 힘들다며 괜히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 버린 것이다.      

수습도 되지 않고 바닥에 쏟아 버린 나의 분노들을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었다.     

저녁 늦게 퇴근한 아내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었지만 어린아이인 양 말해버렸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며, 참으로 미안하게도 수습해 주기를 바랐다. 벌써부터 아내에게 아이들로부터 문자를 받았단다. 화를 너무나도 낸 아빠가 너무나도 무섭다고..          

사실 많이 힘들었다. 버겁기도 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주저앉고 싶었다.     

솔직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나의 자리에서 주어진 업무 등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잘하면 좋으련만 참으로 부족한 사람인지라 그것조차 부담감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최근 들어 더욱 많은 일들을 해내어 갔다. 내가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참 정신없게 보냈었다. 그런데 그것이 탈이 난 것 같다.           

솔직한 내 마음은 누군가에 잘하는 모습과 함께 몇 년 전 잊히지 않는 그 상처들을 단지 회복하고 싶고, 보란 듯이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욕심을 더욱 부렸던 것 같다.           

그런데 지칠 때로 지쳐서 그런지, 위로받고 싶고 격려받고 싶은데 어느 하나 조언과 날카로운 지적질은 나를 더욱 힘들게만 했다.           

“너 잘하고 있어!”     

“너 참 잘하고 있어!”     

“힘들지? 많이 힘들지?” 이런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잘하고 있는 것에 칭찬보다는 열심을 다하는 나를 향해 작은 위로와 응원이 필요했었다. 그 이야기를 실제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적지 않은 조언들과 말들이 도리어 힘들게 느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내가 가야 할 길이 온전히 잘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모르게 불쑥 뱉어버린 분노     

나도 모르게 힘들어가는 모습과 마음을 읽여졌을 때     

잠시 멈추고, 내 마음부터 채워가는 것이 먼저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다고 잠시 쉬어가자고 이야기하는 내 마음을 먼저 들어줘야겠다는 마음이 오늘따라 더욱 울린다. 


41. 어른이 되는 것     

그림을 보면 고길동의 머리 위에 짧은 문장이 적혀있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너도 어른이 되는 거란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처음 ‘아기공룡 둘리’가 엄마와 헤어지고 고길동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둘리를 구박하는 고길동의 모습에 어린아이들은 둘리를 가엽게 여긴다. 하지만 나이가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둘리보다는 고길동의 ‘고단한 삶’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엄마와 헤어져 온갖 구박만 받는 둘리이지만, 월세도 내지 않는 세입자이지만 도리어 고길동의 집에서 온갖 장난을 치며 문제를 일으키는 둘리의 무례한 모습, 그리고 그 모진 일들을 참아가며 애써 살아가는 고길동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곧, 나의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둘리=세 아이, 고길동=아빠”          

늘 있는 곳이나, 개인적으로도 발전하는 것 참 좋은 일이고 매력적인 일이다.     

다른 이들과 다른 나의 영역, 그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한 처절한 나의 노력이 있었다.     

늘 같은 것들만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똑같은 모습보다는 좀 더 발전된 모습과 다른 모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남들과 비교해 보아도 남달리 잘하는 것이 없었다. 좀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았지 나만의 특별한 영역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왜 이리 비교하며 사는지? 그래도 열심히 사는 것인데, 지금의 삶도 참으로 위대한 것인데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의 존재조차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게 하는 지금들의 상황들이 참으로 버겁게만 한다.           

세상도 참 무섭게 변해간다. 까딱해서는 뒤처지기 일쑤다. 잘못된 생각과 판단, 위치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면 어김없이 판단의 화살이 쏟아진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사람인지라 참 많이 부족한데 어김없이 비난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참으로 버겁다.          

새로 만들고 한 단계 높아지게 되면 또다시 나가야 할 일들이 꼭 생겨났다.      

참 정신없이 메꾸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기만 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래도 좀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아직도 그렇게 비치지 않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그래도 나이를 먹고 점차 위치도 달라지니 예전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에 맞는 말과 행동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나이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억울한 일이 있으면 처음부터 화를 내곤 했다. 나보다 나이를 먹은 이들은 화를 내기보다 피해버리는 것 같아 어찌나 그들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는지... 어른으로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데, 관리자로서 책임을 져줘야 하는데 그저 피해버리고 책임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적지 않게 화를 내곤 했다.           

내가 만나는 어른들은 참 말이 없으셨다. 침묵보다는 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되도록 아끼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어찌 참을 수 있을까? 나라면 화가 나서 이야기해 버릴 텐데 역시 어른의 모습이 참 자연스럽기만 하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가? 아님 무엇의 이유 때문에 그는 참을 수 있을까? 나도 어른이 되면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늘 바쁘게 살았다. 내가 온갖 일들을 하는 것처럼 내가 먼저 뛰고, 더 뛰고 살았다.      

열심히 뛰는 나를 보면서 여유 있게 살펴만 보고 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법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니, 일하지 않고 쉬고 있는 거야?’          

여유 없는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여유 있게 보였고, 나름 열심히 하는 내 모습 때문에 그저 쉬고 있는 듯한 모습 같아서 화가 난 적도 있었다.           

그들이 정말 쉬고 있는 건가? 어찌 그리 여유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SNS를 하게 되면 각자의 영역에서 참으로 열심을 다하는 이들이 참 많다. 각자의 특별한 영역을 만들어서 참 열심히 하는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나 또한 한 영역, 일부이지만 나의 특별한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부분을 생각하면 나를 생각하게 하려고.. 다른 것도 참 많지만 그 영역에만 애쓰면서, 깊이깊이 파 내려갔다. 남들은 그것이 참으로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자기 생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그래도 애써 만드는 나의 모습이 참 대견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 분이 나를 부르시며, 또 다른 영역에서 발전을 이루시기를 말씀해 주셨다.     

비전 참 좋다. 맞는 말이다.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것 참 좋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있었던 것 같다. 참 열심을 다하고 있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들.... 

결국, 내가 발전되고 상황까지 바뀌어버린 것들.....     

너무 오랫동안 한 곳에 있었던 것 같다. 갈아타기보다는, 또 다른 영역에서 발전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길이 참 고단하고 어려워서 인내하며 천천히 준비해 나갔을 때 지금처럼,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부쩍 커버린 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이를 먹고, 점차 변해가지만 마냥 있으면 변화되기보다 점차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고, 세월이 지난다고 내가 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죽어가는 것도 모르면서 오로지 취해 있는 모습이야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어른들이 참을 수 있는 것도, 좀 더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것도 이러한 고된 일들을 지나고 점차 변화시키려는 노력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어 꼰대가 되기보다는 좀 더 젊을 때 노력하고 변화를 천천히 이루어간다면 내가 원하고 바라던 어른들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어른 되기 참 어렵고 고되다!’   


42. 비방의 끝은 어디에     

최근 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2명의 후보가 있었고, 각자의 능력을 내세우며 협회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한다. 대단한 그들의 계획에 한번 더 놀라면서도, 그것을 다 할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각자의 진영을 만들어 참 열심히 선거에 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결국 내가 있는 동료들과,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해준다는 그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결국 당선돼서 그 일들을 잘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결심과 다짐에 응원을 보낸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잊히지도 전에 참으로 혼탁해졌다. 어찌 보면 지저분해졌다.      

어느 순간 상대 후보의 약점을 가지고 비난의 화살을 쏘는데, 저렇게 많이 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하게, 심하게, 선을 넘어서 비방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 그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랄하게, 너무나도 깊숙이 말하는 후보들의 말이 참으로 씁쓸하게 만들었다.      

선을 넘어서 정책을 이야기하고 우리만의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텐데 벌써부터 혼탁해져서 참으로 당황스럽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벌써 작년의 일이었지만,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대통령 선거! 거대 2개의 당으로 압축되어 우리의 후보가 최고다라고 말한 대통령 선거!     

정책을 이야기하기보다 한 후보가 다른 후보의 약점 참으로 안타깝게 이야기를 했었다.           

또한 자기의 정책 비전을 이야기하기보다, 유권자가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정책을 가지고 토론을 하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약점이라는 부분을 참 짓궂게 파고드는 후보의 모습을 보면서, 정책인 부분은 나보다 더 모를까 싶을 정도로 무능력한 모습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런데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은 비방하는 것을 오로지 믿고 동일하게 상대후보를 비난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내 마음조차 무너지고 말았다.           

비난을 하여도 확인해야 할 부분일 테고, 비난한 사람도 그렇게 상대방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또다시 묻고 싶었다. 상대방을 오로지 비난한다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어떠한 심리가 작용되었는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함께 협력해서 비난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일일이 답변할 수 없게 만든다. 답변을 한다고 하여도 상대에게는 핑계로 여겨질 뿐이었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다면 어떻게든 끌어내리는 려는 그 심리는 무엇일까?     

참으로 안타까웠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 선거가 1년이 지나가기 전에 또다시 보게 되었다.      

또 다른 지역의 사람들까지 붙어서 공개된 홈페이지에 도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비난의 글들을 동조하고 공감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내 주변에 그들의 비난을 동조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 또한 남들의 비난에 제법 많이 힘들어하고 억울해하였는데 자기의 지난 과거를 잊어버렸는지, 또 다른 사람을 확인하지 않은 채 비난하는 그 무리에 있는 것조차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억울해했는가? 얼마나 힘들어했는가?      

답변을 해도 또 다른 오해가 있었고,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온갖 비난을 받지 않았는가?     

작정한 기자의 기사거리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가? 그런 모진 비난과 어려움에 있었는데 같이 하지 않을지언정 또다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옳은 일인가?           

선거는 끝났다. 그런데 선거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제법 상처를 받았다.     

우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그런 다짐은 어디 갔으며, 온갖 비리와 부정한 것을 한 상대 후보를 이겼다는 분위기만 맴돌 뿐이다. 그렇게 이겨서 뭐 하며,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사실 우리를 위해 일한다는 이야기 그의 너그럽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스러울 뿐이다.           

여전히 게시판에는 언제 선거가 끝났는데, 비난의 소리가 적나라하게 여전히 적혀있다.     

아무런 대답과 답변도 없는데, 그 안에 있는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보여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우리를 위해, 우리의 권리를 위해 함께하던 그 많은 목소리는 어디 간데없고 그저 상처가 더 깊게 배려 남게 된 상처가 고스란히 보일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스스로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비난하는 그 사람들조차 참으로 안타깝다. 무명의 이름으로, 당당하지 못하는 그 못난 사람이 나의 동료요,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은 왜 이리 비난하고 비방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일까?     

그렇게 사람을 뭉개가며 이기면 얻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이겼으면 무엇을 얻었고 남는 게 무엇인가? 비참하게 무너진 현실이 보이는가?          

지난 며칠 동안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지난 과거들이 생각이 나면서 하루하루가 참으로 불쾌했다. 과거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끌어내리고만 했던 수많은 자들이 문 듯 생각이 나니 하루하루가 참으로 힘들었다.           

비난의 끝은 씁쓸함이다. 남는 것보다 상처가 더 깊이 새겨지는 듯하다.      

남이 나를 비난하는 것이 참으로 억울하지만 도리어 나 또한 누군가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조차 나름 정의롭다고 하는데도, 나도 모르게 그들을 비판하고 어쨌든 내 발아래로 두려는 그런 모습에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지구는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내가 주인공이 되어,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며 살아간다. 리더라면 그리고 어느 조직의 대표성을 가진 자라면 이러한 섣부른 판단과 어설픈 평가를 당장 멈춰야 한다.           

남들의 비판에도 귀를 막고, 내 입으로도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들을 당장 멈춰야 한다.      

어느 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섣부른 비난들이 되돌아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겉모습으로 비치는 멋진 리더보다는 말을 멈추고 평가를 멈추며 한 사람 한 사람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리더의 모습인 것 같다.           

스스로는 잘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면서 리더의 참모습을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삶 가운데 보이지 않으면서 말로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볍게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좀 더 나은 정치인들도 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생각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국기가 언제부터인가 단지 비판만 하고 사회를 갈라놓은 그런 집단으로만 느껴져서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우리는 우리답게 사는 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를 짓밟고 우뚝 서 나가야 할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를 당당히 비판할 자격은 솔직히 없다.     

남을 섣불리 판단하고 비난해서 남는 것이 무엇이며,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인가?     

비판과 비난으로 끝난 선거     

결국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단지 어떤 이유든 정확하지 않는 이유로 비난에만 집중하고, 그 말을 믿고 실망하며 더 큰 상처를 남긴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개탄스럽기만 하다.      

누구를 이야기하겠는가? 너무나도 일상이 되어버린 섣불리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을 나부터라도 점검하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중심으로는 이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삶의 중심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잣대보다는 좀 더 여유 있는 관심과 시선으로, 비난보다는 관심으로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보자. 더불어 사는 세상 그것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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