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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man Sep 03. 2023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43. 벅찬 하루를 지나며     

바라고 원했던 일들을 이뤘다.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인데 내가 그 땅을 밟은 것조차 참으로 기적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충분히 느끼고 돌아온 길     

마음이 어느새 후련해야 하는데, 그렇게 속 시원치 않다.     

또 다른 부담감이 몰려오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누구를 대접하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대접받기를 익숙한 것 같다.     

고민하고 애쓴 성과는 모른 채 무엇인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와 다른 그 모습에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반말 테러와, 무례한 말투는 참으로 속상하게만 했다.     

이렇게 저렇게 섣불리 응대했다가 기존까지 애썼던 것이 무너질까 두려워 참아보지만, 나와 참으로 다른 모습으로 애써 대하고자 하니 참으로 죽을 노릇이다.           

참고 참았다. 어찌 보면 몸이 피곤하여 더욱 짜증스러움이 더해져만 가는 것 같았다.     

참으로 어색한 말과 행동으로 하려고 하니 참으로 죽을 노릇이다.           

놀러 간 것도 아닌데, 애써 고민한 것을 드디어 이룬 것인데     

벌써부터 뭉쳐버린 그 리그에 애써 들어가려고만 하니 참으로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참으로 불편한 마음이 더해져 갈수록 힘듦이 더해져만 갔다.      

왜 이리 불편하고 어색한지 도대체 내 마음을 읽을 수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문 듯 드는 생각          

‘아니 내가 이렇게 열심을 다해 이룬 건데, 나를 무시해?’     

‘이렇게 열심을 다한 나를 인정하지 않아?’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고, 오싹한 마음이 스며들여 왔다.      

사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시작했는지 몰라도 내 힘과 능력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잊고 있었고 애써 지워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애썼던 나에게 상대방이 당연하게 대하는 것이 무지 섭섭했었던 것 같다.      

누구의 인정과 칭찬이 정말로 원했던 것 같다.     

칭찬은 아니더라도 알아주기를 진정으로 원했던 것 같다.     

몇 년 전 불명예스러웠던 일들을 이번 일로 다소 회복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원했고 바랬던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얼마나 당황하고 섭섭했겠는가?          

그분만이 인정하면 됐고, 그분만이 알면 되는 것이다.      

누구의 위로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비난이 나를 넘어트리는 것도 아니다.     

사람 때문에 일어서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 그분만을 위한 삶,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나는 믿는다.           

나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이용당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못난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다.          

최근 들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눈치가 참으로 불편하다.     

스스로 하면 좋겠는데, 한 사람을 눈치 보며 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화가 난다. 어찌 보면 나의 부족함 때문도 있겠지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돕고 내가 먼저 하면 당연히 여기고     

그냥 내버려 두면 돕지 않는다고 불만만 터트리는 모습이 참으로 싫다.     

애써 돕고 있는데도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질책하기만 하는 모습이 참으로 싫다.     

스스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애써 충고 섞인 이야기를 할 때면 참으로 미칠 노릇이다.           

밤 4시 30분     

11시 넘어서 퇴근하고 애써 잠이 들었는데 1시간 만에 깨버렸다.     

애써 잠을 청하고자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아 책상에 앉아 속상한 마음을 글로 적는다.     

답도 없고, 그저 답답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만 같아 애써 글로 내 마음을 옮긴다.     

아직도 사회생활이 참으로 벅차고, 직장생활이 버겁기만 하지만     

불편한 현실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의 삶을 마무리하며, 적지 않는 마음의 울림을 글로 남긴다.     

글로나마 나를 위로하고, 분명하지 않지만 불편한 내 마음을 잠시 점검해 보면서 작게나마 곧 시작될 또 다른 하루를 버틸 힘을 다시 내어본다.      


44. 후유증     

무리하게 사는 삶 그래도 열심을 다해 사는 것이기에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욕심을 채운 상황에서 열심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힘든 일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참 많다. 늘 이런 일들까지 벌려가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일까 수백 번 포기하고 싶고 후회막심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 최선을 다해 본다.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탈이 났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지역사회에 있는 이들의 이유도 모르는 판단과 비판이 참으로 힘들었다. 결국 그것 때문에 포기하긴 했지만, 그 쓸쓸함과 후유증은 참으로 오래가기만 했다.      

찾아가 따지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 내가 그런 게 아니라...라고 변명을 할게 분명하고

그렇지 않아요라고 이유를 말하면...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도리어 비판할게 뻔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답답한 상황에서 그저 힘들기만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삶의 고통들이 점점 커버리는 듯 버겁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자존심 상한 것들로 인해 일상에 회복될 수 없었다.

열심을 다해도 그렇게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더욱 집중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열심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 어느 누구에게 칭찬을 받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결국 명예라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고 싶어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그 일들을 감당하고자 했다.      

열심을 더한다고 해도 남들은 자기들의 기준으로 그저 판단해 버린다. 애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도리어 제일 힘들다며 찡얼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답답하다.      

어느 날 문 듯 받은 상처가 제법 후유증으로 돌아온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치료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제법 크다. 아무를 것 같았는데 더욱 상처가 깊어진다. 또 다른 상처와 어려움이 아무르지 않는 상처 위로 덮어버린다. 
 

그 자리가 얼마나 큰지? 그렇게 하고 싶고 차지하고 싶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기 바쁘다.

결국 한편이 승리를 했고 지게 된 다른 한편은 상처가 투성이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제는 다음에도 나오지 않도록 단도질 하는 듯,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더욱 벌어지게 만들었다. 승리의 쾌감인가? 그런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해 익숙한 듯, 내가 받은 상처 그대로 되받아 주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렇게 도려 논다면 상처받은 자와 함께 그들을 따르던 많은 이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란 말인가? 결국 승리하면 반대편의 사람들을 품어주는 것이 도리다. 억지로 품어주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또다시 답답하다며 벗어나려고들 하겠지만 그래도 리더는 품어줘야 한다. 그것이 리더요 진정 우리가 원하는 모습인 것이다.      

나도 받았던 상처 도리어 갚아주겠다는 그들의 모습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 안 되며, 정의를 구연한다고 싹부터 잘라버리는 모습이 참으로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기득권에 대해 왜 이리 집중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기득권의 싸움이 참으로 무섭고 참 잔인하지만 기득권 챙취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이 참으로 잔인하게 싸움을 벌이는 그들이 모습이 참 무섭기만 하다.     

정의를 외치는데 정의롭지 못하고

자기가 무엇인가 변화시키겠다고 위풍당당한데, 도리어 자기의 약점을 방어하고 포장하는 연약한 모습이 참 보기 싫다.      

리더는 말한데 말 한마디 조심해야 한다.

자기가 능력이 있어 리더가 되었다는 것보다, 부족하지만 섬기며 품어주는 것이 나의 모습이요 리더의 모습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리더의 참모습인 것 같다. 능력이 많아서 무서운 칼로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는 듯한 모습이 참으로 두렵고, 열심을 다한다고 하는데 도리어 섬기지 못하고 넓은 마음이 없는 리더의 모습이 참으로 무섭기만 하다. 어렵게 쟁취한 자리인지 몰라도 또다시 그때가 오기 마련이다.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이러한 모습이 어느 리더부터라도 끊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함께 협력해서 같이 일하기를 소망한다.

누가 누구를 이겼고, 상대방은 어떠한 실수를 했음을 온방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품어주고 함께해 주는 리더가 이 세상에 필요한 리더라고 생각된다.     

다소 기대를 했었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에 약간은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열심을 다한다고 하니 지켜보면서, 응원하면서 그 계획된 일들이 잘 이뤄졌으면 한다.

이제는 내편 내편하며 편 가르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협력하여 선한 많은 일들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나 또한 그렇게 변하는 것 같아 두렵고

나도 그렇게 흘러갈까 두려는 것이 사실이다. 

후유증 없는 세상이 있을까? 난 아직 지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직도 그 후유증에 힘들어하는데 말이다. 가능하면 이런 상황에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45. 끝자락     

끝없이 펼쳐진 광야의 길이 때론 무섭고 두렵다.     

언제 끝날 것 같지도 않은 막연한 이 세상 가운데 톱니바퀴처럼 계속 돌아가는 것 같아 때론 지치기도 하고 버겁기만 한다.           

하나를 시작하면 참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의도치 않게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내 일도 버겁고 힘든데 남들까지 봐주고 살펴주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 같다.      

잘 살펴본다고 하는데도, 돕는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판단하지 않고 참견한다는 작은 오해가 눈덩이같이 커져 버리곤 한다. 함께 하자고 줄곧 외치지만, 어느새 혼자 남은 내 모습이 참으로 씁쓸하기도 하고 열심을 인정해 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만 열심을 하지 않는다며 도리어 이야기하는 이 세상이 참으로 싫다.          

갑자기 이곳에 왜 왔을까라는 생각도 줄곧 해보게 된다. 가끔은 내가 이곳에 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 자리가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진다. 전 사람과의 비교도 그렇지만 나름대로 나의 영역조차, 나의 존재감조차 인정하지 않는 듯한 말과 태도가 참으로 분하게 한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비위에 맞혀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사람들과 부딪치며 사는 우리들이기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사람들 덕분에 상처를 받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우리 인생 속에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나름 자기가 기준이 돼서, 각자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 때론 상대방을 난도질하고 그냥 판단해 버리는 것이 참 싫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흘러가는 길이 있는데도 자기가 옳다고만 이야기하면서 때론 방해하고 어렵게만 만들어버리는 우리의 인생!          

벌써 이곳에 온 지 1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일도 많았고, 힘들고 벅찬 일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것을 완성시켜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버티고 버티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문제였다. 보이지 않는 끝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느새 꺾어버리는 사람들의 말과 태도가 참으로 어렵게만 해 놓았다. 나의 부족함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여러 세대가 모인 우리의 인생 속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보다는 윗니 아래를, 왼쪽이 오른쪽을, 남자가 여자를,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갑이 을을, 고용주가 직원들을, 다른 종교가 또 다른 종교를, 빨간색이 파란색을, 북에서 남으로, 교주가 교인들을...          

각자가 있는 그곳에서 각자의 묶인 생각과 기준으로 내려 찍고, 차버리고, 던져버리고, 무시하고, 무례하고, 바보 취급하고.....          

누구를 위해 일하겠는가? 내가 만나는, 돕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데 그것이 그렇게만 비치지 않았다. 열심을 다하는 자들을 격려하기보다는 단지 그것만 한다며 비아냥 거리며 단지 술 회의를 통해 쉽사리 결정해 버리는 이러한 문화 속에서 참으로 버티기 어려웠다.           

술을 먹지 않는 이유만으로 껴주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쉽사리 결정해 버리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온갖 씹어 뱉어버리는 것이 참으로 옳은 것인가?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사명 그것을 위해서라도 열심을 다하는 것뿐이다.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수북이 쌓여있지만 좀 더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때론 보이지 않아서, 여러 사람들이 참으로 맥 빠지게 하지만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나름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나답게 하는 것, 사람처럼 사는 것,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서의 모습이 지금은 필요할 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될까라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옅게 깔린 안개처럼 곧 보이며 안개 뒤에 숨겨진 밝은 햇살처럼 우리 삶의 끝이 보일 것이다.           

안 보여도 불안해하지 말며, 나답게 내가 정한 이 길 가운데,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그냥 그렇게 걷기를 원한다. 


46. 이미지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고 첫인상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그냥 첫인상을 각인시키는 실수를 범하면서도 늘 나름 첫인상을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나를 포함해서 참 많다.          

그런 인식들이 있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불편해진다.     

나도 그랬는데 남들도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참 딱딱한 사람이었다. 일을 시작한 후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하기보다는 딱딱한 인상과 태도로 베풀기보다는 서두르는 조급한 사람으로 인상이 찍히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우리 아내에게 물어보기 했으니까..     

“남편분이 집에서도 그렇게 딱딱하고 서두르는 편이세요?”          

우리 아내는 항상 그렇게 답한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남들한테는 몰라도 나한테는 참 부드럽게 잘해줘요!” 이렇게 우리 아내가 답하다 보니 상대방이 참 머쓱해지는 경우가 참 많았단다.           

일은 일이고 회사는 회사고 집은 집인데 똑같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굳이 딱딱한 모습을 집에서까지 비출 필요가 있는가? 도리어 우리 가족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게 옳지 않아서 더욱 친절하게 대하고자 노력한다. 가끔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느 날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방송에서 웃기고 밝은 모습을 보여준 연예인이 집에 가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던지, 밖에 나가지를 않는 등 비치는 모습과 전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화려하고 좋아 보였던 연예인도 어느 날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면서 보이는 겉의 모습과 삶은 정말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 또한 겉에서, 세상에서 비치는 모습과 다르게 행동을 하려고 한다. 보다 딱딱하지 않게 부드럽게 하려고 무진장 노력하며, 때론 회사에는 그런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인데 세 아이가 엄마에게 혼나는 듯 나 또한 우리 집 엄마에게 아이들과 함께 혼나는 경우가 있다. 함께 혼나니 아이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함께 엄마한테 잘해보자고 이야기하는 웃긴 상황이 벌어지지만 되도록 낮은 자세와 같은 모습으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세 아이가 있다. 얼마나 시끄럽게 정신이 없는지 늘 개구쟁이짓을 하는 아들 때문에 학교에 가게 되면 괜히 걱정이 앞선다. 학교에서는 집에서 하는 것처럼 개구쟁이짓을 하면 안 되는 걱정이 있어서 더욱 아이들이 걱정되곤 한다. 그런데 걱정도 잠시뿐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를 통해 아이들의 실시간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의 괜한 걱정일 뿐이었다.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집중력이 최고란다.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은데 제법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 준단다. 그런 모습 아빠한테도 좀 보여주면 좋으련만 집에서는 개구쟁이, 밖에서는 참으로 모범생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집에서는 좀 더 풀어진 모습일지 몰라도 밖에서는 제대로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나는 여전히 우리 아이들에게도 무엇인가 프레임을 만들고 고정관념과 이미지를 가지고 판단해 버린다. 그것을 그저 판단해 가면서, 그것에 벗어나기만 하면 걱정부터 하면서 말이다.      

남=녀     

태극기=태극기 부대     

연예인=화려함, 부자     

부모님=희생     

상사: 경험이 풍부한 자, 꼰대     

보수적: 정치, 꼰대     

정치인: 이기적, 싸우는 사람들     

공무원: 원칙주의자     

그렌져 등 바 싼 차: 부자          

이런 이미지는 나의 경험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사실 각자의 경험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도 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도 제법 있다.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이미지에 굳어버린 사람들이 참으로 안쓰럽기만 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살면서 실제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억지로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때로는 내가 만든 기준으로 남들에게 보다 쉽게 프레임을 씌우고 이미지를 세기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참으로 싫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 나름의 인생과 길이 있는데 각자의 기준이 다른 모든 이에게 기준이 될 수 없고 각자가 정한 길이 곧 옳은 길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냥 각자 정하고 선택한 길이 옳은 것이며 맞는 것이다.           

때론 화려하게 보이는 연예인도 외로워 자기의 삶도 어렵게 끊어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화려하다고 해서 부러 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로지 보는 것에만 치우쳐 판단해 버리는 그런 섣부른 판단과 생각은 절대 금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위와 같이 섣부른 판단도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렇게 살지도 않으면서 잘못된 이미지를 비추고자 노력하는 부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홀딱 반하지 않도록 자기답지 않게 살려는 몹쓸 짓은 절대 하지 말자. 부자연스러운 모습 또한 너무나도 안쓰러워 보이니까...          

나는 나답게 살고, 남들은 그대로 봐주는 것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그것이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47. 나를 사랑하는 것①     

나에게는 단호하면서, 남들에게는 참 호의를 자주 베푼다.     

억울하지만 포기하고 남들 먼저 배려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도리어 그들과 싸워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 싫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든, 주변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하게 나를 위한다고 하면서 뼈 있는 이야기를 자주 이야기한다. 나를 위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도리어 그 말들이 나를 더욱 헷갈리게 하기도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가족이니까 이 이야기를 하지 누가 이 이야기를 하겠어?”          

항상 이런 식으로 널 위해 이야기하는데 끝까지 들어보면 가족이니까 말하지 못하다가 이런 이유로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하다.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 사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나한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면 도리어 싸움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가족이니까.. 가까운 사람이니까 말하는 것조차 참으로 불편하다.      

누가 이야기를 하던지 충고성 말들이 참으로 씁쓸하다. 아직 그런 이야기를 다 담을만한 그릇이 되지 못해서 더욱 그럴지 몰라도 나를 향한 말들은 어쨌든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나를 위해서 아님 말하고 싶어서?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어쨌든 사람들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불편함도 있고 어색한 사이인데도 어쨌든 그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별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나 한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그래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평소 잘 말도 하지 않는 편인데 그 분위기가 싫어하지 말아야 할 말도 꺼내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버리려고 노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욱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다.     

누가 나를 향해 말을 해 놓으면 시간이 지나가도 그 말을 깊게 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한테 향한 행동조차도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결국 그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경우도 참 많았다.           

제법 시간이 흘러도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지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내 마음에 깊게 새겨졌는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그 사람의 얼굴이 참으로 싫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지만 어떻게든 그를 피하고 싶고 말을 섞기 싫은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인 것 같다.           

살다 보면 나를 향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바보도 있다.      

그것이 나를 위해 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전달하는 사람이 나를 향해 복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다 자기를 싫어한다는 그런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사람과 사람들은 잘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사람들 때문에 이런저런 영향도 함께 받는다.      

좋은 영향,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꼭 그렇게 달콤하지는 않다. 당장 내뱉어 버리고 싶을 정도의 씁쓸한 말이 아직도 내 마음을 울린다.           

귀하게 태어나서 녹록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는 참으로 씁쓸하게 만든다. 내 개인적인 공간까지 파고들면서 나를 이리저리 판단해 버리고 난도질해 버리기 일쑤이다.           

새삼 아닌 척 당당하게 살아가지만 실제는 그렇지는 않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어느 순간 방 한편에 숨어있는 불쌍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열심을 다해왔는데 도리어 날아오는 비참한 결과에 얼마나 좌절을 했는지 모른다.           

점점 주눅도 들고, 힘이 없어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할 지경이다.      

애써 밖으로 나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변 이들을 눈치 보게 된다. 나를 어떻게 반응하고 이야기할지 벌써부터 상상하게 되어서 당당해야 하는데 주눅 들어 있는 나를 또 보게 된다.           

나 나름의 모습보다는, 누구한테 맞혀지는 듯한 그런 사람     

살살 눈치를 보며 조금씩 걸어가는 불쌍한 한 아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써 노력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애써 기뻐하면서 나름 열심히 사는 그런 어색한 사람으로만 살았다.           

평소와 다르게 살고 있는 내가 참으로 싫었다.     

어찌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다 보니 그 답답함이 너무나도 크다.      

천천히 길을 걷게 되었을 때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나를 직면하게 되었다.     

어찌나 불쌍하던지, 언제부터인가 주눅 들어 살아온 불쌍한 그 아이를 보면서 검은 것으로 채워진 그의 마음을 읽게 된다.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상당히 본다.     

사람들의 눈치와 말 때문에 원치 않게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부족한 사람인지라 그렇게 하더라도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내가 아닌 남들 때문에 만들어진 지금의 상황들이 참으로 싫다.           

사람들은 그저 잘 못한다고만 한다. 애써 만든 책인데 왜 이리 평가에만 그치는 것인지? 너보다 잘난 놈들 많다며 열심히 사는 나보다 비교하며 애써 기를 꺾어 버리기 일쑤이다. 나름 기쁘게 하고 있는데도 나를 알리며 최선을 다하는데도 자랑한다면 뒷 말을 하는 이들도 참 많다. 


48. 나를 사랑하는 것②     

남들보다 나를 더욱 사랑해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잘 알고 있지만 실제 그렇지는 못하다.     

남들이 만든 규격과 규칙 등에 나를 판단하고, 쉽사리 남들의 판단과 평가에 내 몸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다고 외치지만 응답해주지 못했고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지만 연약한 나를 도리어 탓하기 일쑤였다.      

내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고, 쓰다듬어주거나 격려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비난해 버리는 그런 실수를 여전히 나는 하고 있다.           

마흔이 되고 나서 몸이 안 좋았다. 병원에 간 적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가게 되었고 그렇게 좀 봐달라고 소리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남들의 시선에 그렇게 반응한 나머지 나의 몸은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의 삶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서 인생 전반이 달라질 텐데 그저 나에게는 단호하고 남들에게는 온유하게 살았다. 남들의 이야기는 경청하며 나의 소리는 무시하고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살았다. 남들에게는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나의 것은 나만 아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남들이 먼저였고 시작이었다. 바보처럼 말이다.           

며칠간 참 울적했다. 신나는 것도 없었고 마흔의 길이 참으로 괴롭게만 느껴졌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 의미가 없었고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원망해 봤자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어느 때부터인가 가족에게, 아내에게 조차 이야기를 덜 했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삶 전반이 참으로 무기력했었다. 답이 없는 인생 얼마나 씁쓸하고 고되겠는가?          

늘 이랬던 것 같다. 내가 삶의 주인인데 내가 주인이 아니었고 남들이 먼저고, 남들의 시선과 반응이 일 순위였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남들의 시선과 반응에 참으로 민감했다.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반응을 하는 것이지?           

만나는 이들마다 다 좋지는 않았다. 다 좋은 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만나는 이들에게 용기나 힘을 얻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딱 잘라 구분하거나 계산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보다 나쁜 경험이 참 많았다. 실제 사람들은 좋은 기억보다 상처 등에 더 많이 기억하고 쉽지 잊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상처가 더 깊이 새겨지는 법이니까..          

어느 날 나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이 없는 것 같아 결국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무료해서 핸드폰을 들어 누구한테 전화를 하게 되면 결국 전화를 걸 사람이 없었다. 누구는 어느 이유 때문에 전화하기 힘들고, 어느 누구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끊어버려야 한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도리어 가족들에게도 섣불리 전화가 어려웠다.           

“너는 왜 나쁜 일만 있을 때 전화를 하냐?”          

‘전화를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래도 위로받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건데 꼭 저렇게 전화를 끊어야 하나? 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이렇게 나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사람을 찾아 사랑을 구걸했다. 구걸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초라했지만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사람을 찾게 되었다.          

많은 이들은 나를 잘 모른다. 그저 보이는 것에만 겨우 반응할 뿐, 솔직히 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여전히 외치고 있는 나의 마음을 한 번 더 살펴보기를 바란다.     

어느 날 시간이 되어 카페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얼마 만에 여유 있는가?     

읽던 책이 참으로 달콤한 무렵 자기가 잘한 것에 한번 작성해 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잘하는 거? 잘하는 거 있겠지만 남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해서 작성하려고 하니 참으로 쑥스러웠다. 억지로 끄집어낸 나의 성과? 이런 부분들을 작성하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카페에 나 혼자만 있었는데도 나의 것을 누군가에 들킨 것 같은 그런 마음뿐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실인데도 혼자만 생각했던 부분이었는데도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름 칭찬하는 그 자리가 참 불편했다.          

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들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렇게 나를 발견하고 칭찬하는 일이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나이지만 나를 위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거나 잘하면 잘했다고 칭찬하기는커녕 잘못하고 실수하는 것에 탓하는 것이 나의 인생이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환경 그리고 모습이 도리어 탈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나를 향하고, 나를 위해 생각하고, 위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을 다한 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 “수고 많았어!”라는 이야기처럼 나의 마음을 깊이 울린 듯하다.           

남들의 시선과 반응 신경 쓸 부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결국 외톨이가 되어버린 나의 마음을 먼저 만져주고 들어주는 것이 먼저 일 듯 싶다. 나 지금 힘들어? 나 지금 괴로워? 나 지금 굉장히 기뻐? 크고 적든 간에 내 마음에 여전히 울리는 그 음성을 오늘부터라도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수고 많았다!”, “많이 힘들었지?”, “너 덕분에 내가 너무나도 기뻐?”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보다.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했고 도리어 판단하고 평가만 받아보니 어느새 우울해하며 기죽어 있었던 것 같다. 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많은 성과를 얻어 인정받는 것도 참으로 좋겠지만 나를 향해 수고한 마음을 향해 따뜻하게 수고했다는 말한데 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것이 나의 웃음꽃이 되고, 또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촉진제가 될 수 있으니까...          

또한 남들처럼 남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지 말고 도리어 날카롭게 지적하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응원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야 말로 내가 지금 해야 할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일부러 이야기해도 좋다. 그 이야기가 환경을 부드럽게 할뿐더러, 참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누구보다 나부터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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