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묻다!
49. 길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옳은지 잘 몰라 불안하고 걱정이 늘 앞설 뿐이다.
익숙한 길보다 새로운 길이야말로 기대가 되어야 할 텐데 낯선 풍경이 도리어 나를 두렵게만 한다. 익숙한 길조차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무것도 보이고 뭐든지 그저 낯선 풍경들은 그저 어렵게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익숙한 길을 선택하고 그 길에서만 머물고 있는 것 같다.
10년이 지나 새로운 길을 선택하였을 때 단지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새로운 이곳이 참으로 어려울 뿐이었다. 익숙한 환경,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혼자는 쓸쓸히 걸어야 하는 나그네가 되고 말았다.
나의 의지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찾았던, 의도적으로 찾게 된 그런 길도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이 길까지 걷게 될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도 참으로 의아스럽고 놀랍기만 하다. 남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평가가 있었는지 몰라도 어느새 정말 어느새 이 길 가운데 서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코 끝에 스쳐 지가는 바람조차도 참으로 외롭게 할 뿐이다.
혼자서 등산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리 등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건강을 챙기기 위한 나의 노력과 의지 때문에 결국 등산을 하게 되었다. 나름 짐도 챙겨갔지만 도리어 짐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를 의지하며 내 뒤편에서 함께 해준 짐이 도리어 나의 편이었다.
가는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가다가 갑자기 없어진 길이 참으로 당황스럽기만 하다.
사람이 걸은 흔적조차 없고 도리어 동물들이 지나간 흔적 밖에 없는 그 길 끝에 서있었을 때에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동물의 먹잇감이 될 것 같은 그런 마음 같았다.
갑자기 없어진 길 가운데 어쨌든 다시 내가 그 길을 찾았다. 없는 길인데도 풀과 나무를 헤쳐나가며 억지로 그 길을 찾아 걸었다. 신기한 것은 없던 길이 다시 나타나게 되고, 내가 만든 길인 양 헤쳐나가는 길이 곧 새로운 길이 되곤 했다. 내려가면 무작정 길이 있겠지라는 생각 때문인지 멋모르게 그 길을 찾아 헤매어봤는데 결국 그 길은 연결되었고 보통 그들이 가는 그 길과 연결되었다. 어찌 되었던 남들보다 불편했지만 빠르게 온 것은 참 신기할 뿐이었다.
아침 출근길은 참으로 꽉 막힌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서 제법 차가 막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출근길은 참으로 막히는 편인 것 같다. 어느 날은 뿌연 안개가 끼어 있어서 되도록 천천히 그 길을 가곤 한다. 뿌연 안개가 너무나도 심할 경우에는 안개 뒤가 전혀 없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런데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결국 흩어진 안개뿐이었다. 뿌연 안개 뒤에 숨어진 화려한 세상은 참 놀랍기만 하다.
우리 세상도, 우리의 인생도 뿌연 안갯속에 사는 것 같다.
당장 내 앞에 있는 두렵게 느껴지는 안개 같은 고된 삶일지는 모르나, 우리가 모르는 도리어 깊게 흩어진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한 그것들이 있지 않나 싶다. 우리에게 안개처럼 앞이 가로막힌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것도 내가 두렵게만 생각할 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저 두렵기만 하다.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막역한 걱정이 앞서서 그런지 내 앞의 것들과 당장 일어나는 것들에만 신경 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어렵게 이 자리에 왔다. 어떻게 보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참으로 낯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쓸쓸히 혼자서 걸어가는 것 같아 막연하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왜 이곳까지 왔는지 원망도 해보지만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버겁게만 느껴진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현실이 보인다. 과거에도 그랬다. 늘 불안해했고 두려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도리어 다른 것들만 찾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불안했고, 그때는 힘들었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처럼 눈물을 훌쩍였던 그때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어른이 되었고, 성장된 나를 또 보게 된다.
사람들은 당장 앞의 것들만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못난 인간들이기에 더욱 앞의 것들에만 신경 쓰고 사는 것 같다. 또한 빠르게 빠르게 사는 우리의 익숙한 삶 때문에 생각과 다르게 천천히 흘러가는 인생의 물길이 참으로 두렵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결국 흐르고 결국 이기게 된다. 보아라 이렇게 커버린 나 자신을 다시 보아라.
사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참 어렵고 두렵다. 언제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다.
언제까지 기죽어 살까 싶고,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언제 가는 그 길을 완주하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다. 나의 템보를 맞춰가며 천천히 그 길을 가면서,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외로운 길이지만 결국 이기고 승리하리라 라는 마음 한 가지 놓치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리라 결심을 다해 본다.
소심한 한 아이가 늠름한 한 청년이 되었다.
그 늠름한 청년이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누군가에 도움을 늘 받던 이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잘되는 사람을 보며 부럽기만 했던 이가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받고 말았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 금세 포기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몸과 마음조차 참으로 튼튼해지고 말았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던 이가 이제는 새롭게 뭐든지 잘하는 그런 사람으로 훌쩍 커버리고 말았다. 늘 그랬다. 버티고 나아가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곤 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고 힘들면 잠시 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50. 마흔의 삶 가운데 함정에 빠지다.
독버섯을 보면 참 이쁘기고 하고 먹음직하기도 하다.
봄이 어느새 왔는데 주변에 펼쳐져 있는 산나물이 도리어 독성 물질이 있다. 대표적으로 원추리의 경우, ‘콜히친’이라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때론 봄날에 잘 먹는 두릅·다래순·고사리 등도 식용 가능한 산나물이지만, 고유의 독성분을 미량 함유하고 있다. 그렇게 맛있는 먹고 있는 고사리는 독초가 맞다. 생고사리에는 프타퀄로사이드라는 발암물질과 비타민 분해효소인 티아미나 이제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고사리를 삶으면서 쉽게 해결되고 프타퀄로사이드는 열에 굉장히 약하며 티아미나아제는 물에만 있어도 씻겨져 나간다는 특징 때문에 독이 있어도 잘 삶아 먹으면 된다. 찝찝한 마음이 있지만은 말이다.
평소 우리가 잘 먹는 것도, 보기 좋은 것도 때론 독으로 취급되어 절대 먹거나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인데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그것들을 도리어 즐겨 사는 나의 삶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① 자랑거리
남들의 칭찬이 굉장히 기분이 좋다. 우쭐되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좋은 것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때론 독이 되곤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면 극구 부인을 하지만 나도 모르게 교만해버리는 것이 참으로 당황스러울 뿐이다. 때론 남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거나 기분 나쁘게 만들어서 괜히 사람과의 관계가 꽤 어렵게만 만든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남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나를 낮게 바라보는 그 눈빛이 참으로 싫었다.
그도 나와 동일한 부족한 사람일 텐데 선을 넘어 자기 자랑에 바쁜 그 모습이 참으로 싫었다.
그냥 보통 사람도 경험하는 것인데 그는 그것이 큰 자랑이 되곤 했고, 어찌나 듣기 싫고 보기도 싫은지 나도 모르게 연락을 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 잘난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싫었다.
그런데 나도 그가 싫은 것처럼 남들도 나를 싫어하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평소처럼 그렇게 살아가는데, 그는 나 때문에 괜히 맘고생을 한 것 같았다. 한창 SNS를 하던 시절 나의 개인적인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SNS 내용에 참으로 민감해하는 그들을 보게 된다. 어느 날은 근했는데 그리 불편했는지 나를 불러 SNS에 관한 이야기를 참으로 불쾌하게 말하는 한 리더도 있기도 하였다. 그렇게 싫었나 보다. 자랑질하는 그 사람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나 보다.
내 개인적인 공간인데도 누구한테 검사를 받고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사실 많이 불쾌하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누군가에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에 참으로 부끄럽기만 했다. 사실 나의 자랑이 교만이 되어서 남들의 훈계가 참으로 듣기 싫었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충실히 하고 하는 것보다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한 것인 양 자랑에만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자랑에서 벗어나 점차 교만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깊이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의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으면 섭섭하기 일쑤였다.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인지 어쨌든 나를 포장하고 자랑하려고만 했던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사는 나의 연약함을 다시 직면하게 된다.
② 술
우리 아버지는 꽤 술을 많이 드시는 편이었다. 어릴 적 어찌나 술을 많이 드셨는지 저녁때이면 곤히 자는 자식들을 깨워 잔소리를 제법 많이 하시는 편이셨다. 그것이 싫어 절대 술을 먹지 않기로 약속했고 더욱 신앙인으로서 술은 절대 먹지 않기를 결심도 함께 하였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할 무렵 나도 모르게 술자리를 가게 되었고 선배들의 술 먹는 권유를 애써 거절하였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스며들고 말았다. 한잔이 두 잔이 되고, 하루가 며칠이 되어서 먹고 또 먹었다. 우리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나름 농담을 하면서 술을 먹곤 했다. 더욱 술을 제법 많이 먹는 리더 덕분에 자연스럽게 술을 더 먹게 되었고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더욱 좋지 않게 되었다.
술을 먹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혹들이 찾아왔다. 연약한 나로서는 그런 유혹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하기 싫어 피하기도 했지만 결국 빠져드는 나는 결국 더 깊게 말려들고 말았다.
술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망한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그렇게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술 먹지 않는 자를 도리어 배제해 버리는 것들이 참으로 불편하게 한다. 억지로 술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결혼한다며 여자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도리어 민망하게 강요하는 그 모습을 참으로 싫었다. 주 5일 따라가며 시중 두는 것도 싫었고, 분위기 맞추지 못해 싫은 내색을 하는 자의 모습을 보면서, 적당함을 넘어서 높든 낮든, 어리든 많든 무작정 술을 권해 참으로 힘들게 만드는 이들도 참 많았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먹지도 않는데 안주만 먹는다고 눈치 주는 그 자리가 참 싫고 싫었다. 가고 싶지 않은데도 가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도리어 술로 평소 말하지 못하는 말까지 겁 없이 말하는 나를 보기도 하였다. 술은 내 정신까지 흐트러 놓았다. 술을 먹으니 용감해져서 더욱 깊은 죄의 자리에 손쉽게 가곤 했다.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느는 것은 술이었다. 그것이 나의 자랑인 양 살아온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그것이 자랑이었다. “내가 하루에 8병을 먹었었어!”
③ 분노
개인적으로 쉽게 분노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분노를 물려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해하기 되는 상황에 맞서 분노를 하고 싸우기도 하였다. 정의라는 이름하에 나는 분노를 자주 했고 그것이 사람들과 관계를 더욱 어렵게만 했다. 분노를 하면 할수록 분노가 늘어나는 것을 경험한 만큼 어느 날은 분노를 다스릴 수 없어서 참으로 무섭기만 했다. 분노는 분노케 하여 사람들과 다툼도 있었고 분노가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서 동생들에게 분노하는 첫째 아이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분노는 분노를 낳고 내가 있는 곳은 보다 냉랭하게 만드는 묘한 것들이 있다.
가톨릭에서는 7대 죄악 중 하나로 7대 주선의 인내와 반대 개념이다. 불교에서도 탐진치(貪瞋痴) 중 하나, 오 개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각종 종교에서도 분노를 최악의 행위로 꼽지만 인간의 본능이기에 최대한 줄이거나 드러내지 말며 스스로 잘 다스려야 된다고 교리에서 가르칠 뿐, 인간이 분노가 아예 없는 존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특정 사람에게 분노가 발생하고 이를 해소하지 않을 경우 거의 대부분 증오의 감정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마음속에 감추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데, 사실 겉으로 드러내봐야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분노는 과격한 신체행위로, 목소리가 커지고 흥분한 감정의 격앙, 신체의 고통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더욱 만나는 이들에게 증오의 감정까지 이어져 몸과 마음을 참으로 손상시키기도 한다(https://namu.wiki).
이럴 경우 분노의 조절이 참으로 필요하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는 승화(sublimation)라는 방어기제를 활용할 것이 권장되어, 운동이나 드럼이나 취미 등으로 분노를 해소할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분노를 일으키는 기억을 잊으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차라리 빨리 잊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빨리 잊어버려야지" 하면 할수록 그 장면이 더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리바운드 효과의 한 형태이며 흰곰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흰곰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다고 하는 하버드 대학교의 실험을 예로 들어 흰곰 효과라고도 부른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자신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지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애인이 양다리를 걸치다가 환승해 버렸다면 상당한 분노를 겪을 수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네가 매력 없이 행동했으니까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냐? 네가 소홀하게 행동했으니까 바람을 피운 거겠지."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당사자는 자기 자신에게 찾을 수 없는 원인을 헤매면서, 억울함 때문에 더욱 분노하고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무런 부정적인 원인이 없더라도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관계도 마치 교통사고 난 것처럼, 서로 아무 잘못 없는데 재수 없이 겪게 되는 문제도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못을 억지로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있거나 충분한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억울함 때문에 분노가 더 길게 간다. 다른 사람에게서 충분한 위로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럴 만하다.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걔가 나쁜 거다. 내가 문제가 아니다."하고 스스로에게 힘을 줘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돌리는 행동이 항상 옳다고는 말할 수도 없고 항상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자학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https://namu.wiki)..
자기 자신이 전적으로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을 생각한다. 그리고 실행하고 그 습관성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https://namu.wiki)..
분노를 잊을 만한 다른 취미나 관심거리를 찾아본다(https://namu.wiki)..
하소연을 해본다. 위로받을 곳이 없어 답답하면 분노가 오래간다. 그러나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하소연하다 주변의 핀잔, 안 좋은 시선만 받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웬만하면 '전문가와 상담'해라. 가족, 친구조차도 당신의 말을 이해해 줄지는 모를 일이다(https://namu.wiki)..
분노를 일으킨 누군가에게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확인하라.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말자.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거나 10을 세는 등, 스스로에게 '잠깐 멈추라'는 생각을 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잠시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다(https://namu.wiki)..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 당신을 위해 이바지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일단 멈춰라. 상대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다면? 상대가 버릇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내 기분이 나빠서 꼬아들은 것이었다면? 상대가 '오는 길에 버스가 폭발해서 늦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확률적으로 말도 안 될 것 같은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때 가서는 어떡할 것인가? 한두 개만의 증거와 말로 판단하려 하면, 이런 판단 오류로 인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운 나쁘면 영영 절교당할 수도 있다. 정말 상대가 문제인지는 적어도 15분이라도 상대방과 분노를 유발한 해당 문제에 대한 대화를 해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https://namu.wiki)..
뒷담이 아닌, 뒤에서 혼자 그 사람에 대해 혼잣말로든 생각이든 글이든 토론해 보아라.
만약 분노유발자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토로해 보자. 그리고 속으로 그 사람에 대한 비난을 자유로이 하자. 단 타인과 하면 뒷담이 되니 자신과만 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아주 비참하게 잘못한 것처럼 생각해 보고 덜 비참한 예를 대조해 보며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이 커서 그렇게 된 건지 확인해 본다. 만약 덜 비참한 예가 진짜 별거 아닌 일이면 그 사람이 잘못한 거고 덜 비참한 예가 별거라면 자신도 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속으로 욕을 하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든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깔끔히 잊는 것이다. 스스로는 누군가에게 토론한 결과 분노가 잘 전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글로 분노를 표현하곤 한다. 솔직한 감정을 토대로 글을 남기게 되면 결국 내 마음이 다소 가벼워진 것을 느끼게 된다(https://namu.wiki).
④ 성(sex)
이 맛에 빠지면 해어 나오지 못한다. 좀 더 젊을 때는 성에 푹 빠져 있는 나의 모습과 함께 겉과 속이 다른 그런 삶으로 살아왔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은밀한 것에 빠져 있는 부끄러운 자였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어른이 될 때까지 고치지 못했다. 점점 강도가 깊은 것을 살펴보는 것이 일쑤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혼자서 은밀히 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며칠 동안 내 마음 모두를 점령하는 듯한 기분이 많이 들 정도였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릴 적보다 경계가 무너지다 보니 까딱해서는 더 깊은 곳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항상 내 주변에 있었다. 어리니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런 경계조차 무너트리고 나의 판단과 결정하에 스스럼없이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즐기기만 했던 나에게
나와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될 우리 자식들에게 어떻게 해결점을 줄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예전처럼 말하지도 말고 접근하지 말라고만 하면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전문가처럼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⑤ 돈
돈이 많으면 좋다. 없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과는 연결되지 않는 것 같다.
돈이 있으면 자존감이 올라간다. 왜 이리 자신감이 올라가는지.. 옷도 바뀌고, 차도 바뀌고 보이는 것들이 화려하게 바뀌다 보니 자존감이 바뀔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써봐도 마음의 우울감과 괴로움은 감춰지지 않는 것 같다. 겉 포장만 신경 쓰는 삶이 아닌, 깊은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돈이 있으면 베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나를 위한 삶이 대부분인 것 같다. 없으면 없는 데로 살 건데 돈의 맛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오로지 좀 더 벌고, 좀 더 쓰기 바쁘지 남을 위한 배려와 베풂이 덜하여진다.
마흔을 살면서 이렇게 함정이 많은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았는데, 지금에서야 살펴보니 나락에 떨어질 많은 위험들이 참으로 많다. 어찌 보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 긴장이 가득한 우리의 삶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고 그런 함정에서 벗어나지 않고 더욱 깊이 빠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사람임을 인지하며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정 리]
하여튼 보면 볼수록 탐스럽고 좋게 보여도 그것이 참으로 독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어른이 된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된다. 더욱 큰 결단과 함께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느끼고 경험하기 전에 피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닐까 싶다.
내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가 그 함정에서 피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도리어 독이 되고 해가 되어서 그렇게 열심히 쌓아놨던 그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자. 한순간의 즐거움과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나의 삶과, 나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가족들까지 한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니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51. 고된 직장생활 가운데
직장생활이 너무나도 고단하다. 그래서 그 고단함이 너무나도 커서 그런지 늘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었는지 행복했고 즐거웠던 것 그것들을 애써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애써 잊어버릴 만도 한데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놈이 준 그 상처가 여전히 남겨져 있었고 그놈이 새겨준 그 상처가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잊힐 줄 알았는데 깊숙이 새겨진 상처가 매일매일 생각나게 만든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참 다양했고, 섣불리 판단하는 그들이 때문에 제법 맘고생도 심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리다고 힘들었고, 나이가 있을 그때에도 상상하지 못한 더 큰 어려움과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참으로 열심히 하는데도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할 정도로 달음박질을 하는데도 그들에게는 시원치 않는 모양새다. 그들을 위한 삶이 아니었고, 그들을 위한 열심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말 한마디가 참으로 힘을 빠지게 하였다.
그리 높은 자리에, 대표의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겉으로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자기는 좋은 사람이었고 늘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향한 화살을 애써 막아준 것도 모르는 눈치다. 사람들 앞에서는 배려하고 온유하게 대하는 듯하는데, 열심을 하지 않는다며 나한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참 싫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실제 그렇지 않은 온갖 힘듦을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 참으로 미칠 노릇이다.
직원은 되지 않는다고 강요하면서 대표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행한다는 사실 그리고 일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리만 애써 지키려는 모습 너무나도 잘 안다. 모르는 척할 뿐이지 결국 알고 있으며 온갖 이야기를 건넬 뿐이다.
그 자리가 참으로 싫고, 무섭기만 하다. 나도 그 사람처럼 될 것 같아 무섭고, 아무도 말 못 하지만 결국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쏠 그들을 생각해 보니 참으로 두렵기만 한다.
어쨌든 자리를 지키며 유지시키고 노력해야 한다. 리더가 더 일을 해야 직원들도 따라온다는 진리 속에서 나 또한 벅차지만 일하고 일한다. 나도 탈이 나고 힘들고 버거운데 애써 웃으며 그 일들을 버겁게 감당하고 있다.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써 일하는 나에게 맥 빠지게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늘 말만 한다. 시키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수습한 것은 애써 외면할 뿐이다. 시간을 쪼개어 그들을 배려하는데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 듯하다. 고마워하지도 않고 애써 힘들게 하는데도 도리어 왜 그렇게 하고 있냐며 핀잔을 두곤 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임에도 그것이 어느새 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리더가 일을 더욱 해야 한다는 그놈의 진리 때문인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서 그만한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결국 내가 밤새하고 있다.
어느 날은 몸에서 탈이 나고 말았다. 다양하게 신경 쓰고 잠도 줄여가는 등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결국 탈 나게 한 것이었다. 힘들어서 병가를 내고 가는 나를 향해 병가냐 연차 나며 당돌하게 확인하는 직원이 있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핀잔을 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천히 하라고 하면서도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기 생각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참으로 불편함을 전한다. 나는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내가 무엇인 양 잘못해서 직접 나한테 말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과 잘 몰라서 직원들이 무시하는 것이라며 말하는 리더의 말이 참으로 지치게 만든다.
지침과 피곤함이 점점 쌓이고 답답함과 억울함이 쌓일수록 바보처럼 그저 포기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확실해진다. 인정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일하는 나를 조금이나 알아달라고 그리고 격려와 응원해 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들을 애써 피하는 것 같아 참으로 속상하다.
그때 그날처럼 나가기도 참으로 두렵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도 두렵고, 나를 어느 누가 찾아주지 않는 것 같아 외롭기만 하다. 답답하여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지만 그래도 바보처럼 그들을 바라보며 눈치를 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상처받은 채로 애써 일한다면 결국 무엇을 남기겠는가?
오늘따라 내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무거운 마음을 빨리 가볍게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답답함이 더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나에게 직장생활이 무엇일까?
내가 생활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벌러 다니는 “직장”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사명과 꿈을 이루는 그곳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다하였다. 진심으로 했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고 바람 빠지는 말들에 참으로 민감하게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참으로 연약해서 남들에게 손쉽게 상처받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데 바보처럼 잊지 못하고 그들이 나를 결국 인정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결국 그 생각이 오로지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오로지 숨기고만 싶었다.
그만두고 싶을 때 나만 바라보는 가족들을 생각해 보고, 나와 같이 살았던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나 때문에 애써 버텨왔던 우리 부모님들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버티고 버텨야 하지 않을까요? 특별한 계획 없이 무작정 포기하고 나가버리는 것 나의 인생에 있어 참으로 무책임한 생각과 행동이 아닐까요?
직장에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마세요.
나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더 큰 상처받아요
나의 노력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당신의 큰 노력을 해준 것이야말로 기적이고 결국 나를 시기 질투할 수도 있어요!
나의 힘듦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마세요. 자기들이 제일 힘들다면 자기 체면에 빠져 있을 테니까요..
애씀을 인정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포기하고 싶고, 떠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 쉽게 인정하거나 위로해주지 않는다.
하루하루 지옥 같고 죽을 노릇 같지만 완성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애써 열심을 다한 것에 인정해 주는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이면 됐다.
52. 내가 나에게 묻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 나는 열심을 다하고 있다. 누가 인정을 하지 않아도 그 수고가 덜 하든 간에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은가?
그렇다. 무시하고 어떠한 것에 수고를 했다면 당연히 칭찬보다는 인정받는 것이 참 좋지 않는가? 그렇다고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열심을 다하는 이에게 칭찬은 아니더라도 격려조차 인색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힘드신가요?
솔직히 힘들고 벅차다. 좋다가 안 좋다가 늘 반복적인 삶이 참으로 버겁고 어렵다. 나는 쉬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무엇인가 해야 하며,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조차 버겁고 힘들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요?
그때그때마다 힘들게 하는 것이 다른 것 같다.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힘듦이 참으로 어렵고 버겁게 만드는 것 같다. 요즘은 사람 때문에 힘든 것 같다. 이렇게 발음 박질을 하여도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 같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이 상황이 힘들며, 이렇게 열심을 다하여도 늘 불만만 내뱉고 나만 의지하는 것만 같은, 자기들의 열심보다는 나에게 무엇인가 바라고 원하는 것만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가?
솔직히 모르겠다. 어떻게 해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냥 내버려 두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냥 열심을 다하고 있으니 응원하지 않고 격려하지 않으려면 그냥 지켜만 달라. 가끔 힘들지요? 그래도 열심을 다해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한마디만 건네어달라. 그것이면 된 것이다.
며칠 전 다녀온 아내와의 여행은 어땠나?
당연히 좋았다. 특별히 활동하는 것은 없지만 아무 고민 안 하고 그저 쉬었다는 점이 참 좋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잠시 떨어져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진 것 조차가 너무나도 행복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짝 미안하긴 말이다. 지금까지 열심을 다해 달려왔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때문에 내 아내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내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조차 내 아내가 다 했기 때문이다. 독박육아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조차 내팽개치며 살아온 내가 참으로 싫었고 나 때문에 힘들 것만 같았던 내 아내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쉼이라는 게 어떠한 의미인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다. 쉼이라는 것은 곧, 숨 고르기라고 생각된다. 막힘없이 열심히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곪아 터지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아파오는데도 모르고 살다가, 마음이 힘들어하는데도 계속 살다가 극단적이거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쉼이 우리들의 삶을 좀 더 탄력 있게 만드는 것이지만 온전한 쉼을 하지 못하고 늘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이 참 씁쓸하다. 곧 다가올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빨리 해결해야 할 일만 생각하게 되고, 나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보다는 다른 가족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만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힘들어요 위로해 주세요라고 그렇게 애써 이야기하는데도 나를 무시하고 상황과 환경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만 오로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문제인 것 같다.
외롭나요?
외로워요! 혼자서 달음박질하는 것 같아서, 혼자만 남아있는 것 같아서 참으로 외로워요!
내가 책임져야 할 것도 참 많고, 책임감 때문에 그 부담감과 짊이 참으로 무겁네요!
이렇게 외로운 사람인데도 나를 돌보기보다 남들부터 먼저 신경 쓰는 나 자신조차 참 싫네요!
누군가에 끌려 다니는 것 같아, 내가 아닌 누군가에 질질 끌려다니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가 참으로 불쌍하고 안쓰럽고 힘들기만 하네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모르겠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요!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싫고, 나름 열심을 다하는데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같아서 힘듬만 더해져만 가는 것 같아서 더욱 모든 것이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기도하세요?
기도요? 당연히 하죠! 말씀도 읽는걸요?
그래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기도하는데요? 모르겠어요!
솔직히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기도하는 것보다,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렇게 솔직히 기도해 보세요! 당신의 삶과 생각이 다가 아니에요! 때론 틀릴 수도 있고 잘못 결정할 수 있어요! 그것조차 당신의 경험조차 내려놓으세요! 그것이 당신의 생각을 묶어 놓을 수 있으니까요.
바빠요?
당연히 바쁘죠?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네요! 늘 바쁨이 계속적이어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진짜 바쁜 거예요? 아님 마음만 분주한 거예요? 바쁠 수 있어요 바쁘게 사는 거 참 좋은 거 아니에요 감사한 일이고요! 그런데 마음조차 분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쁘게 살아서 감사해야 할 부분이지만 바쁘게 살아도 마음이 분주해도 때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숨을 쉬어 보세요! 그래도 늦지 않고요! 늦게 가도 어때요?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은 최고인 거예요!
사람들이 싫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참 싫네요! 열심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말로만 하는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버겁게만 느껴지네요! 꼰대들의 모습조차 싫고, 그렇게 힘들게 했던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며 보다 밝게 살아가는 것이 참 보기 좋지 않네요! 왜 이리 당신의 마음에 그들을 초대해서 점점 힘들게만 만들어요! 그렇게 곱씹어보았자 그들은 변화되지 않아요 인간자체가 변화되지 않는다구요 당신도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인데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나름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예요? 잘못하든 잘하고 있든 간에 나중 그들에게도 심판과 평가가 있을 거예요! 깨닫는 날이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인생인데 당신에게만 집중해 보세요! 그렇게 외로워하는 당신에게 관심 가져보세요! 그 길에서 달음박질하는 당신에게 집중해 보세요! 지금 가고 있는 그 길 위에서, 그것을 잘 완성해야 나가도록 집중해 보세요. 남들의 평가와 판단이, 그리고 그 사람들 때문에 생긴 억울한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아요! 그저 당신의 마음만 힘들게 할 뿐이에요!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아야 당신이 살 수 있어요!
53. 묻어 나오는 우리들의 모습
아침 출근길이 참 불편하다. 언제든 출근길이 복잡하고 차가 많아서 웬만하면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전쟁 같은 출근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멋진 차량으로 자기의 멋을 뽐내며 운전하는 이들도 제법 많고, 인생의 온갖 짐을 짊어지듯 살아가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 이들도 있다. 혹여나 부딪칠까 싶어 도리어 그 사람 옆에 붙어 있기보다는 멀리서 보기 일쑤다.
그리 마음이 급한지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며 운전하는 이들도 있고, 무법자로 운전하는 이들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그런 이들도 있다.
인생이 여유로운지 자기 뒤에 자기 길게 늘어섰는지도 모른 채 세월아 내 월아 천천히 운전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나 답답한지 크략션을 누르고 싶지만 아침부터 얼굴을 불키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참는다.
얼마나 친한지는 모르는데 두 대의 차가 나란히 운전하는 이들도 있고, 서로가 서로를 경쟁하듯 빠른 속도로 이기려고 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차선을 바꿀 정도의 공간이 있어 조심스럽게 차선을 바꾸면 양보조차 절대 할 수 없는지 갑자기 속도를 내어 도리어 차선을 바꾸지 못하게 하거나 갑자기 멈춰 혹여나 큰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조금이나마 양보하면 좋으련만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이들를 향해 욕바가지를 퍼붓고, 혹여나 스스로가 차선을 바꿀 입장이 되면 잘 정이 없다며 양보해 주지 않는다며 다시 한번 욕바가지를 드리 부어 버리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바꿔버리는 그들의 태도가 참 씁쓸하기만 하다.
작은 운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의 인생과 인생을 향한 태도, 인성 등이 작게나마 묻어 나오곤 한다. 자기를 비치는데도 깜빡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 씁쓸하다.
출근길 가운데 우리들의 인생이 잠시 묻어 나온다. 우리들의 인생길은 참으로 복잡하다. 어찌 보면 경쟁하며 그렇게 저렇게 살아간다. 각자가 살아갈 길들이 다 다른데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걸어야 할 텐데 도리어 그들이 경쟁자요 꼭 이겨서 넘어트려야 하는 경우가 우리 인생 속에 참 많은 것 같다.
각자의 인생의 속도는 참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인생이지만 누가 늦었다고 누가 빠르다고 해서 무작정 틀렸다고 섣부르게 판단하게 된다. 혹여나 늦게 가게 되면 왠지 늦춰지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앞선 이들과 비교하며 마음이 참 조급해진다.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갈 법도 한데 그저 나의 인생답지 않게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고, 경쟁하면서 의도치 않게 페이스 오버하는 것은 나답지 않고, 우리들의 인생답지 않는 모습이다. 나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양보하는 것 곧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쉽지 않다. 양보하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아마도 과거 그 어느 날에 양보했는데 도리어 무시당했던 더러운 기분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누군가에게 양보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섣불리 양보하는 것이 지는 것 이상 당연히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양보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양보를 하면 당연히 나에게는 금전적이든 어떠한 모양새로 손해 본다. 어느새 나에게 주어진 귄위가 때론 무섭기만 하다. 늘 대접받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던 것은 그런 것에 익숙해버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고, 도리어 대접받지 못하면 익숙지 않게 괜히 섭섭해하는 내 모습 또한 싫어서 익숙하지 않지만 그런 대접을 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나의 삶 속에서 배려요 양보라고 생각했다. 나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 그래서 상대방을 조금이나마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 도리어 대신하여 일해주는 것이야 말로 나는 양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조차 당연시 여기는 이들 때문에 최근 많이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들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신해 준 것에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지언정, 당연시하게 여기고 도리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거꾸로 생각하고 말하는 그들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나의 시간을 내서 양보한 것이고, 양보해서 그의 짊을 덜어준 것인데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속상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곰곰이 이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마음으로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참 쉽지 않았는데 거꾸로 생각해 보니 겉으로는 양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 그것이 양보가 아니라 또 다르게 인정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다는 이면의 모습이었다. 양보라는 것 참 어렵다. 양보를 통해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순수히 그렇게,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받아 들려주고 내가 더 먼저 내려놓고 받아주는 것이 진정 양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계산기를 두들기며 양보를 계산하는 것조차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각자가 가는 길은 가는 것이다. 가면서 함께 갈 수도 있고 헤어져서 혼자서 외롭게 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각자의 영역들과 길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온전히 박수를 쳐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화는 화를 일으킨다. 내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참으로 무례하다. 잠시 상대방을 생각해 보았을 때에 나의 모습 또한 그렇게 좋지 않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된다. 무례하게 껴들어온 사람 때문에 격렬하게 화가 난적이 있다. 상황을 딱 보았을 때 내가 분명 화가 나는 상황인지를 인지했는지 아내가 급히 말린다. 누가 잘못했냐고 라며 화도 내보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도리어 남편이 피해가 있을까 봐 도리어 만만한 남편을 말리는 듯하다. 어느 때는 아이들이 차에 타 있는데 갑작스럽게 들어온 차로 인해 사고가 날 뻔해서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크략션을 누르고 창문을 내려 욕까지 할 지경이었는데 또다시 아내가 나를 말린다. 또다시 말리는 아내가 참으로 싫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흔이 되어서도 스스로 마음까지 잘 자제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무진장 민망하였다. 젊을 때는 젊어서 화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화는 화를 더욱 키우고, 주변을 참으로 경직시켜 버린다. 화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참 많았다. 과거에 부모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얻어 화를 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참고 계셨고 그저 피해만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화내고 싸우는 모습이 자식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이 드셨는지 화가 도리어 안 좋다고 생각이 드셨는지 도리어 참고 참으셨던 것 같다. 참으로 어른답게 말이다.
작은 삶 속에서 묻어 나오는 우리들의 모습
어찌 보면 그 모습이 진실된 나의 모습이요,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
숨긴다고 해서 숨기지 못한 나의 진실된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참으로 부끄럽지만 늘 언제나 조심하면서 우리들의 진실된 모습이 표현되거나 나타나지 않게 점검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각자의 길을 가는 데 있어 최선을 다하는 거 참 중요하고
길을 가면서 만나는 이들을 존중하고 때론 양보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들과 부딪쳐 화가 나기도 하지만 꾹 참는 어른다운 모습도 중요하지만
사소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진정 마흔의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54. 함부로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
리더의 자리는 참 부러웠고 언젠가 내가 가야 할 곳,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도 생각했다. 되도록 빨리 앉아서 리더의 참 맛을 누리고 싶었다. 그저 좋은 모습, 그런 권위가 참 부럽기도 했고 직원들이 모시고 대접하는 것이 솔직히 부럽기만 했다. 리더라면 뭐든지 통과, 리더라면 누군가에게 칭송을 받을 자리, 리더라면 한 조직을 잘 이끄는 자리 하여튼 부럽고 나도 그 자리에 빨리 서고 싶었다. 이제야 생각되는 것은 그것이 섣부른 판단이고, 나의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좀 더 연차가 필요했고 경험이 더욱 풍부해야 했었는데, 나의 욕심이 과했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조직에서 벗어나면서 내가 일할 곳이 없을까 싶어 시건방을 떤 적이 있다. 오로지 나의 생각뿐이었는데도 남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겸손하지 못한 것 같다.
우연히 선배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좀 더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에 갈 기회가 있었다. 사실 그만한 연차가 되지 않았는데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오로지 열정만 요구하는 그곳에서 어쨌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것저것 계산할 여력이 크지 않았다. 무작정 준비해서 도전해 보았다. 그리고 떠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대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감이 현실과 부딪치는 순간 실망 이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다.
어렵게 들어간 새로운 조직에서 참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전보다 더 이상한 사람 때문에 버티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직장생활이라고 하지만 가족까지 거들먹거리며 나가게 만드는 이상한 이사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도 한 가정의 가장일 텐데, 누군가에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일 텐데 참으로 삶이 다른 그 사람 덕분에 몇 달 만에 그 자리에서 나오게 되었다. 기존보다는 높은 자리였고 환경도 괜찮았다. 기존 다니던 회사와는 정말 다르고 대기업에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사무실을 매일 느끼고 경험하게 되어서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잘못된 리더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큰 상처만 남긴 채 원치 않는 나락으로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지, 나는 그런 리더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도 그런 자리를 꿈꾸고 있었다. 바보처럼 말이다.
몇 달간 쉬고 다시 들어간 새로운 조직도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그 자리는 한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그런 리더의 자리였다. 멋진 나의 자리도 있었고, 회사 대표 이름이 적힌 명함도 있었다. 몇 없는 초라한 회사였지만 그래도 원하고 바라던 가장 높은 자리였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나에게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리더의 그릇이 되지 않았는지 직원들과의 원만한 소통을 잘하지 못했고 원하고 바라던 것을 보다 쉽게 얻을 수도 없었다. 직원들의 험담, 직원들의 불평 등이 나를 목조이게 만들었고 특별히 법인 대표의 갑질과 늘 무시하며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들의 행태 때문에 온갖 수모와 함께 짧은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저 억울한데 말 한마디도 못하면서 말이다.
더욱 좋은 사람, 좋은 리더를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받았던 온갖 수모를 잊을 만큼 참으로 열심히 다해왔다.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아도 그저 내 일 가운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소문이 어찌나 무서운지 당분간은 그저 나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참 많았다. 일일이 찾아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다. 과거의 그때가 계속 생각이 나서 그저 나의 목을 휘감을 뿐이었다.
직장생활이 녹록하겠는가? 편하고 행복하면 직장생활이겠는가? 힘들 수도 있고, 좋은 일들도 있겠지만 굳이 평가해 보면 전반적으로 맘 편하지 않는 곳이 이곳 직장생활인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참으로 초라하고 네가 있을 곳이 아니며 능력이는 네가 좀 더 나은 곳에 있어야 되지 않냐는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내가 나에게 원하고 바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는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참으로 헷갈리게 만든다. 때론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맞는지 말이다.
그런데 과거의 비참했던 기억들이 밑거름이 되어 함부로 리더나, CEO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실제 리더의 고충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것 들게 취해 섣불리 리더의 자리에 선다면 또다시 나는 앞서 경험한 것들을 되풀이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더 두렵다. 또다시 그런 수모를 겪고 싶지 않다.
내가 함부로 리더, CEO가 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리더는, CEO는 조직의 모든 분야에 두루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에게 온전한 슈퍼비전을 줄 수 있는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따르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야 꼰대가 되지 않으며 나의 경험만을 직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곧 리더가 된다면 예비 리더라면 지금 분야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고 역량을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직원들도 리더를 잘 알고 있다. 수군수군 거리며 잘 알지도 못하는 리더라며 평가하는 그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2. 리더라면 CEO라면 조직의 성과도 함께 창출해야 한다. 어떤 모양이든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리더의 고유 영역인데, 성과 창출에 대한 부담감이 참으로 크다. 능력 있는 직원이 있으면 된다고는 하지만 리더가 능력이 없고 리드할 수 없다면 조직은 다른 곳으로 향해 갈 것이다. 리더는 성과에 민감하지만 리더의 얼굴에는 여유라는 모습이 절대 필요하다. 조급한 모습이 많다면 조직도 조급해지고 결국 실수하기 마련이다. 웃음기 없는 리더라면, 성과 창출 때문에 민감해있어서 웃음기가 사라졌다면 그 조직의 웃음과 밝음 조차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3. 리더도 사람이다. 리더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리더에게 아무런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거나, 아무런 코칭이 없다면 처음과 다르게 조직은 엉뚱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실수는 넘어가더라도 조직의 실수는 곧 패망될 수밖에 없다. 실수의 위중함이 매우 크다. 리더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거나 싫은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으면 결국 리더는 큰 오해 즉, 자기가 잘한다는 개인 중심의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에 결국 실수하게 되고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만들 것이다. 리더가 어느 정도 역량, 분명한 가치관이 성립되었을 때 실수하더라도 곧 회복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무너진다. 회복불능상태로 말이다.
4. 개인 스스로도 자기를 책임지지 어렵고 버거운데 리더는 내가 있는 조직과 직원들을, 직원들의 가족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가족들까지 책임지는 것이 도리어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는 그런 자리라는 것이다. 얼마나 막중한 일인가? 준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막중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섣불리 책임졌다가 우리 모두가 망하기 일보직전일뿐이다.
5. 리더의 자리에 서는 데 있어서 칭찬과 응원도 있겠지만 그 자리를 시 셈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충분히 칭찬할 법도 한데 어떤 이유를 대면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이들도 종종 보게 된다. 물어볼 법도 한데 듣지 않고 그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결국 나를 비방하는 모습을 본다. 종종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각자가 의인이 되어 리더를 끌어내리거나, 이 시대의 위대한 의인이 되어 고발하는 것에 참으로 익숙하기만 하다. 결국 내려온 리더나 그 조직의 사람들조차도 온갖 수모를 겪었는데도 그들의 비난의 수위를 내려갈 줄 모른다. 자기는 아니라면서 남들을 입방아에 올려서 구설수로 끌어내리는 사람들, 자기들은 옳지만 상대방은 옳지 못하는 이상한 프레임을 씌우는 그런 사람들 참으로 못됐는데도 그들을 길거리를 당당히 걸어 다닌다. 사람들이 다 좋은 면만 있는 것도 잘 알며 그만큼 약점, 부족함점도 제법 있지만 리더는 강점보다 약점이 더욱 강조되고 비추어지는 그런 자리이다. 때론 그런 약점들이 구설수가 되고 결국 나오지도 못하고 숨어서 지내는 그런 리더들을 보면서 그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까 두려워 섣불리 리더의 자리에 서고 싶지 않다.
6. 리더는 지금보다 돈을 더 번다는 착각을 한 적이 있다. 경력 정도가 높기 때문에 직원들 입장에서는 많은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을 더 버는 만큼 나가는 돈도 제법 많다. 어느 자리에 있던 내가 먼저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많고, 그렇게 과감하게 결제를 하지 않으면 도리어 비아냥거린다. 가끔은 직원들을 위해 과감하게 커피를 쏴야 하는 상황, 식사를 사줘야 하는 상황도 있고 같이 식사하러 가자며 직원들이 이야기했는데 리더인 내가 결제를 하지 않으면 이상한 분위기가 맴돈다. 사실 나도 많은 리더들에게 얻어먹기도 했지만 말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쿨하게 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버는 만큼 나가는 돈도 제법 있다는 것이다. 품위유지라는 말 들어 보았는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섣불리, 함부로 리더나 CEO가 되고 싶지 않다.
섣불리 리더가 되었다면 온갖 수모를 겪었고 최근 들어 겨우 회복되고 있는데 또다시 그런 상황 가운데 놓여 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와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면 난 어떡하지? 그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과거처럼 섣불리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가 탐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더해가며 생각하고 결국 판단해 볼 것이다. 높은 자리가 나를 그에 맞게 만들어가겠지만 무책임하게 그 자리를 탐하고 싶지 않다. 그 자리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때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