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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man Sep 03. 2023

사명을 감당하는 길 한 가운데에서

55. 사명을 감당하는 길 한가운데에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절대 늦추거나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다.     

어느 누군가의 인정조차 없어도, 버겁고 힘들어도 그것이 나의 사명이기 때문에 묵묵히 감당하곤 했다.           

사명이라는 생각에 무조건적인 열심은 때론 버겁고 힘들게 느껴지곤 했다.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혼자만 죽을 만큼 열심을 다해보니 괜히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아마 혼자서 애쓰는 모습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열심을 다하는데도 그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아서 괜한 오해를 살 때가 있다.      

시간을 다투며 참으로 열심히 일했건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당연시 여기는 주변 이들의 평가가 참으로 싫다. 그들을 위한 삶도 아니고 오로지 나를 위해 사는 것인데도 오지랖 넓은 주변 이들의 어설픈 평가가 도리어 기운을 빠지게 만든다. 열심을 다하고 있는데도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잠시 쉬는 꼴도 보지 못하는 그들이 정말 싫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한 일이 또다시 난간에 부딪쳐버렸다.     

직장생활이 늘 그렇지라고 치부해 버렸지만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다.      

평소보다 많은 업무도 버겁고, 평생 이렇게 일이 많은 적이 없는데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업무가 참으로 버겁고, 열심을 다하는데도 인정보다는 당연하게 여기고 부족한 점만 이야기하는 주변이 들 때문에 한숨만 나온다. 이러다가 내가 원하고 바라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도리어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깊게 밀려온다.           

함께하고 협력해도 모자란데,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착각하에 남들의 도움과 협력은 참으로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나도 그랬으니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런 것이 싫어서 더욱 내 사명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나를 위한 삶은 곧 포기하게 만들고, 금방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명 가운데 이뤄지는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을 만들곤 한다. 아직 사명이 완성되지 않아도 오로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열심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완성을 이룬다.          


함께 어울려 사는 우리의 삶은 제법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열심을 다하는 사명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때문에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리어 비판하고 비방하며 완성하고자 노력하는 사명자를 도리어 방해하는 꼴을 보여준다.           

그래 맞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솔직히 응원해 주기를 바라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의 적이 되어서 방해하곤 한다.     

솔직히 나는 이 말을 듣고 싶다. 그런데 비난만 하는 이들을 만나면 내가 굳게 잡고 있는 사명조차 이상하게 느껴지곤 한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며,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생각이 깊어지고 깊어져서 결국 포기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참 바보처럼 말이다. 내가 하겠다는 사명이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바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마흔이 훌쩍 지난 지금 내 주변에 나의 삶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 참으로 씁쓸하다. 도리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데 내 주변에는 진지하게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다. 과거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절교하게 되었고, 믿었던 선후배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아 예전처럼 가까이 설 수가 없게 되었다. 가족은 크게 다른가? 도리어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까 싶어 도리어 예전과 다르게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면 진실한 나눔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듣기는커녕 각자 자기 자랑만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리어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귀찮해하는 듯한 모습이라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정말 고민 끝에 나눈 이야기인데도 나만 시급했지 그는 나의 이야기에 1%도 공감해주지 않았다. 귀찮듯이 듣는 그의 모습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잘 몰랐을 때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인줄만 알았다. 그렇게 보기 좋아 보였는데 실제 깊이 관계를 맺어보니 보기와 다른 상처투성이었다. 혹여나 나의 상처가 상대방에게 잘못 전달되어 내가 느끼듯 그들도 동일하게 느낄까 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어느 날 진지하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많이 컸다. 포기하면 더 나아지겠지라는 마음만 더 깊이 들 정도였다. 내가 왜 그만두고 포기해야 하나 내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결국 돌아온 것은 사람과의 상처였다. 늘 좋지 않은 시선과 늘 비난하는 이들 때문에 내가 더욱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사람 때문에 그만둔다?     

누구 말대로 그 사람을 피해서 자리를 옮겼더니 더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것은 참 어리석은 모습이다. 어느 조직에든 좋은 사람도 많지만 기대 이하인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 많으며, 절대 사람을 의지해서는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사명자라면 사람 때문에 그만둔다는 생각보다는, 이러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사명자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높은 자리만, 위대한 결과에만 집중하지만 그들도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때때마다 나타나는 문제들과 어려움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였을 때 결국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풍성한 나무만 보기 마련이다. 그 나무가 얼마나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버티고 버텼는지 모른다. 작은 방울토마토도 온갖 비바람을 맞았고 버텨왔기 때문에 지금의 맛있는 방울토마토 열매를 맺은 것이다. 솔직히 버티기 어렵다. 잘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위로답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의 인생은 바로 사명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좀 더 인내하고 기다리고 최선을 다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 참으로 혼란스럽지만 나는 오늘도 그 길을 걷는다. 때론 마음이 조급해서 때에 맞는 아름다운 환경들을, 점점 이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주변을 보면 참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꼭 잊지 않기를 원한다.           

“잘하고 있어!”     

“좋은 생각이야! 당신은 잘해나가고 있어!”          

비록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다.     

남들이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쑥스럽지만 나에게 한번 말해보면 어떨까 싶다.          

“잘하고 있어!”     

“좋은 생각이야! 당신은 잘해나가고 있어!”     

“당신 참 멋진 사람이야!”          

때론 남들과 비교하면서까지 늦춰졌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의 페이스를 잘 유지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그 사명이 완성될 날이 올 것이다. 본명은 우리의 길의 끝은 있기 마련이다. 


56. 똥파리     

가끔 시장을 가게 되면 생선 위에 뱅뱅 돌고 있는 똥파리를 보게 된다. 깨끗한 것도 깨끗한 것이지만 가끔은 때 묻음이 약간은 정겨움이 느끼기도 하고, 빡빡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뱅뱅 도는 똥파리가 참으로 귀엽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먹는 음식에 살짝 앉은 똥파리일 경우에는 더럽다며 바로 적가락을 내려놓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똥파리가 우리 주변에는 참 많다. 그저 더럽고 협오스럽다고 피하는 것도 이제는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똥파리도 우리와 동행하며, 원치 않지만 보다 쉽게 만나는 이들이 되고 말았다.           

세상을 살다 보니 참으로 정겨움이 느껴지는 것 이상으로 안타까운 상황들이 참으로 많이 겪게 된다. 비록 나의 삶 가운데에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자기에게 이득이 될 것 같으면 그 주변을 맴 보는 이들을 보다 쉽게 보게 된다. 순수한 마음보다는 무엇인가 빼먹고자 하는 그런 모습으로만 보여서 그들이 참으로 경계된다. 나한테도 쉽게 다가서는 이들을 만나게 될 때면 순수히 받아들이기보다는 경계의 눈초리로 그를을 우선 판단하고 경계하게 된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좋은 사람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나랑 친한 사람보다는 안 좋은 기억으로 새겨진 이들이 많아서 가끔 생각나는 이들이 주로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힐만한데도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깊이 새겨지는 것 같아 미칠 노릇이다. 더더욱 나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나는 것은 참 곤욕스럽기만 하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기도 하고, 평생 잊고 싶은 기억들이다.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화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다.           

그도 그의 인생을 살아가고 나도 나 나름대로 살고 있을 때,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무렵 참으로 우연하게 그를 다시 만났다. 애써 내 마음에서 지워버렸는데 그날 이후로 애써 지운 것이 아니라 깊이 숨겨놓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눈을 피했고, 그와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참으로 친절하고 열심을 다했던 그 모습 그대로 상대방에게 동일하게 대했다. 변화되었다는 안심과 다행히 아니라 그의 동일한 패턴처럼 처음에는 참으로 열심을 다하다가 나중에 뒤틀리면 온갖 성질을 내며 난리를 치는 그가 또다시 생각이 났고 괜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한 조직을 흔들고, 여러 지역에서 악랄하게 행했던 그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뻔뻔하게 말하고 행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의 친절함에 살살 녹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듯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이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사람의 악랄한 태도가 참으로 싫었다. 착각하는 이들도 싫었지만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했으면서도 아직도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어른 같이 않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도 나름 인생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친절과 호의를 베풀며 나름 열심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무엇인가 착각하며 자기의 잘못도 모른 채 곧 다가올 뻔한 결과도 또 펼쳐질까 싶어 걱정도 함께 앞선다.           

그런 사람에게 인사를 왜 안 하냐고 그런다. 자기 또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는데 속 사정도 모른 채 애써 외면하는 내가 꼴 보기 싫었나 보다. 그가 싫어서 외면한 것도 있지만, 그도 그이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위로받지 못한 내 마음에 또다시 더 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애써 그를 외면한 것뿐이다. 왜 그 사람 때문에 아직도 상처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 나름 애쓰고 있는 중이다.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때론 나의 깊은 마음까지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뭐 세상이 다 이렇지?’라는 생각 때문인지 나의 깊은 마음을 쉽게 나누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에 나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했었지만 별말 없고 전혀 공감하지 않는 그 모습에 더욱 상처를 받아 어느 때부터인가 누군가에 나의 속 마음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변해갔다.           

세상을 살다 보니 애써 그들을 피해 다녔는데 또다시 돌고 돌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애써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얼굴은 그저 붉어질 뿐이었다. 주변에는 왜 그 사람과 맘 편하게 인사를 하지 않냐며 이야기하지만 또다시 그와 엮기고 싶지 않아서 애써 그를 피하거나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다. 이것이 잘했고 못했고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저 나의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나와 다르게 상대방의 모습과 태도는 전혀 달랐다. 자기의 잘못도 모른 채 나의 잘못만을 고자질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을 높이 세워주려고 노력해 준 것은 전혀 모른 채 자기들의 이야기만 할 뿐 결국 나만 나쁜 놈이 되었다. 그 열심도 있었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은 다 잊히고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이야기해 버린 그들의 모습이 싫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말과 행동조차 정말 잊혀버린 채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정말 싫다.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하는 법인데 전 사람과 비교하며 자기의 리더십을 자랑하는가 하면, 그가 나를 대신하여 다시 세워주었건만 그것도 모른 채 그저 자기 기준대로 판단하여 말해버린 그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당장 따지고 싶지만 그것도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숨죽이듯 살아왔는데, 나도 제법 큰 상처를 받아 아물기는 시간이 걸린 만한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이 참으로 싫다.           

‘괜히 진 것 같은 생각?’          

직원들과 마찰이 있었던 것이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거잖아요?라는 이야기를 참으로 쉽게 이야기하지만 상처받은 내 마음이 아물려면 아직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대할 수도 없고 자신도 없다. 아직까지는 그들을 다시 만나면 그날 그때가 생각이 나서 며칠째 잠을 못 청하게 되니 가능하면 그들과 부딪치거나 엮기고 싶지 않다.      

피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그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도 참으로 자신이 없다. 괜한 분노를 하게 될까 봐, 더욱 큰 상처를 받을까 봐 아직은 그들과 만나고 싶지 않다.           

*마음에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방법(공동 작성자: Kelli Miller, LCSW, MSW)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까지는 시간이 절대 필요하다. 너무 심하게, 과하게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살려면 내 안에 있는 상처, 분노, 억울함을 어떻게든 풀어주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한동안 그 사람과 접촉하지 말자. 소설 미디어에서 언팔로우, 차단 키고 문자나 전화도 하지 말자. 직접 만나는 것도 당분간은 하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용서하고 풀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사실 그들과 계속 만남과 연결이 있다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위험이 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고 용서할 준비가 됐는지 판단할 수 있다. 접촉하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 그 사람을 남겨두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먼저 아니라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준 아픔, 상처, 분노 등을 모두 받아들인다. 상대방이 상처를 주었거나 학대를 했다면 처리해야 할 기억과 감정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기분을 일기장에 적고 울고 싶으면 울자. 상처에 대한 생각을 억누르면 안 된다. 감정 그대로 글로 남기려고 한다. 그를 더욱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있지만 그리고 나의 판단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처받은 것을 억누르지 않고 표현하였을 때에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부치지 않을 편지라는 것을 감안해 모두 쏟아내자. 상대방이 어떻게 상처를 주었는지, 자신에게 왜 상처가 되고 분노하게 됐는지,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상대방에 대한 좋은 감정까지도 모두 쓴다. 편지를 다 쓰고 나면 찢어 버리자. 이렇게 하면 감정을 떨쳐버리는 치료 효과가 있어서 용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다해보자. 삶을 풍성하게 해 주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이런 활동들이 상처가 무뎌지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행복을 느끼고 건강해지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있던 상처, 분노, 억울함 등은 진정된다. 이렇게 되면 상처를 받은 경험을 용서가 가능한 사건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57. 부모의 시간은 멈추었다.     

나에게는 3명의 아이가 있다. 각자의 특성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그런지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아빠, 엄마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말과 행동 때문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나는 안 그랬는데 제는 왜 저럴까라고 행복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결국은 예전 나의 모습이 잠시 비치는 것 같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늘 언제나 바쁘게 살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늘 그랬듯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가장으로서 보다 더 일을 해야만 했고 부담도 되고 힘에 벅차지만 그 일들을 참아내며 버텨내며 그렇게 살아왔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들도 애써 표현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런 마음 하나로 버티고 버티셨을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그런데 그 버팀도, 어렵지만 애써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족들 때문은 아닐까 싶다.     

당장 그만두고 싶고, 당장 포기하고 싶은 마음 아마 수천번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가족만은 지키려는 그 마음 때문인지 흥분된 내 마음을 잠시 내려놓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가 아프면 그리고 내가 힘들면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겠는데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아프거나,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어딘가 어려움이 생기면 애써 버틴 내 마음이 와르르 주저앉는 듯한 기분이 든다.           

힘든 세상을 짊어지며 애써 버티며 살던 내가, 힘겨운 하루의 인생을 겨우 버텨내며 힘겹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한두 명씩 아빠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이 있어서 밤새 애쓰고 힘들었던 그 짐들이 잠시라도 가벼워진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아빠의 품에 쏙 들어온 우리 아이들의 숨결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 아이들 때문에 내가 지금 버틸 수 있는 것이고 아직까지는 내가 책임질 가족들 덕분에 섣불리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시 접기도 한다. 그만큼 가족이라면, 아빠라고 부르는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           


나는 어릴 적 그렇게 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싶다. 나도 넓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싶었고 오늘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에게 풀어놓고 싶었고, 잘한 것을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라는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투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고 점차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는 늘 어려웠다. 어느새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를 찾기보다 어머니를 찾는 것을 보면 이젠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도 없을뿐더러 깊이 새겨진 상처가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것 같다.          

 

지금에서야 “애들은 나한테 전화하지 않고 자기한테만 전화한다니까?”라는 섭섭함을 어머니에게 말씀하시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애써봤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어머니에게만 향한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같이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수천번 다짐하곤 했었다. 그런데 말은 쉽지 아버지에게 배운 그 무뚝뚝함이 애들에게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지금도 참 많이 놀랍기만 하다.           

툭 던져지는 말 한마디가 왜 싸늘한 걸까? 좀 더 친절하게 해야 할 텐데 우리 아이들에게 무작정 던지는 말들이 온갖 상처투성이다. 얼마나 섭섭하고 힘들까? 우리 아이들 마음속에 얼마나 상처들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그런데 잘 안된다. 배운 게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불쑥 말해버리고 후회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싫어진다.           

어느 부모든 아이들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한지는 잘 알 거라고 생각이 든다. 말은 쉽게 생각도 쉽겠지만 표현이 안될 뿐이지만 말이다. 아빠로서의 명함을 받은 직후에는,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참으로 어색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애써 개인적인 것들을 감추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삶으로 바뀌어버렸다. 남편에게 가던 것들도 아이들에게 가버렸고, 아내와 이야기하던 꽁냥꽁냥스러운 이야기는 어느새인가 잊혀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사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먹어도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버리는 것을 보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부모가 되어버린 것 같다.           


때론 나의 삶이 없어지고, 나의 이름조차 잊히고 있어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빠와 엄마 앞에서 애교 부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볼 때면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어느새 우리 집에는 3명의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전쟁터 수준의 분주함과 정신머리를 쏙 빠트려버린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장난감들과 정리되지 않는 집안꼴, 집 안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형제들끼리 싸우게 되면 결국 작은 아이가 형한테 져서 울음이 터지고, 피곤하여 소파에 누워있으면 하루종일 아빠만 기다렸는지 놀아달라고 보채기만 한다.       

    

늘 떠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익숙하지만 갑자기 조용해지면 괜히 긴장감이 맴돈다. 결국 조용하면 일이 터지곤 한다. 특별히 우리 막내딸은 엄마의 화장품을 자기 온몸에 발라놓거나, 지워지지 않는 매직과 볼펜을 가지고 소파와 벽등이 온갖 낙서를 해 놓는다. 어느 날은 변기통에 무엇인가 넣어 놓고는 물을 내리는 바람에 변기통이 막혀 힘들게 변기통을 뚫기도 한다. 수습하느냐 괜한 돈도 쓰게 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다오라는 마음 때문인지 장난꾸러기 세 아이들의 장난스러움을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도 내 마음과 같지는 않지만 아이들이니까, 그래도 건강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애써 너그럽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잠잘 때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사랑스러워요!’          

하루하루가 참 정신이 없다. 아빠를 참으로 정신없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 때문이지만 그러나 그런 아이들 덕분에 모든 일들 모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 결국 다시 일어선 것은 우리 아이들 때문이었다. 포기하고 싶어도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보다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더 용기 내서 버티고 버텨냈다.           

그런데 이런 개구쟁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아프면 속상한 것 이상 참으로 마음이 힘들어진다. 며칠 사이에 우리 막내딸이 병원을 다녀왔는데 도대체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제법 말을 할 줄 알아서 먹기도 전에 약을 안 먹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쓴 약이 싫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목에 염증이 생겨서 쓴 약을 넘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빠로서는 빨리 약을 먹여 제법 오른 열을 내릴 생각으로 아픈 딸을 잡아 억지로 약을 먹인 생각을 하게 되니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며칠간 휴일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병원에 사람이 참 많다. 병원에 급히 입원해야 해서 아침 7시 20분경에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많아 결국 오후 늦게 입원하게 되었다. 긴급히 치료를 하고 입원을 해야 하는데 맘 같이 않게 입원하지 못하는 것도 못하는 것이지만 힘든 몸을 가지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우리 딸내미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다. 며칠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는 잘 모르나, 아직도 병원에서 아빠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내 마음이 아린지 모르겠다. 그냥 대신하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5년 전일까 허리를 심하게 다쳐 디스크를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2명이 있는 관계로 아내가 나를 간호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친 몸을 가지고 혼자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참으로 불편할뿐더러 고스란히 병원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내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간호를 해주셨다. 어머니도 제법 연세가 있으셔 간호하기 버거웠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나를 잘 간호해 주셨다.           

막내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5년 전 나를 간호해 준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아마 어머니도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면서, 힘들게 잠을 청한 아들을 보면서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 생각이 드는 무렵 마음이 참으로 찡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주신 거름 때문입니다!”          

입원 수속을 맞히고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요즘 어떠세요?”라고 이야기하려고 전화를 드렸는데 수화기 속에 들려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굉장히 잠겨있었다. “어머니 왜 목소리가 잠겨 있어요?”라고 여쭙자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안 좋다!”라고 이야기를 건네시는 것이다. 이쁜 딸에만 신경 쓰던 못난 아들 같아서 굉장히 죄송스러웠고 무엇보다 우리 딸보다 덜 보게 될 부모님이 생각이 나서, 언젠가는 부모님과 이별을 할 날이 그리 많지 않겠구나라는 마음이 들게 되니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이 더해져만 갔다.          

어느 누구의 말대로 아이가 아플 때 시간이 멈춘 부모로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우리 두 아이는 어느새 잠에 들었고, 막내딸은 병원에서 고군분투하지만 그래서 부모로서 시간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아이들 때문에 나는 지금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에 우리의 인생이 참으로 힘들고 버겁지만 조금이나마 힘을 내본다.   
 


58. 귀하고 귀한 삶     

일을 하다 보면 정신없이 보내다가 꼭 실수를 하거나 넘어지는 일이 꼭 있다. 그것이 나이가 제법 들어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어느 누구나 실수하여 넘어지는 것은 일반 우리의 삶이듯 참으로 익숙한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 바쁘면 볼 수가 없다. 일상의 평범한 것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여 갑작스럽게 나타난 돌에 부딪쳐 넘어지는 사고를 범한다.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될 경우에는 그런 바쁨의 모습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다 여유 있게 살펴봐야 하는데, 내 앞에 놓인 긴급한 일들에만 집중하게 되어 미처 다른 것들을 살필 겨를 없이 순간 실수하게 된다. 하긴 할 일이 많고 처리할 일이 많게 되니 순간순간 실수를 원치 않게 범하게 된다. 그렇다고 많은 일들을 내려놓는 무책임한 모습도 리더로서 필요한 자세는 아닌 듯하다. 많은 일들을 한다? 참으로 멋져 보인다. 능력이 있어 주어진 일들이 많아지겠지만 멋짐에 취해 더 큰 실수를 범하게 되는 사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때론 바쁨이 좋지 않다. 그냥 가만히 서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겠지만 바쁨을 통해 미쳐 보지 못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 많이 바쁘다. 안 되는 체력을 버텨내면서 주어진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있지만 우리 아내는 혹여나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 늘 있고 특별히 지금 이때 아이들과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해 평생 후회하고 아이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어색해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보지 못하는 경향들이 있다. 바쁘게 살면서 평소와 다르게 높은 곳에 있다 보면 일상의 우리들의 삶을 보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높은 자리에서 서있게 되어있다. 그 높은 자리를 넘보기 위한 많은 이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쟁취하였지만 자리가 참으로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높은 자리가 곧 권위인지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과 대접이 기존과 다르게 참 많다. 그런데 그 대접에 익숙하게 되면 어렵게 올라간 그 자리에 내려올 수 있는 위험이 곧 있다. 어느 날 대접하지 않거나 나를 무시하는 말투로 대하는 순간 그냥 웃어넘기거나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판단하고 평가하여 평소와 다른 무서운 말투와 판단을 하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일을 하는 것인데 그러한 권위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 조직은 좀 더 경직되게 되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냉랭해지게 된다.      

단순히 그저 높아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남들의 높임은 때론 비판의 중심에 서있다는 이야기임으로 준비되지 않고 섣불리 올라간 자리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많은 이들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얼마나 비참한지 더 이상 그런 자리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어버리고 내 작은 자존심마저 정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올라가기 쉬어도 내려오는 것은 순간인 것이다.      

사람은 참으로 이상하게 높아지고 싶어 한다. 그 자리가 참으로 멋지기도 하고 지금보다 훨씬 돈도 많이 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신중하지 않으면 그것이 나의 인생 가운데 독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처음은 쉽게 옮길 수 있겠지만 그것이 쌓이게 되면 열심을 다하는 우리의 인생을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니라 힘들면 그만두는 옹졸한 사람, 인내심이 적은 사람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이 힘들고 사람들이 싫어서 마음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 때 속 시원하게 내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맘대로 되는 일들이 많은가? 대부분 내가 주인공이 아닌 이리저리 차여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 싶다. 내 맘 같이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 같지 않게 무례하고, 일만 많지만 아무런 성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인생이지만 의도치 않게 흘러가는 것도 우리들의 삶이요 인생 아니겠는가? 너무나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말아라.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열심을 다해 그 일에 충실한다면 언제 가는 그 일이 이뤄지는 날이 돌아올 것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맘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하고 나의 고귀한 인생을 아무렇게 치부해 버려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나이니까 그것을 할 수 있었고, 우리니까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등산을 하게 되면 내려오는 이들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맴돈다.

“네! 거의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실제 그 이야기를 들어도 곧 정상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힘이 나는 것은 정상을 다녀온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다 왔다는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정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좀 더 힘을 나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도 곧 정상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 않는가?

“네! 거의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보이지 않는 지금 내 앞의 현실만을 보지 말며, 곧 다가올 우리들의 정상을 좀 더 기대하며 천천히 나아가보자.     

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이 참 조급해진다. 내 마음이 원래 그런 것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과 상황 때문에 마음이 참 조급해진다. 남들은 벌써 이룬 것을 보면,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 때문에 더욱 마음이 원치 않게 조급해진다. 준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음이 조급해지면 급히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때에 나는 실수를 항상 범한다. 원치 않는 원망의 소리와 함께 감당할 수 없는 일까지 함께 벌어지고 만다.      

당장 일어났으면 좋겠다. 당장 점수가 나오고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수능시험을 보고 한 달 동안 기다리는 그 마음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참 필요하다. 기다렸을 때 묵직해지며 성숙해진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봄날이면 항상 여러 식물을 키우며, 잔디밭에 나무를 심어놓는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너무 더디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도 주고 거름도 듬뿍 주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서 괜히 죽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만 앞설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비바람이 휘몰아친 이후 보게 된 늠름한 대추나무는 괜한 나의 걱정이었구나라는 생각에 머쓱해진다. 그 어느 날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때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날이 아니고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이뤄진다. 나는 그날을 기대하며 이뤄질 줄 믿는다. 우리의 인생은 각자의 출발선에 시작하였다. 누군가가 나의 경쟁자가 아니며 나의 인생길을 꾸며가는 것이다. 하나하나씩 이 루어 가보면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이루어진 것도 보게 되며, 예상하지 않는 일들이 선물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 아니겠는가? 아무런 굴곡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면 우리에게 맞지 않는 재미없는 인생일 것이다. 비록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천천히 하나씩 이 루어 가보면, 극복해 가 보면 결국 완성되고 정복해져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도, 개인의 삶의 문제도, 사회 문제도, 마음도,

한순간에 일어나는 혁명은 없고 변화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요요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지속적인 관리이듯

때론 뒷걸음에, 때론 제자리걸음에 답답하고 조바심이 날지라도

변화를 위해선 지속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작가)     

“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지지치 않는 것이다.”(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작가)     

어느 날은 휘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지쳐 어느 나무에 숨어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밝은 햇살에 참으로 따뜻해 일부러 햇살을 맛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아 너무나도 기쁘기도 하고 온갖 상처를 주며 도리어 외롭게 느껴지는 그날도 있지만 우리들의 인생이 어느 순간과 상황 때문에 포기해야만 하는 그런 하찮은 인생이 아닌 것이다.      

“귀하고 귀하다!”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귀한 삶인 것이다. 때론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지만 잠시만 숨을 고르며 천천히 나의 인생의 발걸음 내딛자.


59.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3년을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종이 한 장의 학위겠지만 그동안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해왔다. 사람 만나는 일도 줄이고, 쉬는 날도 반납해 가며 그 일에 집중해 갔다. 어쨌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날 날이 있으면 억지로 시간을 내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일쑤였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일도 있어야겠지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잠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얼마나 섭섭하고 속상하겠지만, 독박 육아에도 불구하고 못난 남편 그놈의 학위 수여를 위해 대신 희생하고 있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어쨌든 결과가 나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얼추 마무리가 되어 심사를 기다리게 되었다. 좋은 결과는 아니겠지만 열심에 보상을 받은 듯 통과는 될 줄 알고 심사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흘러간다면 어쨌든 통과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데...     

큰일이 나고 말았다. 전혀 예상 못할 일이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지도해 주신 선생님이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고 말았다. 평소 통화하고 만나보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어떻게 보면 그동안 너무나도 감사했던 선생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평소 나와는 다르게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당연히 3년 동안 애썼던 그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해 보였다. 한 학기를 미뤄야 하는 상황도 참으로 당황스럽지만 내 것보다 선생님의 건강이 먼저 걱정이 들어서 내 마음은 안되었다는 좌절보다 선생님을 향한 걱정이 커버리고 말았다. 혹여나 불편한 마음을 드릴 수 있어서 미처 전화는 못 드리고 어렵게 문자를 보내드렸다.           

10분 뒤였을까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소와 동일한 말투와 보다 무겁지 않은 그런 목소리가 내 전화기에서 울렸을 때는 어찌할 바 몰랐다. 위로를 해드려야 하나 아님 조심스럽게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나 한참 고민이 들었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제자를 향해 우리 선생님은 참 밝은 목소리로 나를 도리어 위로해 주셨다. 곧 심사일일 텐데 나 때문에 염려가 있을 나를 도리어 위로하시며 끝까지 함께 해주신다는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참으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선생님께 해드리지 못했는데 도리어 나를 위로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 곧 심사가 되냐 마냐, 통과가 되냐 마냐라며 걱정하고 염려했던 나의 모습이 잠시 부끄러워졌다.           

참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참 반갑지 않고, 그저 듣기가 싫다. 좋은 소식이면 좋으련만 늘 나쁜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참으로 사랑했던 할머니께서 소천했던 소식, 참으로 좋아했던 대학교 동기의 죽음, 함께 일하는 동료직원의 가족의 갑작스러운 소식, 믿었고 존중했던 선배들의 안 좋은 소식,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 교통사고의 소식 등등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면 나의 인생이 참 허무하며 내가 이렇게 애써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갑자기 떠나 버리는 그 슬픔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세상이 싫었고 그렇게 애쓰며 버티고자 했던 나의 모습이 참으로 불쌍히 보이기만 했다. 나를 위한 삶도 삶이지만 그동안 그들을 살펴보지 못하는 미안함과 함께 도리어 제대로 상처받고 넘어진 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하며 줄곧 열심을 다했던 나의 못난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나서 더욱 눈물이 내 눈을 가린다.           

허무한 이 인생 이렇게까지 열심을 다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내려놓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느 날 우리 아내가 예전 일어났던 사고로 인해 아직도 헤아리지 못해 힘들어하는 지인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오로지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지인을 만나는 날이면 평소와 다르게 참으로 힘들어했고 그 답답함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나한테 전해졌다. 나도 힘들어 아내에게 말하고 싶어도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게 되니 도리어 나의 말이 잊히기 시작하였다. 벌써부터 그 상황에 깊이 빠져 있는 아내는 자기의 삶조차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아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자기야! 자기가 위로해주려고 해서 만나는 것 같은데, 도리어 그의 상황에 깊이 빠져 있어 어느 날부터 힘들어하는 것 같아!”          

고통스러운 그분의 상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감까지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어설픈 위로가 상처가 될 수 있어 나와 우리 아내는 그 가족을 위해 오로지 기도만 해줄 뿐이다.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며, 이 세상을 살아갈 조금의 힘도 있을까 싶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일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나로서도 참으로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찌할 수 없어 그저 내 품에 한참 울던 그의 마음이 아직도 내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어찌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절대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사정과 환경은 다르지만 나름 고통스럽게 산다. 때론 그것이 몸소 표현되기도 하지만 애써 숨기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여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의 섣부른 위로는 도리어 상처로 받는지도 모르겠다.           

한평생 얼마나 이런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사는 것일까? 아마 우리들의 인생은 높이와 깊이의 차이가 있겠지만 행복과 또 다른 어려움이 곧 우리 인생 가운데 자주 겪게 되는 감기 같은 그런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못나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나서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늘 우리들의 삶에는 행복과 함께 어려움이 있다. 꾸준히 행복한 일들이 있어도 때론 고난 등의 브레이크로 잠시 쉬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우리들의 인생 속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때론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버거운 일들도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버겁고, 참기 힘들고,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있냐며 원망도 클 것이다. 그런데 그였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잠시 쉬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를 바란다.           

인생을 살다 보니 참으로 이해 못 할 일들이 참 많다.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인생이 아닐지라도 잠시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의 적게 경험한 인생의 답으로, 넓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그 넓은 우주 같은 우리 인생을 한 톨이라도 이해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마음으로 지금 나의 상황을 인정하고 천천히 그 길을 걷게 된다면 결국 깨닫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조금이나마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60. 꽃이 지다!     

그리 아름다웠던 꽃이 지고 말았다.     

그리 이쁘고 아름다웠던 꽃이 떨어지고 말았다.     

아슬아슬한 그 길 가운데 그래도 남기만을 바랐건만 그리 바쁘셨는지 결국 영원한 그 길을 가고 말았다.          

늘 웃음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아른거리기만 하다.     

어떠한 권위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때론 이웃사촌처럼 때론 가족처럼 나를 대해 주셨다.     

무엇인가 바라는 것보다 진심으로 다가와 주셨던 귀한 그의 얼굴이 이제야 더욱 빛난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천둥 번개에 놀라 마음을 조아리고 있을 때쯤     

그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기만을 바랬고 계절 따라 찾아오는 감기쯤이야 생각했는데     

그리 무서운 것이 그를 덮치고 말았다는 소식에 며칠간 마음을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를 들으면 괜찮을 법한데 아무런 소리도 마지막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힘을 모아 조심스럽게 꺼낸 그의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울린다. 자기 건강 걱정은 없고 오로지 잘 되기를 바라며 진심 어린 그 이야기가 나에게 전해준 마지막 이야기인 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는 그 자리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이 가득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으로 서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제야 그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어 진다.           

참으로 특별했다. 처음의 만남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특별한 만남의 시작이었다. 늘 그랬다. 그의 말투와 그의 목소리는 평소 만나는 이들과 달랐다. 조금은 특별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어찌해야 할까 싶어 참으로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 첫인상이 나의 인연이 되었고 짧지만 강력한 인상 가운데 몇 년간 이어졌다.          

늘 내 걱정을 하면서도, 나를 위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진심으로 들어주는 그의 눈빛은 참으로 감동 그 자체였다. 때론 나를 위한 이야기를 참으로 조심스럽게 건네면서 꼭꼭 숨겨놓은 꿈마저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저 할 수 있다는 그의 격려가, 때론 때 묻지 않은 응원의 한마디가 참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며 조금이나마 무너트리려고만 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서 솔직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고만 했고, 경계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어서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모습에 솔직히 당황하곤 했었다.           

이제야 그의 진심을 알게 되니 내 눈앞의 눈물이 가득 넘친다.     

그리 오랫동안 만났던 인연은 아니지만 이제야 그를 알게 되니 마음이 참으로 무너진다.      

보고 싶고 찾아뵙고 싶은데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제법 당황해하면서도 그를 찾아뵙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컸는데 벌써부터 찾아온 많은 이들이 그를 애도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통화하며 밝은 모습을 보여주셨건만 그것이 그와 했던 마지막 통화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하기만 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만 흐른다.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리운 마음, 죄송스러운 마음이 내 마음이 가득 찰 무렵보다 밝은 영정사진이 더욱 눈물짓게 한다. 지금 이 현실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어찌 우리들의 인생이 허망할까?          

시간을 내며 그를 마지막까지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 마음이 참으로 쓰라린다.     

우리들의 인생이 다 이렇지만 먼저 떠난 그의 모습이 참으로 그립기는 하지만     

그가 남긴 그의 정성과 진심을 본받아, 그가 남긴 것을 기억하며 살기를 바란다.           

오늘따라 그가 참으로 보고 싶다. 갑작스럽게 떠나 마음이 어렵지만 갑작스러운 인생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인정하며 내게 주어진 일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때론 감사하게 여기며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해하고 미안해하는 후회를 다시 한번 하지 않도록 지금 나와 함께 하는 부모님들과 가족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더욱 챙기고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지금에서야 후회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두렵기는 하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인생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지금 우리들의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알며, 사랑을 진심으로 베푸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힘겹게 떨어진 꽃잎이 메말라 갈 때쯤     

그가 보고 싶어 참으로 그리워할 때쯤     

그의 모습이 영원히 우리 가운데 남기며,      

그의 고귀한 인생이 우리들에게 큰 열매로 맺어질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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