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man Sep 03. 2023

더할 나위 없는 관계

미성숙했던 그 모든 존재들에게 작별을 고하다!

61. 미성숙했던 그 모든 존재들에게 작별을 고하다!     

나는 나로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라고 생각된다. 지속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때론 행복과 축복을 허락하지만 원치 않는 상처들이 우리들의 삶까지 침범하며 때론 낙심의 구덩이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인생이 다 그렇다고 하지만 나만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보통 우리들의 삶인 듯하다. 

나의 삶을 개척하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버거운 일들인데, 사람과의 적지 않는 영향이 애써 삶을 만들어가는 나로서는 버겁기만 했다. 사람들 때문에 포기도 하게 되고, 나의 삶이 아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조정하는 삶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책을 읽으면서 애써 숨겨놓았고 나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그 말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남들의 시선 가운데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처럼, 애써 그들의 시선에 맞춰 사는 부자연스러운 삶이었다.           

“왜곡된 걱정은 습관이 되고 최악의 상황을 홀로 리허설하면 탈진하게 된다”          

인생이라면 똑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또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만 안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생각된다. 원치 않게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이 때론 왜곡된 걱정까지 전이되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매번 왜곡된 걱정으로 말미암아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때론 하고자 하는 것보다 벌써부터 지레짐작해 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타나지 않을 일까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건 참으로 우리들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귀한 우리들의 시간조차 낭비해 버리는 듯하다.           

어느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나의 감정을 숨길 때가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힘듦을 애써 감추기도 했고 한 직장의 관리자로서 나의 힘듦을 헤아리기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힘써 일하는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다 보니 힘듦이 힘듦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버거운 인생을 혼자서 짊어지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참으로 바보처럼 말이다. 이런 바보 같은 나에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이제는 힘들다”라고 말하라.     

누구도 당신을 대신 지켜줄 수 없고, 견디기 버거운 희생은 자기 학대뿐이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고 조금은 무책임해도 된다.          

이기적이면 안된다고 배웠고 남들 먼저 배려하라고 수없이 말을 들었다. 그렇게 살던 내가 나보다 남들 먼저 신경을 쓰고 배려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것까지 탈탈 털고 결국 혼자 남았을 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이 가득 찼었도 말이다. 한 번도 진심으로 나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주변사람들한테 특히 가족들한테 그렇게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무책임한 가장, 무책임한 관리자로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서 더욱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본 책을 읽으면서 깊게 느끼게 되는 것은 험난한 인생길을 온전히 걸어가려면 때론 솔직한 나의 모습을 비추는 것도, 그것이 참으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심으로 숨을 고를 수 있으며, 고른 숨을 가지고 좀 더 힘차게 인생의 길을 걷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나를 참으로 힘들게 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만큼 일부 몇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많지도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원치 않는 다툼과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에 목숨까지 걸며 서로 간 감정싸움까지 번진 사람과의 관계는 참으로 힘들게 하곤 했다. 스스로 그들과의 다툼이 나에게는 상처였다. 너무나도 깊이 박혀 굳은살까지 박인 상처는 때론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히고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점점 깊게 박히는 상처는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 걸림돌이 되곤 했다. 어느 날 그렇게 힘들게 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애써 숨겨왔던 그날의 상처가 온천하에 밝혀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불편함을 직면하였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런 나에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비난하려는 마음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과거의 상처에서 걸어 나오며 본래의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힘을 다져야 한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 지루하고 지난한 여정을 견뎌낸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완성할 수 있다!          

지난 과거의 상처에서 걸어 나와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힘을 다져야 한다는 말에 깊이 숨겨놓은 나만의 상처 가운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꼭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 너의 상처를 잘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상처에만 머물면 안 돼! 왜 그 상처에서 나와야 하냐면 다 너 때문이야! 그렇게 해야 네가 살 수 있단 말이야!”          

너무 지쳐서, 나 자신이 지긋지긋해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런 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구도 내 삶을 대신 돌봐주지 않으며 상처가 생겼다는 이유로,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내 삶이 홀로 울고 있다면 그건 너무나도 미안하지 않느냐는 저자의 말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저 홀로 남기게 한 나의 무책임한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홀로 울고 있는 나의 마음을 애써 피한 나의 모습이 참으로 창피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쁘면서 분주하게 살아온 나는, 그리 애쓰며 살아왔던 나는 나를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다. 오늘 만큼은 애쓰며 살아온 나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만져본다.          

“만약 당신이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삶의 앞마당에 있는 사소한 행복에 예민해지고 살아 있는 삶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바쁘게 살다 보니 삶의 여유는 당연히 없었다. 어느새 커버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순간 놀랄 지경이다. 사람들 때문에 치이고, 무언가의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감에 지쳐 우리들의 사소한 행복을 미쳐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사소한 행복은 작은 시선의 변화를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된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것인데도 불구하지만 우리들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바꾼다면 당장 찾아오는 행복이 정말 크다. 집 앞마당에 커버린 방울토마토가 행복을 전해주며, 훌쩍 커버린 막내딸이 아빠의 품에 안겨 재롱을 떠는 모습이 상처로 가득한 나의 마음에 행복으로 다시 채워준다.  


62. 기득권 싸움     

내 밥그릇을 지키시는 모습보다는 절대 남들의 것조차 용납하는 옹졸한 모습이 보일 뿐이다.     

그들은 늘 그랬다.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였고 자기들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냉철하게 던져버렸다. 나름 그들의 리그를 만들어 살아가는 그들이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던 그들의 모습이 참 싫다. 잘못되게 가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해야 하는데 그저 괜한 찍힘이 있을까 두려워 아는 사람끼리 괜히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그저 자기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끌려 다니기만 했다.           

그들은 참 당당했다. 무조건 싸우면 이긴다는 당당한 그의 모습이 참 씁쓸하게 보이기만 하다.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닌데, 마지막 길 끝에서 바락 하는 한없이 연약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그들과의 관계를 언제부터 끊었다. 끊는 것이 옳은 것이며 나조차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들과 관계가 유지된다면 살 수 없고, 옳지 않은 길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저렇게 끌려 다니는 삶 같아서 냉철하게 끊고 말았다.           

어찌나 비웃어 되는지? 나를 비웃기만 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겼다고 하는 듯한 모습인 것 같아 보였지만 결국 그들의 초라한 모습만 남을 뿐이다. 더욱 나를 싫어했던 한 사람들은 그들을 이용해서 나를 더욱 비판하였다. 뻔한 모습이고 옳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데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그런 사람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그들과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것들이 소외된 이들을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앞세우며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못된 모습 알게 해야 한다. 그동안 희생 당했던 그들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소외된 것조차 참 서러운 일들인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인 양 과대포장하며 결국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이 참 싫다. 불편하기만 하다.           

요즘 정치들을 보면 늘 그런 모습이었다. 기존 가지고 있는 기득권들과 혁신을 외치는 자들과의 싸움. 각자의 이야기를 내세우며 그렇게 저렇게 싸우지만 결국 보이는 모습은 그저 기득권 싸움뿐이다. 퇴근하는 길가에 붙여진 현수막! 참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 것 같은데 자기는 옳고 상대방은 절대 옳다는 것이다. 우리들을 위해 세워졌다고 하지만 우리들을 위한 노력보다는 한참 벌어지는 기득권 전쟁일뿐이다. 상대방의 실수는 그저 쉽게 넘어가지 않으며 자기의 잘된 모습은 그저 자랑만 내세울 뿐이다. 내 눈과 마음이 참으로 피곤해질 뿐이다.           

새로운 직장에 가면 텃새라고 하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새로운 사람으로서 절대 잘돗되게 보이는데 그들은 그저 그 문화가 익숙해만 있다. 혹여나 조금이나마 고치려고 하면 뭔가 잘못을 일으킨 것인 양 난리 부루스다.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억지로 적응해 가며 살고자 하는데 결국 힘들어서 포기하거나 잘못된 것들을 그저 수용해 가며 그렇게 저렇게 살아간다. 처음에 있었던 정의와 옳음은 벌써부터 버린 지 오래다. 말도 많았던 한 조직이 있었다. 매달마다 사람들이 바뀌어 나간다. 뻔히 봐도 문제가 있는 조직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 조직 내에서 오래 버티는 이들이 있다. 어찌 보면 그 문화에 벌써부터 적응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벌써부터 버려버린 정의와 옮음 때문에 잘못된 것들에 그저 수용하고 따라다니는 때론 잘못된 것에 그저 합의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참 옳다고 이야기할 것이며 우리들을 향해 잘못되었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여 합리화시키는 그런 사람, 참 정의롭지 못하고 그저 보다 쉽게 합의해 버리는 몹쓸 사람들!     

한 조직의 리더로 서게 될 때, 나도 모르게 한 조직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되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그런 사람이 되다 보니 한 조직을 향한 책임감이 기존보다 훨씬 올라가 버렸다.     

나름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나름 절차 등을 만들어 기득권을 가진 세력다운 모습을 비춰주곤 했다. 나를 따르라라는 옛적 사람들의 외침처럼 나 또한 그렇게 쩌렁쩌렁 외치기 시작하였다. 결국 나를 따르지 않으면 죽음이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왜 따르지 않는 것일까? 잘 갖춰진 지금의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외치기만 할까?     

도리어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왜왜....          

아마 새롭게 온 사람들은, 한 조직에서 중심이 아닌 결쳐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기득권 세력이라고 칭할 것이다. 우리들의 외침이 틀렸다고 말할 것이며,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새로운 자리에 새롭게 보이는 시각들이 참 다르다. 다름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혹여나 내가 기득권의 자리에 섰다면 그들의 소리가 참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또한 기득권을 가진 세력을 향하여 옳지 않다며 바른 소리, 옳은 소리를 한다면 기득권들은 참으로 불편하는 것 이상 지금 자기들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쓸 것이다. 혹여나 내 밥그릇 빼앗기면 안 되니까...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하는데 참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참으로 답답했다. 잘못된 것에 그저 끌려다니는 것도 싫었고, 소외된 이들이 결국 피해를 겪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였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 길이 참 두렵다. 기존 기득권 세력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 때문이다.      

이들과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옳은 것을 함께 찾아가 보자는 취지인데 그들은 그것을 이해할까 싶다. 그런데 해야 한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되거나, 변화되지 않으면 썩기 마련이다. 바다를 향해 줄기차게 흘러가야 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결국 썩기 마련이다. 썩는데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함께 고민했던 이들과 또다시 모이기 시작하였다. 혼자서의 싸움이 아닌 함께 그 일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확실치 않지만 제법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기들의 생각을 고집할 거고, 타협보다는 일방적으로 그들의 의견을 주장할 테고, 우리들의 약점을 내세워 자기들을 지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고인 물이 다시 흐를 것이며, 새로운 변화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63. 넉넉한 그늘을 제공한 나무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참으로 기대되면서도, 새롭게 해야 하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다. 

여러 사람들의 비아냥 소리도 그렇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그 답답함이 더욱 그런 생각으로 더욱 취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늘 자기의 잣대와 생각으로만 판단하여 그들의 열심조차 비아냥거리는 게 우리의 연약함 아닐까 싶다. 자기는 위대고 대단하지만 남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는 듯하다.          

수많은 연예인들은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 자유롭지 못하는 듯하다.     

화려한 겉모습에 숨겨진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주변 사람들의 판단이 때론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남의 일이라며 신경 쓰지 말아야 할 텐데 어떠한 잣대를 가지고 난도질해 버리는 사람들이 참 싫기만 하다.           

다이어트를 열심을 다해도 맘 같지 않아 요요가 찾아오고, 맛있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먹방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열심을 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서 더욱 열심을 다해가는데도 작은 실수에 집중하며 도리어 방해거리를 선사하는 이들도 있고, 너 그럴 줄 알았어라며 보란 듯이 밟아버리는 잔인한 이들도 있고, 자랑이 아니고 알리는 것인데도 그것이 불편하여 팔로우를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이들도 있다. 자기는 멋진 영웅을 꿈꾸지만 남들의 멋짐은 그냥 비아냥거리며 저급하게 치부해 버리는 것들이야말로 때론 우리들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지만 각각의 영역들을 인정하지 않고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아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이것이 나의 삶에서 참 자연스럽다. 그렇다 보니 벌써부터 아직 있지 않는 일부터 상상하여 걱정부터 하는 나를 보게 된다. 더욱 그리 긴장하고 있을 때쯤 너무나도 사람들의 비판과 판단들이 밀려온다. 가볍게 무시할 만 한데 늘 그것이 나의 발목을 잡았고, 열심보다 포기하는 경우도 참 많았다.           

이러한 질투와 판단이 지나가고 무뎌지는 무렵 그제야 조금의 열매들이 보이게 된다. 열매를 맺기 위한 열심 일수도 있겠지만 이것저것 부딪치고 나아갔을 때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고, 그 작은 열심조차 인정과 이해가 시작되는 것 같다.           

오랜 고민들로 시작한 것들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의 소리도 난무하고 안될 것이라며 콧방귀를 뀌어버리지만 일부 몇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함께 하는 이들조차 우리들의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열심을 노래하며 어쨌든 시작되었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아마 과거의 상처와 어려움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늘 그래왔기 때문에, 항상 처음부터 평탄치는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긴장의 끊을 놓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의 비난과 비아냥이 우리들의 열심을 방해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고 열매를 맺기 위한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열심은 시작되었고, 이 시작이 우리들과 돕고자 하는 이들과 우리들을 비난하는 이들조차 변화시켜 줄줄 믿는다.           

바다를 건너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볼 수 있다.      

바다를 건너는 과정이 녹록지 않고 여러 모습의 비바람이 몰아치겠지만     

한동안 물을 먹을 수 없어 목마를 것이며,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이 있겠지만     

우리는 열심을 다해 그곳으로 향한다. 물이 없어 한동안 목마름이 있어도 해를 통해 물이 생겨 우리의 목마름을 적셔줄 것이며, 저기서 불려 오는 바람이 우리들의 힘듦을 시원하게 때론 촉촉하게 해 줄 것이다. 넉넉함이 없고 적은 양식일지라고 우리의 목마음의 배고픔을 채워줄 것이다.           

당연히 건너는 그 바닷길에는 우리를 반기는 것들이 없다. 깊은 바닷물이 언제 가는 우리를 삼켜버릴 수도 있고, 따스한 햇빛이 때론 강렬하여 우리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 무시무시한 동물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를 먹잇감으로 노릴 것이다. 그래도 가야 하며, 그곳을 향해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런 힘듦이 때론 우리를 강하게 하며, 좀 더 겸손하게 하여 더욱 열심을 다하게 만든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힘듦이 허락된 것은 우리의 열심히 욕심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온전히 그 길을 가기 위한 위대한 메시지는 아닌가 싶다. 하여튼 힘듦이 녹록지 않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겠지만 그래도 힘듦과 어려움을 어렵게 겪고 나면 결국 우리가 원하고 바랬던 그곳을 보게 될 것이며 직접 밟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으며, 곧 이뤄질 줄 믿는다.           

처음에는 시작이 좋았다. 기대가 너무 커서 흥분되기고 했다. 뭔가 멋진 카타리시스를 경험한 듯 좋았고 신났다. 그런데 처음부터 시작된 여러 어려움 때문에 머뭇거렸다. 그놈의 사람들 때문도 있고 할 자신이 점차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혀 보이지 않는 그것을 찾으려고 하니 답답함과 두려움 때문에 더욱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잠시 멈췄던 그날 혼자서 마당 한 곁을 보게 되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여러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그 곁에서 열심히 뛰놀고 있는 딸내미를 보게 되었을 때는 한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던 우리 딸이 어느새 마당을 뛰어다녔고, 아빠 엄마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사랑스러운 우리 딸이 자기를 표현하고 싫음과 좋음 등을 스스럼없이 어른처럼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제법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딸도 반복적으로 넘어지면서 점차 커갔고 마당 한가운데 심어진 나무도 온갖 비바람을 버텨가며 이제는 넉넉한 그늘까지 제공할 만한 나무가 되고 말았다.           

나의 삶도,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항상 편하고 편했으면 좋겠지만 꼭 그런 삶이 아니라고 하면 녹록지 않는 우리들의 인생을 인정하고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면 결국 넉넉한 그늘까지 제공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부쩍 커버린 우리들의 삶을 보게 될 것이다. 


64. 그의 삶이     

신중한 선택이 곧 좋은 결과를 낳곤 한다.     

좋은 결과를 위해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중한 선택이든, 좋은 결과이든 간에 하나의 선택이 필수라면 따라오는 것은 또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하는 경우가 우리들의 삶인 듯하다.           

결국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기본 생각이지만     

어느 때는 그것이 독이 되고, 

어려움으로 바뀌어져 신중하지 못했던 나를 탓하거나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렵게 들어가게 된 직장생활     

수십 군데에 원서를 넣었는데 매번 실패를 보다가, 맨 마지막의 합격된 소식을 듣고 얼떨결에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강력히 말리면서 가지 말라며 이야기를 수백 번 이야기를 했지만 안 어려운 회사가 어디 있냐며, 지금 내 상황에서 이것저것 따지며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며 결국 선택을 했는데 결국 그것이 나의 인생의 오점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보다 훨씬 돈도 벌고, 보다 높은 자리라는 달콤한 유혹 때문에 그리고 기존 회사와 전혀 다른 환경에 푹 빠져 이것저것도 따지지 않고 결정해 버린 적이 있다. 사실 기존 다니던 곳이 너무나도 싫어 일단 피하고 싶고 떠나고 싶어 급하게 결정되었던 사항인지만 그것이 나의 인생의 또 다른 상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평소와 다르게 유흥에 빠지게 되어 한동안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한발 잠깐 건넬 뿐이었는데 그것이 좀 더 깊숙이 빠져들 줄 몰랐다. 어른이 되면 그런 것도 잘 살필 줄 알고, 멈출 줄 알았는데 어른이라고 해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그냥 무작정 경험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후회하고 안 하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제법 그 자리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고 제법 시간이 걸려 결국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매번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나름 신중한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의 상황에 신중한 선택보다는 그때의 감정에 치우쳐 신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곤 한다.           

그래도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 늘 실패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신중하지 못해 결국 겪게 되는 그 실패가 성공의 기회가 된 적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하게 큰 선물을 얼떨결에 받은 것도 있었다.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던 사람이었다. 나름 좋은 성적도 냈고 좋은 대학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수능 성적은 엉망이었고, 제수를 선택하며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던 제수 생활 때 나름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예전부터 이렇게 공부하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도 있었지만 밤낮 가릴 것 없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예상과 다르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한 과목만 더 잘 받았다면 좋았을 것을 이제야 후회해 봤자 소용없겠지만 하여튼 아쉬울 뿐이었다. 5개 대학을 선택하는 순간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는 가지 못했고 마지막 지원했던 학교를 가게 되었다. 학교 생활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만 대학교 캠퍼스의 낭만을 충분히 느끼며 결국 내가 있는 이 자리에 있도록 시작점이 되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결정된 부분이었지만 결국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참 옳은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참으로 사랑했고 좋아했다. 그런데 결국 헤어졌던 그날은 분명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이 떠났고,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에게 실망을 얻어 헤어짐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까지는 없었는데 어느새 그에게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진 걸 보았을 때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러 사람과의 헤어짐의 아픔이 있었고, 나의 청춘의 마지막이었던 한 사람에게는 더욱 큰 사랑을 건네며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좀 더 사랑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울 따름이다.           

어느 날 귀한 한 분을 만났다. 우리나라가 아닌 우리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말이다.      

참으로 우연하게 만난 분이셨는데, 그분들을 통해 참 감격스러웠다.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었다. 그 가정에 2명의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었다.     

그들을 보다 안타깝게 여길 틈도 없이, 도리어 그들 가운데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내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더욱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장애인과 결혼한 현지인 아내였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그리 밝지는 않으며, 장애인과 결혼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우리와 달랐다. 어느새 우리의 문화에 익숙해졌던 나로서는 그들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남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결혼할 생각까지 한 것에 대해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그 또한 그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참으로 놀라웠고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의 행복한 선택을 항상 응원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선택하며 후회하지 않고 행복해하였을까?          

우리 가정에 장애인이 있고, 장애인 아내가 있다면 나는 선택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떤 것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어떠한 것이 삶의 불편보다 더욱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작게든, 크게든 선택하며 살아간다.     

잘못 선택해서 후회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선택해서 행복을 느끼는 우리들의 삶이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을 하는 복잡한 우리들의 삶이지만     

때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     

때론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행복을 외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65. 꿈 깨기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일들이 지역사회를 바꾸기를 바라며 온갖 상상들로 채워나간다. 함께 하는 일들을 기뻐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일들을 이뤄가는 멋진 꿈을 꾸곤 했다. 그것이 옳은 길이며, 그렇게 가기를 원하고 바랬다.           

개뿔     

그런 것이 그저 뜬구름 잡은 듯한 기분이 많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것 개뿔, 어떻게든 주져 앉히려는 못난 모습 속에서     

솔선수범하며 함께 최선을 다해주는 것 개뿔, 서로가 서로를 눈치 보며 덜 하려는 못난 모습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분명히 보게 된다.           

한 사람의 힘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힘이 훨씬 더 강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도리어 여러 사람들의 힘이 한 곳의 힘마저 빼앗아 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힘든 이에게 격려하는 것조차 없이 어찌 되었던 자기들의 의견만 이야기할 뿐이다.      

자기가 가장 옳은 것처럼, 자기가 제일 잘하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도리어 우리들의 삶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어버린다.           

처음 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서서히 잊히게 되고     

집중해야 할 부분보다는 엉뚱한 것에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싫다.     

못난 모습 결국 나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올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우리는 당당히 이야기한다. 협력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현실은 협력보다는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자기만 먼저 1등이 되려고 하고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다. 지금까지 줄곧 일등을 하다가, 등수에 밀리게 되면 그리 마음이 속상한지 먼저 하려는 자에게 협력의 손길을 내밀기보다는 그저 비판만 하며 그저 끌어내리려는 못난 모습 때문에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불명확한 우리들의 미래인 듯     

각자의 손에 날카로운 칼날을 쥐며, 칼날끼리 부딪혀 거슬리는 칼날 소리가 나의 마음속 깊이 스며 내려온다.           

그저 혼자서 하는 것이 옳은 것 같고, 튀거나 앞서서 하는 것보다 숨죽이며 혼자서 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싶을 정도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으며 함께 가는 이 길이 정말 불가능한 일이며, 불필요한 일들이며, 어려운 일들인가?          

새로운 시작인 참으로 녹록지 않다. 그저 어렵게만 느껴져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내가 이것에 힘을 쏟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내가 만나는 이들 때문이다.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깊게 경험한 그들을 위한 그림이며, 꿈이지만 도리어 그들 덕분에 포기하고 싶은 지경이다. 그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변화 때문이다. 너무나도 큰 그림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외된 이들을 더욱 돕고 그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것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늘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내부사람들의 방해였다. 최고 관리자가 전혀 공감하지 않은 채 그저 안된다고만 하면서, 열심을 다하는 것에 그저 방해하는 관리자 때문에 힘이 들었다. 열심을 다해 계획서를 작성하고 검토를 받으면 그저 아무런 말 없이, 필요한 코멘트보다는 오타만 확인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만 이야기하며 함께하기는커녕 도리어 방해하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게 될 때 도리어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은 응원도 해주고 좋은 리더로 보여주기 위한 행동도 보여주지만 점점 일도 커지고, 나의 자리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이 보기 싫었는지 끝에서는 도리어 방해하는 리더조차 보게 되었다. 그저 협력하여 선한 일들을 이뤄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탰으면 좋으련만 말 한마디에 부정적인 말만 할 뿐이다.           

카톡을 볼 수 없으니 공문은 메일로 꼭 보내야 한다며 방해하는 이들     

좀 더 도우려고 하기보다는 비아냥거리며 하고자 하는 일들 하나하나에 댓 구를 다는 이들     

그렇게 할 이유가 있는데도 듣기는커녕 자기들이 들러리라며 말하는 이들     

힘들지만 맞혀주는 것이라며, 우리 것을 포기하며 맞춰주는 것이라며 온갖 것들을 베풀어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들          

오늘따라 참으로 힘들게만 느껴진다.     

내가 오지랖을 펴서 괜히 계획하고 열심을 다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이 옳지 않기에 조용히, 혼자서만 일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함께 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변화될 텐데 그곳까지 가는 길이 참으로 고단하기만 하다.           

어느 때까지 이러한 힘듦이 일어날 것이며, 어느 날 이 일들이 완성될 것인가?     

길을 잃었으면 빨리 내려가 다시 길을 찾는 것이 옮을 텐데 무엇인가 취해서 멋모르게 이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상상하고 바랬던 일들이 정말 이뤄질까?           


66. 더할 나위 없는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참으로 어렵게 느낀다. 사람 때문에 힘이 나고, 때론 실망해서 넘어지곤 한다. 사람 관계가 다 그렇다고 하지만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컸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기도 하고, 말도 없이 절교하지 않나, 나보다 연배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직눌러 버리거나, 이용하거나 방해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연배가 나보다 높은 사람들을 만나면 벌써부터 긴장하거나 경계하게 된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참으로 힘들어 할 수도 있겠지만, 무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언제나 불편했다.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이 도리어 어색하리만큼, 그들의 무례한 말과 행동이 어느새 나의 삶에 침범하여 휘잡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끊고 싶은데, 그들처럼 절교하고 싶은데 어느새 홀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지 맘 같지 않게 끊지를 못한다. 모든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를 원해서 그런지 사람과의 등지며 적을 두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어느덧 보면 나 혼자만 남아 탈탈 털려버린 내 모습을 볼 때면 벌써부터 관계를 끊지 못했던 못난 나의 모습을 후회하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이 더욱 커서 늦은 어느 날 밤새 후회하기도 하였다.           

처음은 항상 좋았다. 그들도 나를 향한 기대도 컸고, 나도 그의 선한 모습을 보며 기대를 했었는 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불편함이었다. 어느새 나를 편하게 여기는 것인지 무시하면서 평소 보지 못한 낯선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계하듯이, 불만이 가득한 그의 모습이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없다. 말한마디 할 때마다 그리 민감하게 받아들여서 도리어 말을 꺼낼 수 없었고 점차 진심이 아닌 숨기기 바빴다. 그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며, 열심을 다하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줘야 할 텐데 그저 삐딱선을 타기만 한다. 과거의 그때가 생각이 난다. 점차 숨차게 만드는 답답한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렵다. 어찌 보면 나만 이런 것인가 내가 정말 민감해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수백 번 수천번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참으로 인생살이가 녹록지 않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돌고 돌아 어려움이 있는 지금의 인생이 참으로 한탄스럽기만 하다. 열심을 다하는 이들조차 경계하고, 방해하는 이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판단하는 이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이사를 가지 않으면 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사를 하게 되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다 가져와서 한가득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다. 사는 것은 쉽게 사도,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소중해서가 아니라 그저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못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싶다. 잔뜩 쌓여 있는 것들을 정리할 때면 수천번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어렵게 버려진 쓰레기조차 몇 번 살펴보며 여러 번 고민을 다했을 때 그제야 버릴 수 있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우리들의 인생이겠지만 점차 무거운 짐들만 쌓아갈 뿐이다. 버리고 새롭게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고 그저 새로운 것만 쌓아가는 미련한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느 날 그것 때문에 넘어지고 말 텐데 말이다.      

우리들의 인생길을 걷는데 때론 좋은 것들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도리어 짐이 될 수 있다. 아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쓰레기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분리수거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지난 화려한 인생을 기억하며 지금의 인생을 한탄하고 만다. 지난 과거 가운데 그렇게 모진 고통을 당했는데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 아직도 분노하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던 사람인데 아직도 그들과 여전히 연락을 취하며 살아간다. 쿨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내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아있는데 여전히 과거 그날과 그 상황, 그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들과 끊어지면 홀로 남는 것이 참으로 두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때론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버리면 무엇인가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질까라는 생각 때문에 섣불리 버리거나 끊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 원만한 관계가 솔직히 좋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러나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그 복잡한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할 일도 많은데 그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힘들게만 느껴진다면 하루빨리 끊는 것이 옳은 듯하다. 우리는 때론 많은 이들과의 좋은 관계에 대하여 행복한 상상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나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고 숨 막히게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친구나 가족 등과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게 되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라고 한다. 그런데 그리 복잡한 관계를 원만하게 풀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을까? 누구 말처럼 진정한 친구, 진정한 관계를 맺을 사람은 우리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그러한 진정한 친구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다 쉽게 만날 수 있을까? 그저 그들을 찾기 위한 노력만큼 실제 열매는 그리 많지 않다.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나의 삶이 안정적이며, 잘 나간다면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불안정하고 부족하다면 그리 관계를 맺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수 없이 보지 않았는가? 등 돌리며 나간 그들을 향해 원망해 보았자 늦었으며 홀로 남은 씁쓸한 우리의 인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후회해 봤자? 늦었다!           

성공하였을 때에, 내게 힘이 있을 때는 많은 이들이 주변에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삶에 대한 선택권은 어느새 없고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쏟아부어버린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진정 나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정작 나에게 있던 에너지는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 많던 에너지가 없어지는 순간 에너지와 함께 훌쩍 떠나버린 그들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 내 삶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민감해서 그래?”라고 말하면서...          

물건을 정리한 그 순간에도, 정리를 다 마무리한 후에도 정신적인 혼란함을 느낀다. 버려야 할 부담감과 함께 곧 닥쳐올 후회스러움 때문에 여전히 내 마음은 복잡하고 걱정투성이다. 관계를 정리하는 일조차도 물건 하나 정리하는 것 이상 감정 소모, 에너지 소모 정도가 매우 크게 느껴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버려졌다는 사실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관계 정리가 참으로 힘든 일이고 버거운 일들이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라도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과거의 관계도 그때 그 상황에서 역할을 다하였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또 다른 관계가 과거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혹시 떠오를지 모르는 옛적 상처들을 혼자서 초조해하고 걱정하지만 그러한 걱정이야말로 끝이 없는 것이다. 지금 가는 길이 참으로 녹록지 않고 버거운 일들이지만 우리들의 인생길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들의 인생임을 기억하자.           

많은 관계가 때론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나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수 있으니 너무도 많은 관계를 모두 잡으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일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임을 기억하며 살자. 많은 관계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며, 남들보다 내가 소중하며,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참고: 심플라이프, 제시카 로즈 윌림엄스 지음. 윤효원 옮김, 밀리언서재

이전 12화 사명을 감당하는 길 한 가운데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