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운동을 하고자 집을 나섰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지나 두 개의 신호등이 있는 신호등섬에 가려고 할 때였다. 차들이 오길래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맨 앞에 있던 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나에게 건너라고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쌩쌩 지나가는 차들만 항상 봐와서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다. 이 차엔 젠틀맨이 타고 있구나! 별일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마음이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전에 프랑스에 갔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속도를 늦추더니 나보고 먼저 건너라고 손짓을 했다. 그런 배려가 익숙하지 않아서 90도로 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 뒤로도 같은 배려를 횡단보도에 있을 때마다 받고서, '여기는 마인드가 선진국이로구나. 보행자에게 양보를 해주는 게 당연한 나라네. 우리나라도 이러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배려를 집 근처에서 받으니 그때가 떠오르며 더 뭉클한 것이다. 나도 타인에게 그런 작은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바로 전염되었다.
감동을 받을 만큼의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이 학원 라이딩을 하다 보면 도로의 무법자들 천지다. 난 운전으로 거친 세상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나 많은 얍삽이 운전 기술들이 존재하든지. 눈이 번쩍 뜨일 만큼의 신세계였다. 늦을라치면 꼬리물기해서 다음 신호 지장주기, 주황색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려는 그 찰나에 확 밟아서 위험하게 쏜살같이 지나가기, 아주 최대한 앞까지 가서 끼어들기, 깜빡이를 켜도 절대 틈도 안 주고 양보도 안 하기, 신호등이 초록불이고 행인들이 있는데도 휙 지나가버리기 등등. 이런 기술들은 점점 업그레이드되어 몇 개씩 합쳐지기도 하고 약간 변화한 신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배려와 양보는 털끝만큼도 없는 무법천지의 세상이었다. 처음엔 많이 늦었나 보다 생각하며 양보를 했지만, 내가 배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양보를 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도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더 거칠게 운전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쁜 건 빨리 배운다고 그렇게 경계하며 운전을 하다 보니, 피곤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며 운전을 해야 하는 건지. 시간이 지나고 운전이 익숙해지니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거친 차들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양보 운전을 실천하려 했다. 하지만 운전 실력이 달리는 나는 무법자들의 표적이 되어 매번 당하기 일쑤다. 한대 양보하면 두세 대가 잇따라 강제 양보를 요구하는 기적이란. 사고가 날 만큼 어찌나 거칠게 들이미는지 크락션을 빵하고 울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다신 양보 따윈 없다고.
그러던 나에게 오늘의 배려는 큰 깨달음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횡단보도에 서있을 때 먼저 건너라고 배려를 한 적이 있던가? 지나가는 차들의 흐름을 끊으면 안 된다며, 뒤차 신경 쓰느라 빨리빨리를 달고 살았던 나다. 라이딩할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해져서는 '총알택시가 절대로 내 앞에 못 껴들게 할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이런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왜 나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면서, 같은 태도를 장착하고 있었을까. 평소에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배려들을 생각해 보았다. 비단 운전할 때만이 아니라도 작은 배려를 할 일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 다음에 이용할 사람을 위해 공중 화장실 깨끗이 쓰는 것. 또 뭐가 있을까. 생각나는 대로 실천을 해봐야겠다.
나의 배려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또 배려를 했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 것들이 꼬리물기처럼 쭉 이어지면 좋겠다. 배려와 양보의 꼬리물기. 힘들고 지칠 일 많은 세상에서 타인이 베푸는 이런 가벼운 배려들에 잠깐이라도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세상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작고 사소한 배려가 차고 넘치는 세상.
내게 이런 따뜻한 생각들을 전달해 준 매너 가득한 젠틀맨, 감사해요. 길을 걷다 멈춘 그곳에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떨어져 있기를. 그리고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기를. 당신에게 제 몫의 행운을 나눠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