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게코라니-
당연한 관계란 없다. 오랜 인연도 돌보지 않으면 금세 멀어지고, 매일의 다정함이 쌓여야 비로소 오래가는 인연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다정하자. 익숙한 관계일수록 더 섬세하게 말하자. 다정함은 시간이 아니라, 태도로 만들어가는 거리감의 예술이니까.
-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_ 이해인
녹색창에 크레스티드 게코라고 검색을 해보면, AI는 이런 설명을 해준다.
"볏도마뱀붙이"의 영어 이름인 "Crested Gecko"주로 반려 파충류로 인기가 많은 도마뱀입니다. 주요 특징으로는 볏(크라운) 모양의 피부 돌기가 머리 양옆에 특징적으로 나 있어 '볏도마뱀붙이'라고 불립니다. 비닐이 빽빽하고 부드러우며, 물에 잘 젖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야행성이며, 다양한 색상과 무늬가 있어 관상용으로 많이 키웁니다.
둘째 아이는 동물을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로, 길가의 비둘기부터 길 고양이까지 세상의 모든 생명을 향해 마음의 온기를 나누는 아이이다.
강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엄마인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스무 살이 되면 다시 이야기해 보자”는 조용한 약속을 품고 지내고 있다.
둘째의 친구는 세 마리의 게코 도마뱀을 키우는 아이였다. 친구네 집에만 가면 딸아이는 제일 먼저 게코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던 친구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3개월 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선물을 건넸다. 사정상 돌봄이 어려워진 세 마리 중 한 마리를, 동물을 누구보다 아끼는 우리 아이에게 맡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그렇게 작은 상자 담겨 기차를 타고 원주에서 서울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동물을 사랑한다. (나만 제외하면) 어쩌면 나만 없었다면 온갖 반려동물로 북적이는 작은 동물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새 식구의 이름은 ‘마루’.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지만, 딸아이는 여기에 우리말의 뜻을 더했다. ‘정상, 꼭대기’. 아이는 마루라는 이름에 자신만의 희망과 마음을 얹어주었다.
듣자 하니 마루는 순수혈통으로 도마뱀 애호가들 사이에선 꽤 귀한 존재라고 한다. 동물에게 가격을 매기는 세상이 조금 씁쓸하지만, 어차피 거래할 생각은 없으니 그저 흘려듣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 작은 생명이 이제 우리 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마루가 우리 집에 온 첫날, 집 안은 유난히 환했다. 작은 집에서 지냈던 녀석을 위해 크고 편안한 집을 마련하고, 은신처도 여러 개 준비했다. 딸아이가 모은 코 묻은 용돈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채워 넣은 공간이었다. 매일 물을 뿌려주고, 밥을 챙겨주고, 밤마다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오늘도 잘 있었니, 마루야.”
이런 돌봄을 강아지에게 했다면 집안이 난리가 났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 만큼, 온 가족의 애정이 모인다. 매일 보고 반갑게 인사를 전하지만 IQ가 10~15 정도라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계산할 수 없는 마음의 크기다. 다정함과 사랑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요즘 우리 집의 시계는 마루가 중심이다. 게코는 야행성이라 밤이 되어서야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런 마루를 배려하기 위해 9시쯤 거실의 큰 불을 모두 끄고, 조명만 은은하게 켠다. 습도와 온도를 맞추기 위해 수시로 들여다보고, 먹지 않는 날이면 걱정이 앞선다. 남편은 입이 짧은 마루를 위해 냉동 귀뚜라미까지 사 오는 정성을 들인다.
처음에는 “관심 안 가질게”라고 선언하던 나도, 어느새 마루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를 건넨다.
“엄마 다녀올게.”
문득 그런 나 자신을 보고 웃음이 났다. 동물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문장을, 나도 모르게 쓰게 될 줄이야.
작은 발로 집을 오르내리는 모습, 혀를 쏙 내밀며 밥을 먹는 장면은 놀랍게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을 깨운다.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 때 느꼈던 그 미묘한 설렘 같은 것.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흔드는 일이다.
이제 세 살인 마루는 앞으로 10년, 어쩌면 15년쯤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부디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건강하고 단단하게 자라주기를.
우리 가족의 다정함이, 이 작은 생명의 삶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비춰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