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관계에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젠 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멀어지는 게 고통스럽지요. 독립적인 저도 너무 힘들었는데 의존적인 성향이라면 이별의 무게는 몸시도 무거울 겁니다. 그럴 때면 명왕성을 떠올려 보세요. 주기가 비슷해진 어느 날 다시 가까워질지도 모르지요.
- 우리 편하게 말해요_이금희
연말정산을 하듯, 나이도 한 살 늘어가니 올 한 해에 대한 정산을 하게 된다. 일 년 동안의 소비, 건강, 관계, 목표… 구겨 넣어 두었던 감정과 실체들을 하나씩 꺼내 보며 스스로 비참해지기도 하고, ‘참 잘해왔다’며 마음을 다독이는 연극 같은 매일을 산다.
집안 일을 하며 틀어두는 유튜브에는 요즘 유난히 관계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삶에 많은 것을 차지하는 중요한 문제이니 조회수도, 콘텐츠도 끝없이 쏟아지는 것이겠지. 가만히 듣다 보면 생각이 깊어지는데 나이가 들어도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어릴 적엔 곁에 있던 사람이 곧 친구였고, 그 친구들과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웠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구에서 회사 사람들로 관계가 변했다. 아이를 키우면 관계의 중심은 점점 아이를 둘러싼 세계로 이동했다. 첫째 때는 그래도 몇몇 관계가 남아 있었지만, 둘째가 태어난 후엔 거의 사라졌다. 자발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를 넓히기는커녕 되려 좁히게 된다.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유난히 힘들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소원해져야 할 사람에 대해 조금씩 정리하는 중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리는 “좋아, 싫어”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누굴 곁에 두고, 누구와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며 내 삶의 흐름을 잔잔하게 유지하기 위한 조용한 조절에 가깝다. 때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는 자의든 타의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학창 시절엔 경험해 본 적 없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몇 년 전 처음으로 ‘절교’라는 것을 해봤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유치하지만, 서로 “다신 연락하지 말자”라고 말하던 그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여유가 없었다. 치열한 싸움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의 결이 달랐을 뿐인데, 아주 사소한 말 몇 마디로 몇십 년의 인연이 끊어졌다. 그리고 남은 건 공허함, 아쉬움, 미움, 후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솟구쳐 힘들었다. 연인과의 이별과도 다른 종류의 상실감이었다. 마음을 많이 주어서였을까,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까, 오래 쌓인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간혹 그 생각들이 뭉실뭉실 떠오른다.
가끔은 이 작은 나라에서 그렇게 가까이 살았던 사람들을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생활 반경도 겹치는 공간이 많은데도, 정말 한 번도 스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라가 좁은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좁게 살고 있는 걸까-
관계라는 주제로 생각이 깊어지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닿는다.
거리두기.
가족, 친구,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가까울수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밀할수록 더 예의 바르게 다가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이젠 안다. 어쩌면 너무 가까워 망가진 관계를 겪어서일 수도 있고,이제 복잡함을 감당할 에너지가 줄어서일 수도 있다. 생각은 깊어지고, 행동은 느려지고, 편안함에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다. 특히, 이익을 위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솔직히 들여다보면 그 이익이라는 것도 대부분 환상이다. 결국 상처만 남은 관계가 된다.
관계에 대한 해답을 사는 동안 알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몇몇 소중한 사람들에게만큼은 좋은 에너지인 사람으로 긍정적인 관계이고 싶다. 손익을 따지는 게 아닌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는 관계-그리고 몇몇에게는 자연스럽게 내 존재가 지워지길 바라는 묘한 소망도 함께 바라본다. 특별한 이유라서기 보다 그들에게 주었던 마음은 그 시절엔 진심이었고, 지금은 그저 다른 계절이 왔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내 주변엔 이름 모를 ‘명왕성들’이 점점 늘어가겠지?
가끔은, 어른이 되어 절교한 그 친구가 여전히 궁금하다. 이금희 작가의 문장처럼 우리는 명왕성과 지구가 되어 멀리 떨어졌지만, 어딘가에서 우연처럼 다시 스칠 날도 있겠지. “그땐 그저 미숙한 어른이었고, 그래서 미안했다”고- 잘잘못을 따져 다시 친구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그 시절의 서툴렀던 나에대한 사과를 해야겠다. 그래야 오래 함께 쌓아 올렸던 우리의 추억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한때를따뜻하게 비춰주는 기억으로 남아줄 테니까-
내년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내가 관계를 지속하고 싶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다짐까지 한꺼번에 마음에 새겨본다.
자꾸만 결단하는 마음이 드는걸 보니 연말이다.
-절교(絶交):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넓게는 인맥을 끊는 것이다. 즉 서로의 관계를 멀리하거나, 아예 완전히 끊어내자는 의사 표현이다. 넓게는 인간관계 전반에 쓰이는 말이다
-손절 : 주식 투자에서 쓰이는 은어로, '손해를 보더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끊어낸다(매도한다)'는 뜻을 가진 용어 (출처나무위키)
- 되도록 사람관계에서 손절이라는 말이 쓰이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