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와 용서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by 수자타

첫 장면. 셔츠에 바지를 입은 남자들의 흐느적거리는 복부와 힙. 출렁이는 뱃살과 둔중하게 움직이는 둔부, 그리고 배와 엉덩이 사이를 구분 짓는 못생긴 허리띠. Charli XCX의 <Boys>에 맞춰 추하게 흔들리는 전-혀 섹슈얼하지 않은 토르소들.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이 사내들의 몸을 잡는 구도는 이미 익숙하다. 주로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봤지. 거기에선 분명 매끈하게 잘 빠진 여자들의 벌거벗은 허리와 골반이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위와 아래를 가리고서 촉촉하게 젖은 허리를 요염하게 흔드는 젊은 여자들의 몸이었는데. 육감적으로 움직이며 누군가(아마도 돈 많은 남자 혹은 잘생긴 남자 아니면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몸짓들이 나열됐었는데. <프라미싱 영 우먼>은 첫 장면에서 이 클리셰를 유머러스하게 미러링 한다. 삐딱하지만 적절하게, 익숙하고 식상한 이미지를 뒤튼다.


<Boys>에 겹쳐진 저 지저분하고 우스운 몸놀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우아하다. 현실에는 판타지가 없다는 것.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너무 지당한 사실이라 곧잘 잊곤 하지.) 현실 속 클럽이나 술집에서 뮤직비디오 속 섹시한 언니들을 볼 수 없는 것처럼(영화의 첫 장면에서처럼 술병을 든 채 섹시하지 않은 몸뚱이를 흔들어 대는 형님들이 더 자주 출몰하지.),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는 예쁜 여자의 흐트러짐에는 날 잡아먹어 달라는 판타지가 들어 있지 않다. 낯선 남자에게 겁탈당하려고 열심히 술을 먹고 취해 홀로 드러눕는 여자는 이 세상에 없-다. (레알 없.다.고.) <프라미싱 영 우먼>은 꽐라가 된 여자의 몸을 저급하고 찌질하게 취하려는 남자들의 태도가 못돼먹은 판타지에 근거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이들의 판타지를, 그러니까 몸을 못 가누는 상태에서도 남자가 만지면 좋아할 거라는 놀라운 판타지를 뒷받침해 줄 증거는 현실 속 여자의 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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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캐시(캐리 멀리건)는 서른이 되도록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구린"(shitty)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산다. 유일한 취미는 주말마다 클럽에 가는 일이다. 캐시는 오피스룩, 소녀룩, 매춘부 룩 등등 (포르노에 등장하는 유혹하는 여자의 '룩'을 재현하는) 다양한 메이크업과 차림새를 하고 클럽에 가서 술에 취한 척을 한다. 그러면 매주 처음 보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어김없이 다가와 말을 건다. "괜찮은 거냐." "혼자 왔냐." "집에는 갈 수 있겠냐." "내가 데려다주겠다." "난 나쁜 남자가 아니다." blah, blah, blah. 그리고 그들은 영락없이 헤롱 거리는 캐시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캐시의 상태에 관계없이 취한 여자에게서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취하려고 용을 쓰고 기를 쓰고 애를 쓰며 온갖 짓(지랄)을 한다. 캐시는 낯선 이의 침대 한가운데에 누워 그런 짓거리를 하는 그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심어준다. 그리고 침대 아래에 숨겨둔 노트에 그날 그 남자의 이름을 기록해 둔다. 스스로를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지 알면서도 캐시는 이 일을 반복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삶에 대한 의욕까지 잃은 캐시가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7년 전 캐시는 촉망받는 유능한 의대생이었다. 베프인 니나와 함께 캐시는 평범하게 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니나를 남학생들이 집단 성폭행한 것이다. 대학의 그 누구도 니나의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 알 먼로(크리스 로웰)는 "프라미싱 영 맨" 곧 촉망받는 젊은 청년이란 이유로 두둔되고, 피해자인 니나는 여자로서 제 몸가짐이 단정치 않았단 이유로 "걸레"(slut)가 되었다. 줄곧 수석을 유지하던 니나는 결국 학교를 중퇴한 뒤 자살하고, 알은 수석으로 의대를 졸업한 뒤 마취과 의사가 되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이었던 니나는 죽고 잊혔으나, "프라미싱 영 맨"은 촉망받던 미래를 실현했다. 또 다른 "프라미싱 영 우먼"이었던 캐시만이 홀로 니나를 기억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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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캐시는 여전히 스물셋에 머물러 있다. 그녀는 그때로부터 하나도 자라지 못했다. 니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캐시의 시간을 멈춰 버린 탓이다. 캐시는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도 잊은 채 산다. 그러던 캐시에게 그 시절을 선명하게 회상케 하는 계기가 일어나니, 카페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인 라이언(보 번햄)을 만난다. 데이트 신청을 하며 호감을 보이는 라이언으로부터 캐시는 7년 전 사건의 주범들의 소식을 듣게 된다. 영화는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 즉 니나에 대한 2차 가해 주도자인 매디슨 맥피(앨리슨 브리), "프라미싱 영 맨"의 편을 들어준 학장 엘리자베스 워커(코니 브리튼), 가해자의 변호사였던 조던 그린(앨프리드 몰리나), 그리고 가해자인 알에게 캐시가 응징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복수란 언제나 남은 자의 몫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홀로 남겨진 사람이 죽은 그에게 말을 거는 방식 중 하나가 복수 아닐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돌아오지 않을 응답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남은 자는 자신의 죽음을 지연시킨다. 억울한 죽음이기에 상실의 슬픔은 결코 승화되지 않고 애도는 끝내 완수되지 못한다. 남은 자는 정체된 우울 속에서 복수를 다짐하며 점점 사라지는 죽은 그의 이름을 결연히 지킨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며 황급히 시곗바늘을 움직일 때에도 차마 "move on" 하지 못하는 사람. <프라미싱 영 우먼> 속 캐시는 그런 인물이다. 완벽하게 공주풍으로 세팅된 부모님의 거처 안에서 분홍분홍 한 옷을 입고 과장된 발랄함과 귀여움을 뽐내지만, 캐시는 시종 시니컬하게 대꾸하거나 비웃을 뿐 결코 행복하게 웃음 지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복수의 순간 앞에서도 캐시는 제대로 웃을 수가 없다. 그녀의 복수는 상대에겐 무해하지만 자기 자신에겐 유해하기 때문이다.


복수를 해 나갈수록 상처 입고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피폐해지는 건 상대가 아니라 캐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죽은 자의 이름을 홀로 호명하고, '너'는 이미 잊어버린 '너'의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을 때마다 캐시의 슬픔은 가중된다. 죄에 대한 인정이 없으니 당연히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수치심도, 반성도 없다. 용서를 구하지 않으니 용서를 할 기회가 캐시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거듭된 복수 속에서 캐시는 점점 더 황폐해질 따름이다. 그래서 그녀의 복수는 통쾌하지가 않다. 어딘가 석연치 않아서 오히려 찝찝하고 뒷맛이 쓰다. 그러나 복수란 본래 그런 것일 테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응징해야 하니까 당연히 개운하지 않겠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위치 전도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하는 게 복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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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를 죽음에 몰아넣은 주동자들 중 유일하게 변호사 그린만이 뉘우친다. 니나를 협박해 소송을 취하하게 했던 그는 캐시가 찾아갔을 때 어떤 "계시"를 받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의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직 그만이 니나를 기억했다. 그리고 자기는 절대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캐시는 "내가 용서할게요."라고 응답한다. 그제야 캐시는 복수를 멈춘다. 니나에 대한 애도를 마치고 자기 삶을 살아갈 마음을 먹는다.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은 복수의 의미를 무색게 한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 사실 그게 전부인 셈이다. 그런데, 캐시는 누구에게 용서를 비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던 그린은 캐시로부터 용서받았다. 그렇다면 캐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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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가 복수를 결심한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용서를 받고 싶지만 그것을 빌고 구할 대상이 부재할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복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러니 캐시의 복수는 끝날 수 없고 캐시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거짓말처럼 되돌아온 화살은 자기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나아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깨닫게 할 뿐이다. 매디슨이 가져온 핸드폰 속 영상은 캐시로 하여금 이러한 자기기만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캐시의 마지막 선택은 필연적이다.


부재한 대상을 향한 공허한 외침은 응답받을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응답을 향한 기다림은 죽음을 잠시 보류시킬 뿐 삶으로 전환될 수 없다. 그래서 캐시는 복수를 완수하고 용서를 받기 위해 직접 피해자가 된다. 성녀는 창녀의 옷을 입고 부활할 따름이니, 죽음을 통해 스스로를 심판함으로써 캐시는 마침내 자신의 복수를 매듭짓는다. 이제 알은 캐시를 죽인 혐의로 처벌받게 될 것이다. 캐시는 니나가 되어 그녀의 부재를 대신한다.


대부분의 컷에서 캐시는 소파나 침대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이렇듯 영화는 캐시라는 "프라미싱 영 우먼"을 일부러 중앙에 위치시킨다. 그리하여 얼굴 없는 피해자에게 목소리와 심판할 권리를 부여한다. 하지만 심판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벅차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하진 말았어야지." "저는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했어요, 기억은 안 나지만." "유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무죄니까요." "우린 그냥 어렸을 뿐이라고."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등등. 여성을 비하하고 피해자를 비난하고 자기를 변호하는 온갖 상투적이고 비양심적인 말들. 부끄러운 줄 모르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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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그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캐시는 자신과 니나가 들었어야 했을 말을 듣게 된다. 살아있을 땐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캐시는 죽어서야 듣는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잘못한 거 없어." 아, 물론 캐시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시체가 된 캐시의 옆에서 울먹이는 알을 껴안으며 친구인 조가 건네는 말이다. 알은 전날 밤 캐시를 베개로 질식사시켰다. 물론 이건 사고가 아니었다. 그러면 이제 캐시의 부재가, 주객이 전도되고 부조리가 상식이 된 현실을 다시 뒤집을 수 있을까. "프라미싱 영 맨"이 정말 죗값을 치를까. 이번엔 부디 "프라미싱 영 우먼"을 남은 자들이 애도하기를. 니나와 캐시의 이름을 기억하기를. 촉망받는 미래를 짓밟힐지도 모를 또 다른 청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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