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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여행 이렇게 까지 가봤니? - 1 (일본)

배를 타고 가는 후쿠오카 여행, 먹고 마시며 즐기는 선상파티

by 닐바나
배를 타고 후쿠오카를 가는 방법


한국인에게 가장 가까운 해외 여행지는 어디일까요? 부산에서 비행기로 40분, 서울에서도 1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 그래서일까요, 누군가는 이곳을 ‘부산시 후쿠오카구’라고도 부릅니다. 바로, 일본 규슈의 중심 도시 후쿠오카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가볍게 다녀옵니다. 2박 3일은 물론이고, 1박 2일짜리 번개 여행도 흔하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첫 방문도, 두 번째도 비행기였고, 빠르게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다르게 가보면 안 될까?” 그래서 이번엔 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까지 날아가지 않고, 흘러가 보기로 한 것이죠.


많은 직장인들이 여행에서 ‘시간’을 줄이는 데 집중합니다. 빠르게 도착해서 많은 곳을 보고 또 빨리 돌아오는 여행. 하지만 저는 조금 다릅니다. 경유하고, 돌아가고, 심지어 헤매는 것조차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서울에서 출발하면 부산까지 내려가야 하고, 부산항에서 밤 10시 배를 타고 아침 7시에야 후쿠오카에 닿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반차는 필요한 일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효율’이 저는 좋았습니다. 이동조차도 풍경이 되고, 기억이 되고, 이야기거리가 되니까요.


뉴카멜리아호 사진을 제대로 안찍었다… 승선 하기 전 케리어로 줄을 세우는 것은 부산항에서의 국룰…





부산과 후쿠오카를 잇는 배편은 뉴카멜리아호입니다. 출입국 수속은 19시부터 시작되고, 탑승 후 22시쯤 출항, 다음 날 아침 7시 하카타항 도착. 요금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세금 포함 20만 원 안팎입니다. 저희는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월요일 정오에 후쿠오카에서 출항, 저녁 7시쯤 다시 부산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반차 하루에 연차 하루를 더하면 가능한 코스죠.


승선 전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 먹고 마실 것 준비!



배에 오르기 전, 가장 중요한 준비는 따로 있었습니다. 짐? 여권? 그런 건 기본이고요.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정하는 일, 그게 진짜 핵심입니다.

배는 수하물 규정이 항공편 보다 약한 편이다. 먹고 마시며 이동하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다.


뉴카멜리아호에는 편의점이 있긴 하지만, 비행기처럼 액체 반입 제한이 없다는 게 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소주든 치킨이든 회든 고량주든 뭐든 들고 탈 수 있다는 것. 부산항 앞은 출항을 앞두고 배달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족발, 초밥, 분식, 양념치킨… 배에 오르기 전부터 연회 준비가 한창입니다. 저도 그 흐름에 빠질 수 없었죠. 부산역 근처에서 음식 몇 가지를 챙기고, 연태고량주 500ml 한 병을 함께 들었습니다. 바닷바람 맞으며 마시는 고량주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거든요.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면 1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생기는데, 그 공간에는 딱히 먹을 만한 식당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미리 싸온 음식들을 펼쳤고, 고량주 한 병은 금세 바닥을 보였습니다. “배에 올라가기 전에 다 마셔도 되나?” 하는 고민은 잠시였고, 우리는 면세점으로 가서 한 병을 더 샀습니다. 놀라운 건 가격이었습니다. 밖에서 2만 5천 원 주고 샀던 고량주가, 여기선 8달러.


부산항 면세점의 위엄을 몸으로 체감한 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두 번째 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라오는 취기를 가지고 배에 승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다 위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들


승선을 기다리며 대기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구역이었는데, 한 서양 청년이 주저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망설였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긴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에요”라고 알려드렸습니다.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2003년생, 폴란드에서 온 청년이었습니다. 아시아 전역을 여행 중이라고 했고, 푸른 눈의 서양인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신기하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짐을 방에 놓고 각자의 자리로 들어간 뒤, 우리는 공용 라운지에서 술 한잔 하자며 약속을 나눴고, 인스타그램도 미리 교환해 두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그렇게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는 것도 여행 중이니까 가능한 일 같았습니다.


객실 내 자리는 선착 순이다. 등급이 높은 객실을 선택한다면 일행끼리 사용도 가능하다. 편의점도 있지만 문을 닫고 난 이후에는 자판기에서도 다양한 식음료를 구매할 수 있다.


참고로 저희가 묵은 방은 가장 저렴한 8인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구조였고요, 티켓에는 몇 호실인지 적혀 있지만 안에 들어가면 자리는 선착순입니다. 특히 핸드폰 충전이 가능한 플러그 근처는 인기 자리고요. 배 안에는 사우나, 식당, 편의점까지 있어서 바다 위의 작은 호텔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공용 라운지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고량주를 꺼내 들고 조심스레 잔을 채웠습니다. 그 친구는 아시아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여행 이야기를 꺼내더니 탈레반과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더라고요. 말로만 듣던 위험한 여행을 실제로 해낸 사람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술이 들어가니 영어가 한결 잘 나오더라고요. 만취 전까지는 외국어 회화력도 같이 상승하는 법이죠.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인도계 미국인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이 다가왔습니다. 배 안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저희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말을 건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고 싶은데 결제가 안 된다는 거였죠. 배가 출항한 뒤엔 카드 사용이 안 되고, 이 배는 일본 국적이라 현금도 엔화만 가능했습니다. 그 커플은 원화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저희가 환전을 도와드리며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셋이 마시던 자리는 다섯 명으로 늘었고, 다들 2000년대생. 폴란드 친구는 인스타 팔로워 8만 명의 여행 셀럽, 인도계 친구는 뉴욕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중, 여자친구였던 친구는… 사실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한국이었다면 40대 아저씨가 이런 또래의 외국인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게 회사 회식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여행지에선 이런 장벽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시각을 보호하기 위해 제 얼굴과 친구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외국 친구들 초상권 죄송합니다. 드린 소주가 초상권 비용이라 생각해 주세요.

고량주 한 병은 금방 비워졌고, 소주도 3~4병쯤 더 사다 마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엔 각자에게 소주 한 병씩 선물로 건네며 작은 정을 나눴습니다. 생각해보면,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이런 예상치 못한 인연들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목적지가 어디든, 그 사이에 누굴 만나는지가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돈코츠 라멘과 함께 다시 시작된 후쿠오카 여행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가까워졌습니다. 다들 피로가 몰려왔고,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습니다. 저희도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몸을 뉘였습니다. 역시나 젊은 친구들과의 과음은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더군요. 배는 아침 7시경 후쿠오카 하카타항에 도착했고, 출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어제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들도 보였습니다. 술자리에서 그렇게 뜨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던 사람들인데, 막상 맨정신에 다시 마주치니 생각보다 다소 데면데면합니다. 역시나 만취 중의 도원결의는 다음 날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이죠.


아침이 다 되어서 도착한 후쿠오카 하카타항, 아침과 동시에 여행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짧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여행을 응원하는 덕담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후쿠오카 여행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저희의 후쿠오카 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나를 살린 한 그릇의 돈코츠 라멘, 아리갓또!

과음한 속을 달래는 데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당연히 돈코츠 라멘이었습니다. 후쿠오카의 상징 같은 음식이죠. 다행히도, 미리 아침 일찍 여는 라멘집을 검색해 둔 덕분에 고민할 필요 없이 곧장 향했습니다. 속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국물 한 입에 정신이 들었고, 그렇게 저희의 후쿠오카 여정은 해장 라멘과 함께 천천히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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