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과 공자가 올랐던 태산의 정상! 그곳에서의 노숙
나이 40 먹고 도전하는 노숙, 잊지 못할 추억들
금강산도 식후경. 드디어 우리를 짓눌렀던 음식 보따리를 풉니다. 다 식어버린 위샹로우스와 볶음밥, KFC 치킨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떤 산해진미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한 끼입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판매하는 타이샨 맥주는 우리의 갈증과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는 마법 같은 음료였습니다.
이번 여행의 특징 중 하나는, 저희가 정상에서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전 정보를 찾아보던 중, 태산 정상에도 숙소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이 정상에서 빌려주는 우모(羽毛) 하나에 의지해 노숙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20대였다면 망설임 없이 노숙을 선택했겠지만, 이제 40대가 된 입장에서 길바닥에서 자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바닥은 우리의 식탁이 되었고, 침대가 되었고, 그날 밤 우리의 집이 되었습니다. 비교적 일찍 정상에 오른 덕분에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고, 식사도 여유롭게 마쳤습니다. 6월이었지만 산 정상의 기온은 생각보다 쌀쌀했습니다. 다행히 30위안에 빌린 우모는 체온을 유지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겁니다. "샤워는 어떻게 했을까?" 저희는 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미리 준비해 간 덕분에, 숙소 없이도 나름 뽀송뽀송한 상태로 취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9시에서 10시 사이에 각자 자리를 잡고 잠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몇 시간이 지나니 불편한 잠자리 탓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을 뜬 순간, 제 시야에 들어온 건 바로 제 옆에서 자고 있던 동생의 모습이었습니다. 동생은 눈을 뜬 저를 보며 “행님, 저 가보이소. 사람 억수로 많아예. 분명히 우리 올 땐 아무도 없었는데...”라며 말했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한산했던 남천문 정상부가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에 저희 일행은 함께 웃으며, 조용히 일출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운 일출, 다음을 기약하며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정상부에서는 누구나 각자의 염원을 품은 채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곳은 과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하늘에 자신의 정통성을 고하기 위해 봉선의식을 치른 장소이기도 합니다. 공자가 태산에 오른 에피소드는 맹자의 책에 이렇게 전해집니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다고 하셨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작다고 하셨다.” 태산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장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며 한족 문명의 정신적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일출을 기다렸지만,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은 끝내 떠오르는 태양의 장엄함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늘은 서서히 밝아왔고, 우리는 태산의 상징이자 5위안 지폐에도 인쇄된 '오악독존(五岳獨尊 : , 중국의 다섯 명산인 오악(五岳) 중에서 태산(泰山)이 홀로 가장 뛰어나고 으뜸이라는 의미) 바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하산을 결정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더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다리를 위해 남천문에서 천외문까지 케이블카를 이용했고, 이후 버스를 타고 다시 평지로 돌아왔습니다.
태산의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마저도 이 강렬한 여행의 일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힘들 때,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을 비워야 할 순간이 다시 온다면, 저는 주저 없이 다시 이곳을 찾을 것 같습니다. 태산은 그런 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