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천국의 계단! 태산에 오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양사언의 시조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태산’이라는 단어의 출처이기도 할 텐데요. 그냥 ‘크고 위대한 산’쯤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제로 이 태산은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실제 산입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티끌 모아 태산”, “갈수록 태산” 같은 표현들이 말해주듯 우리는 이 산을 오래도록 크고 거대한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대체 그 태산이 어떤 곳이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회자되며 우리의 언어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을까. 저의 역마살이 결국 그 호기심을 행동으로 이끌었습니다. 태산의 웅장함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열망에, 함께 오를 파티원들을 모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산행임을 알기에, 몇 달 전부터 '천국의 계단'으로 하체를 단련한 형님, 그리고 등산이라면 이골이 난 동생까지. 각자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총 4명의 태산 정복 원정대가 꾸려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유구한 역사와 웅장한 기운을 품은 태산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 여정을 사진과 함께 담담히 풀어보려 합니다.
태산으로 향하는 두가지의 루트
태산으로 가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난(제남)으로 입국해 기차나 차량으로 타이안까지 이동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칭다오(청도)에서 기차를 이용해 가는 방법입니다. 지도로 보면 지난이 태산과 가까운 최단 루트지만, 저희는 칭다오를 통해 입국했습니다. 칭다오는 여러 번 방문했던 도시라 익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국 기차 여행을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도 컸습니다. 약 3시간 거리의 여정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의 설렘과 낭만이 있기 때문이죠.
이른 아침, 타이안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칭다오 북역으로 이동합니다. 오늘 최소 7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날이기에 아침은 든든하게 챙깁니다. 거리에서 지앤빙(煎饼)과 또우장(豆浆)을 사 먹습니다. 중국인들의 대표적인 아침 메뉴죠. 이번 여행에는 중국어에 능숙한 동생이 함께했기에 주문 걱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 중국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정치적인 이슈와는 별개로, 중국 사람들은 외국 여행자에게 의외로 굉장히 친절한 편입니다. 아직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다는 점도 있고, 중국에 온 것 자체를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움으로 여기는 시선도 있는 듯합니다.
칭다오 북역에 도착한 후, 기차 안에서 마실 맥주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칭다오에는 다양한 버전의 맥주가 존재하는데, 저는 역사 덕후답게 삼국지 도원결의 에디션을 골랐습니다. 3시간의 여정 중 맥주 한 병으로는 부족합니다. 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열차 식당 칸으로 이동해 추가로 맥주를 구매합니다. 역시 열차 안에서 파는 맥주는 비쌌습니다. 미리 시내에서 사올 걸 그랬다는 후회도 잠시, 전투를 앞둔 병사들처럼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시며 태산으로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타이안역 도착! 본격적인 태산 정복의 서막
칭다오 북역을 출발한 지 약 3시간쯤, 우리 일행은 드디어 태산의 관문인 타이안역에 도착합니다. 중국은 여러 번 와봤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역이 정말 크다는 점입니다. 지방 시골역조차도 서울역이나 부산역보다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역에서 내린 뒤 주변 로컬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합니다.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등산을 앞두고 이렇게 입맛이 도는 걸 보니 역시 저는 중국 체질인가 봅니다. 태산은 워낙 큰 산이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점이 많아 혹시라도 산 위에서 음식을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 먹은 메뉴 중 가져가기 쉬운 위샹로우스와 볶음밥을 포장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역에서 각자 화장실을 들릅니다. 중국은 아직도 공공장소에서는 스쿼트 변기, 그러니까 화변기를 사용하는 문화입니다. 변기 사용도 난이도가 있는 편일뿐더러, 보통의 국내 산들도 화장실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을 감안할때 미리 쾌적한(?) 역의 화장실을 이용해 대참사를 예방합니다. 혹시 태산 등반을 계획 중이시라면 이 포인트는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태산, 첫 발을 내딛다: 홍문 코스 선택과 기묘한 상거래의 법칙
각자의 준비를 마친 후 우리는 태산으로 향하는 택시를 탑니다. 약 15분쯤 이동하자 창문 너머로 태산의 위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1500미터대의 고도는 국내에서도 익숙한 높이지만, 중국 땅에 있는 산이라 그런지 훨씬 더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겠지요. 태산을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홍문’ 등산로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약 7시간에 걸쳐 오르는 코스, 둘째는 ‘천외촌’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올라간 뒤 케이블카나 도보로 나머지 구간을 이어가는 코스입니다. 저희는 이번 여행의 목적이 ‘등반’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홍문에서 하차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입구 앞에서는 각종 등산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건 지팡이였습니다. 재밌는 건 이곳이 지팡이 가격이 가장 비싼 지점이라는 점입니다. 산을 올라갈수록 지팡이 가격은 점점 저렴해지는 반면, 물 가격은 반대로 올라갈수록 비싸집니다. 수요와 공급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구조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어쩌면 더 자본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