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조인, 로또 맞은 스님의 사찰
여러분은 '후쿠오카 여행'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가까운 비행시간, 진한 돈코츠 라멘, 매콤한 명란젓, 그리고 나카스의 포장마차 거리… 대부분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후쿠오카를 여행해보고 싶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적이며 '여긴 꼭 가보고 싶다' 싶은 장소들을 골라두었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는 그 장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고, 여느 여행자들처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아는 형에게 DM이 도착했습니다.
“너는 도대체 후쿠오카 가서 맛집은 안 가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냐?”
후쿠오카만 열 번 넘게 다녀온 그 형에게조차, 제가 찾은 장소들은 낯설고 엉뚱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 나의 여행은 조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특이하구나...’
그래서 오늘은, 후쿠오카 하면 흔히 떠오르는 여행 코스와는 조금 다른 두 곳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그전에,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찾는 후쿠오카의 인기 여행지를 GPT에게 먼저 물어봤습니다. 다음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후쿠오카 여행지 TOP 10입니다.
하카타역: 후쿠오카의 관문 역할을 하며 쇼핑과 식사,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캐널시티 하카타: 대형 쇼핑몰과 분수쇼, 이치란 같은 라멘 스타디움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나카스 야타이 거리: 후쿠오카의 야경과 포장마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소박한 먹거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텐진 지하상가: 다양한 브랜드와 트렌디한 쇼핑몰이 모여 있는 쇼핑 천국입니다.
오호리 공원: 넓은 호수를 둘러싼 산책로와 여유로운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도시 속 힐링을 제공합니다.
후쿠오카 성터(마이즈루 공원): 봄철 벚꽃이 만개하는 명소로, 역사의 숨결과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다자이후 텐만구: 학문의 신을 모신 유서 깊은 신사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모모치 해변과 후쿠오카 타워: 바다와 도심 전망이 어우러진 인스타 감성 핫플레이스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유후인·벳푸: 후쿠오카 근교에서 온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온천지입니다.
이치란 라멘 본점: 후쿠오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라멘 성지순례의 시작점입니다.
역시나,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두 곳은 이 리스트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장소들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경험한 ‘후쿠오카의 이색 여행지 두 곳’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이색 여행지, 난조인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후쿠오카의 이색 여행지는 ‘난조인(南蔵院)’입니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에서 아이노시마를 다녀온 뒤, 시간이 조금 남아 가볍게 들르게 된 곳이었는데요. 막상 도착해 보니 ‘잠시 들렀다 가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 와불상으로 유명한 사찰입니다.
가로길이만 무려 4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부처님이 산자락에 누워 있는 모습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압도적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평소 사찰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시거나, 불교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단연 추천드리고 싶은 장소입니다. 단순히 관광을 넘어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도 함께 선물해 주는 곳이니까요.
난조인에 가는 방법
가는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카타역에서 JR 후쿠호쿠토선을 타고 ‘기도난조인마에역(城戸南蔵院前駅)’에서 하차한 뒤 도보로 약 5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접근성이 무척 좋은 편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일부 특별 구역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난조인을 향한 여정은 ‘기도난조인마에(城戸南蔵院前)’ 역에서 시작됩니다. 목조 지붕 아래 작고 소박한 이 역에 내리면, ‘정말 이런 곳에 유명한 사찰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죠. 플랫폼 옆으로 보이는 푸른 산과 전선, 그리고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은 마치 일본 드라마 속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풍경은 전혀 다른 세계. 이 조용한 기차역은 난조인을 향한 여행의 분위기를 미리 예고하는 듯했습니다.
난조인의 본당과 와불상으로 향하는 길목엔 예상치 못한 조형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붉은 불꽃을 배경으로, 커다란 검을 들고 있는 한 상이 었는데요. 마치 부처님을 지키는 수호신 같기도 하고, 일본식으로 표현된 도깨비 같기도 했습니다. 눈매는 날카롭고, 표정은 굳건한데 이상하게도 주변 공기까지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 옆으로는 작은 승려나 부처의 형상을 한 조각상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는데, 그중 몇몇은 누군가가 정성스레 빨간 털모자를 씌워두었습니다. 수십 개의 조각상이 다 힙한 털모자를 쓰고 있는 걸 보고선 ‘세상 힙한 사찰이구나’ 싶었습니다. 이 길을 지나면, 난조인의 하이라이트인 거대한 와불상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41m 압도적인 와불상
그리고 드디어, 난조인의 하이라이트, 거대한 청동 와불상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로길이만 41미터에 달하는 이 와불상은, 사진이나 숫자로는 도저히 그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고,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관광객들 중에는 부처님의 자세를 따라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불상을 한 프레임에 담아보려 애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넓은 공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많지 않은 덕분에,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을 내려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도심의 분주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여행지에서도 고요를 찾고 싶을 때, 이곳만큼 잘 어울리는 공간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말차소프트콘과 로또 1등 된 주지스님 이야기
와불상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경내 한쪽 매점에서 녹차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사 본 건데, 웬걸 — 이게 정말 맛있더라고요. 녹차의 쌉싸름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저 멀리 누워 계신 부처님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건 부처님께도 한 입 드려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살짝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마치 부처님께 아이스크림을 바치는 듯한 구도로 한 장 찰칵. 사진을 찍고 나서 괜히 혼자 웃음이 났습니다. 엄숙한 공간이지만, 그런 순간조차 허락해 주는 듯한 넉넉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찰의 주지스님은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일화를 가진 분입니다.
한때 실제로 로또 1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당첨된 거액은 사찰의 보수와 지역 사회를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로 이곳은 ‘금운의 사찰’로도 불리며, 복권 당첨이나 재물운을 기원하러 찾는 참배객이 끊이질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와불상의 발바닥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인해 반질반질하게 닳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그 발을 손으로 만지면 돈복이 들어온다는 것. 저도 조용히 두 손을 모은 뒤, 살짝 발에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당장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마음을 부처님께 살짝 칭얼대 보았습니다.
마무리하며
사실 이번 글에서는 ‘빛의 길’까지 한 번에 소개해드릴 생각이었지만, 난조인을 둘러보며 떠올랐던 이야기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느새 글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빛의 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따로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또 한 가지, 사진 톤이 조금씩 다른 이유가 궁금하셨다면— 네, 맞습니다.
난조인은 두 번 방문했고, 각각 다른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소라도 시기와 시선에 따라 다른 느낌이 담기곤 하니까요. 그 점 너그러이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쿠오카의 이색 여행지 이야기, 다음 편에서도 이어집니다.
다음은 태양과 신사의 토리이가 만든 신비로운 직선, ‘빛의 길’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