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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보다 가까운 중국 여행지, 대련 (1편)

알차게 구성해 보는 반나절 대련 투어

by 닐바나

최근 중국이 한국인 대상 무비자 정책을 한시적으로 시행하면서,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가깝고도 낯선 중국 여행지들이 하나둘씩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도시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착륙하는 것 같은 거리감은,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문화를 마주하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중에서도 대련(大连)은 제게 무척 익숙한 도시입니다. 업무차 여러 차례 방문했었고, 작년부터는 개인적인 여행으로도 종종 찾고 있습니다. 국내 어디를 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가볍게 떠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짧은 거리 안에 예상보다 더 다채로운 풍경과 역사가 펼쳐진다는 점이 대련만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심과 우호광장

이번 주말 역시 대련에서 머물게 되면서, 이 도시에 대한 저만의 애정과 경험을 글로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제가 실제로 걷고 머물렀던 공간들 속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시선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대련의 역사


대련이라는 도시는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도시입니다. 물론 고대에는 고구려의 비사성이 이 일대에 존재했지만,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대련은 바닷바람 부는 한적한 어촌과 들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 중심가인 중산구 일대도 과거에는 ‘푸른 진흙 웅덩이 입구’라는 뜻의 청니와구(靑泥洼口)라 불리던 습지 지대였지요. 해안선이 불규칙하게 들어가고 나오는 지형은 늘 바닷물이 밀려들며 진흙을 쌓았고, 그렇게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변방의 땅이었습니다.


이곳이 역사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세기말 청나라 말기,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였습니다. 1898년 청나라는 러시아에 대련과 여순 일대를 조차(임대)해주었고, 러시아는 이곳을 달니(Dalniy, 멀리 떨어진 도시)라 이름 붙였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며 태평양으로 나아갈 항로를 원했고, 이곳은 그들의 동방 진출 거점이 되었습니다. 항만을 개발하고, 철도를 연결하며, 하나의 도시가 처음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주인은 곧 바뀝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련과 여순을 포함한 관동주(關東州) 지역을 넘겨받게 되면서 대련은 일본식 근대 도시로 재정비됩니다. 일본은 이곳에 관동군 사령부를 두고 철도, 항만, 상하수도, 공공시설 등 각종 인프라를 빠르게 갖추며 동북아 전략 거점으로 키워나갔습니다. 도시 계획은 철저하게 서양식 근대 도시의 형태를 따랐고, 한때는 조선인과 일본인, 중국인이 뒤섞여 살며 다문화 도시로도 불렸습니다.

STX 대련 조선소

해방 이후에는 소련의 점령을 거쳐 다시 중국에 반환되었고, 한동안은 조용한 항구 도시로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대련은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도시가 됩니다. LG, CJ, 효성 같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한국 기업들이 대련에 공장을 세우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이름은 STX 대련이라는 대형 조선소입니다. 당시 STX 그룹은 대련을 동북아 조선산업의 허브로 삼고자 했고, 그 존재만으로도 대련이라는 도시가 한국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비록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철수하거나 축소되었고, STX 대련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시절 대련은 중국 속 작은 한국처럼 느껴질 만큼 활기가 넘쳤던 도시였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한국어 간판이 보이고, 한식당과 한인 마트, 국제학교와 한인 교회가 함께 어우러졌던 시간. 대련은 그 짧은 기간 동안 분명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인연을 만든 도시였습니다.


대련 여행 하기 전 알아야 할 사항들


대련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번 글에서는 도심 여행과 근교 여행으로 나누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우선 대련은 지하철 노선이 잘 갖추어진 도시입니다. 주요 관광지 대부분이 지하철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만으로도 큰 무리 없이 이동이 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알고 계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직 대련 지하철에서는 QR 결제가 되지 않으며, 현금 또는 교통카드를 이용해야 합니다. 간혹 현금용 티켓 자판기가 고장이 나 있거나 아예 설치되지 않은 역도 있어, 이럴 경우에는 지하철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추천드리는 방법이 바로 디디추싱(DiDi Chuxing)입니다. 한국의 카카오택시와 같은 앱으로, 대련 시내가 넓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거리는 30위안(약 6천 원) 이내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저도 주로 이 앱을 이용해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몇 번만 사용해 보면 금세 익숙해지실 겁니다.


여행 동선에 대해서는 성해광장을 중심으로 한 대련 남쪽 지역을 하루, 그리고 중산구를 중심으로 한 북쪽 지역을 하루로 나누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나누면 동선이 길지 않아 무리 없이 이동하며 도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숙소는 보통 중산구 지역을 추천드리는데요, 이곳에는 파빌리온(Pavilion) 같은 대형 쇼핑몰이 있어 식사나 쇼핑이 편리하고, 특히 중국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는 분들께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저도 이번 주말에 이곳에 머물며 여행을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글부터는 제가 다녀온 코스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에 맞게 일정을 조정하시며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인부두와 연화산 전망대


아침 시간대 비행기를 타고 대련에 도착하신다면, 무리 없는 일정으로 여행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호텔에 얼리 체크인 요청 시 무료로 받아주는 경우가 많아, 도착 당일 오후부터 일정을 충분히 소화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09:05 인천발 항공편을 이용해 대련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이륙이 다소 지체되긴 했지만, 출국 수속까지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온 시각은 현지 기준 약 11시경이었습니다. 대련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중산구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한 후, 얼리 체크인을 요청하니 별다른 추가 비용 없이 바로 입실이 가능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니,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후 1시쯤이었습니다.

유럽풍 건물과 중국식 부두, 먼가 어울리지 않지만 또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닌 분위기

대련에서의 첫 목적지는 워런마터우(渔人码头, 어인부두)입니다. ‘어부의 부두’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감성적인 산책 공간으로, 대련 시민들에게도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풍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요트가 정박된 부두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 냄새와 함께 여행의 실감이 찾아옵니다. 곳곳에 마련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기에도 좋고, 갈매기들이 무리 지어 날아드는 바닷가에서는 먹이를 주며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해산물 가게의 강아지와 워런마터우의 주인들인 갈매기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온 듯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련에서의 하루를 천천히 시작하기에, 워런마터우는 꽤 좋은 선택지였습니다.

감성적인 카페들과 이국적인 조형물들

워런마터우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연화산 전망대(莲花山观景台)로 향했습니다. 연화산은 대련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전망 명소로, 케이블카, 셔틀버스, 도보 세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셔틀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서문 매표소’까지 택시로 이동했는데요, 시내에서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비교적 접근성도 좋았습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정상부에선 구름이 많이 꼇다. 아래로 내려오니 보이기 시작하는 성해대교

전망대에 도착하면 일반적으로는 탁 트인 바다 전망과 그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성해대교의 전경이 펼쳐지는 장면을 기대하게 됩니다. 실제로 가슴이 답답할 때 이런 시원한 풍경 앞에 서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아쉽게도 흐린 날씨에 운무가 내려앉아 시야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흐릿했고, 대교도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물론 날씨는 여행의 일부이니, 이런 풍경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사슴들이 주위를 기웃거린다. 정상부에는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붉은 나무 조각이 걸려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기 전 길목 근처에 사슴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근처에서 풀이나 잎사귀 같은 걸 뜯어 건네주면 사슴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소소한 체험도 가능합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동물과 눈을 마주치는 경험은 아이들과 함께라면 특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 연화산은 대련 삼림동물원과 연결되어 있어, ‘판다’를 보고 싶으신 분들께도 좋은 선택지입니다. 한국의 에버랜드에서는 판다 한 번 보려면 줄을 30분 넘게 서고, 관람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인데요, 대련에서는 그런 번잡함 없이 한적하게, 때로는 1시간도 넘게 판다를 관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명 ‘푸바오 이모’로 불리는 판다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어,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성지와도 같은 장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연화산은 단순히 풍경만 보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동물, 여유로운 이동이 모두 가능한 종합형 힐링 장소입니다. 다만 날씨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으니, 가능한 맑은 날을 골라 방문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성해광장과 서안로 야시장


연화산 전망대에서 내려오신 뒤에는 바로 성해광장(星海广场)으로 이동하시면 좋습니다. 도보로 이동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거리도 꽤 되고 경사도 있어 추천드리진 않습니다. 다행히 셔틀버스 하차 지점인 서문 매표소 근처에는 택시가 항상 대기 중이고, 디디(중국판 카카오택시)도 잘 호출되는 곳이라 이동은 매우 수월한 편입니다. 택시로는 약 10분 내외면 도착합니다.

비행기에서 촬영한 성해광장, 언뜻보면 광안리가 연상되는 성해대교

성해광장은 대련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시광장입니다. 바다를 향해 넓게 펼쳐진 공간 위에는 조형물과 산책로가 이어지고,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여유롭게 걷고, 뛰고, 사진을 찍는 곳이죠. 규모에 압도되기도 하고,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든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광장 끝으로 이어지는 성해대교(星海大桥)는 사진으로만 보면 부산의 광안대교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부산에 사는 지인들에게 ‘나 지금 광안리 왔어’라고 장난을 치곤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광장 한쪽에는 작은 놀이공원도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특유의 정취가 있어 월미도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여기에도 갈매기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녀, 바다 도시만의 생동감을 더해줍니다.

성해대교과 성해광장 인근의 야경
성해대교 라이트쇼

저녁 시간이 되면, 성해대교에서는 라이트 쇼가 펼쳐지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히 산책하며 감상하기에 제법 괜찮습니다. 대교 위로 흐르는 불빛들이 파도처럼 움직이며 대련의 밤을 조금 더 로맨틱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딩의 성게만두는 1인당 2개만 판매가 된다

그리고 이 성해광장 인근에는 ’ 시딩(喜鼎)’이라는 유명한 로컬 식당이 있습니다. 대련을 대표하는 해산물인 성게를 만두소로 활용한 ‘성게 만두’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퍼지는 바다 내음과 성게의 고소함이 인상적입니다. 다만 항상 웨이팅이 긴 편이라, 먼저 줄을 걸어두고 성해광장을 산책하신 후 돌아오는 일정을 추천드립니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기다림 없이 바로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기 전, 중산구에 숙소를 잡으셨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안로역으로 이동해 야시장을 들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는 대련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서안로 야시장 입구와 쾌적한 실내


서안로 야시장(西安路夜市)은 일반적인 중국의 길거리 야시장과는 다르게 실내에 조성된 형태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장 안에는 다양한 로컬 음식과 간식, 그리고 간단한 의류나 잡화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고, 중간중간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 현지 분위기를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과 중간중간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시장 앞 광장에서는 저녁 시간만 되면 중국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인 ‘광장무(广场舞)’가 펼쳐집니다. 예전에는 태극권이나 느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어르신들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국 젊은이들이 듣는 트렌디한 EDM 음악에 맞춰, 빠르고 파워풀한 동작들로 단체 춤을 추는 모습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멀리서 구경만 해도 흥미롭지만, 원하신다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함께 춤을 출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조금 낯설지만, 어느새 리듬에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 묘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야시장에서는 중국 동북지방 특유의 음식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꿔바로우와 보보지
먼즈와 카오렁미엔

• 꿔바로우(锅包肉): 바삭하게 튀긴 돼지고기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입힌, 동북식 탕수육

• 보보지(钵钵鸡): 차갑게 식힌 마라 꼬치, 각종 고기와 채소를 매운 육수에 찍어먹는 간식

• 먼즈(焖子):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젤리 같은 떡을 구워 마늘 소스를 끼얹은 전통 음식

• 카오룽미엔(烤冷面): 춘권피처럼 얇은 면을 철판에 구워 계란, 야채, 소스를 넣고 말아 내는 길거리 간식


이런 음식들을 돌아다니며 즐기다 보면 어느새 하루의 피로도 스르륵 풀리는 기분입니다. 결제는 전부 QR 코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금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앱만 준비되어 있다면, 어디서든 바로 결제하고 이동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합니다.


마무리하며


대련에서의 첫날은 바닷바람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갔습니다. 워런마터우부터 성해광장, 서안로 야시장까지 걸은 하루는 느긋하면서도 꽤 알찼습니다. 다만 이 일정은 약간 타이트할 수도 있으니, 여행 스타일에 맞게 한두 곳만 조정하셔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대련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궁금한 점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 경험이 여러분의 여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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