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Golden Sun, please shine down on me!
마냥 살림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신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리되지 않은 방, 전업맘에겐 커리어
하지만 아이를 둔 30대 엄마라면, 갓 커리어를 던져두고 육아의 세계로 들어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사회 생활이 문득 생각이 나리라. 마치 정리하지 않고 흐트러진 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이거나 여자이기 전에, 나름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던 한 사람이었기에 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전업주부에게는 "그래 내가 그랬었지" 하며 바쁘게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던 시절이 떠오르리라.
정리하지 않은 방은 계속 리마인드 사인을 이따금씩 뇌리를 스친다.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전까지 찜찜한 기분은 머릿 속에 남아있다. 방 문을 열면 청소해야 할 곳곳이 눈에 들어올까 싶어 애써 외면하는 그런 방,
아이를 키우느라 커리어를 접어둔 엄마에게 인생 진로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 그런 방을 마주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기는 참 이쁘다. 눈으로만 본다면
갓 태어난 아기는 참 이쁘다. 세상으로 걸어가는 우리집 7세도 참 이쁘다. 어제보다 오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성장해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세상을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아마 어린이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다. 어제 몰랐던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을 배워가는 것을 보는 순간! 그 어느 하나 놓쳐도 좋을 순간이 없다.
깨끗하게 정돈된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저 예뻐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면, 세상 천지 육아만큼 행복하고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사랑과 손길, 따뜻한 관심을 받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한다.
딸같은 아들은 없었다
만 9개월이 된 둘째는 모습이 아닌 행동만 보더라도 '상남자'라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게 와일드하고 강렬하다. 아무리 치워도 바닥에 언제 떨어졌나 싶은 첫째의 작은 장난감, 집안 살림살이가 입에 들어가있어서 건강하게 하루가 지나가려면 계속 눈으로 잘 살펴야 한다.
7세 후반기에서 원숙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첫째는 '딸다운 아들'은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게
잠시도 쉴 새없이 쏘다닌다. 동생이 생긴 큰 변화는 질투심까지 장착하게 했다. 자기 일을 챙겨서 하면서, 동생은 인생의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계속 줘야 한다.
코로나로, 직장의 특성상 출근보다 집에서 업무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은 남편의 식사, 뒷바라지,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도 나의 소소한 하루 몫이다.
새로운 시작, 오후 다섯시
집안일(집안일라는 세 글자 안에는 수십가지의 하위 카테고리의 단어가 함축되어 있다)-설거지, 빨래, 청소 등 아이보기로 주로 오전/오후를 보내고 나면 첫째의 하원 시간이 된다. 파김치처럼 피곤한데, 놀랍게도 진정한 시작이다. 윈도우 화면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막이 켜진 것같다.
이 때부터는 더욱 전투적으로 집안일/아이보기에 더해 요리와 교육까지 모든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남편은 일이 너무 많아 전적으로 나 혼자하고 있기에 아이 둘을 11시 정도에 재우고나면 넋이 90퍼센트는 몸에서 빠져나가있다. 그러고나면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남편을 위한 공부 메이트로 변신한다. 졸린 눈을 부비며 사라지면 휘발될 오늘을 위한 이런 기록도 남기곤 한다.
독박육아맘에게 미라클모닝보다 더 값진 것?
내가 기록을 남기는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매일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다들 육아가 힘들다는 말을 한다. 오죽하면 '육퇴', '독박육아'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육아와 집안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입을 벌어다주는 남편에게, 육아가 축복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둘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언제 이렇게 컸나 생각하고보면 그 때는 이미 아이는 용수철처럼 커버린 이후이다. 어제도 내일도 없을, 오늘의 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서려있다. 오늘의 몸을 가지고, 오늘의 상황에서, 오늘의 표정으로, 오늘의 말을 하는 남편과 나를 신기하게도 반반씩 닮은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존재한다. 매일 밤 잠에 들기 전에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잠자는 모습을 휴대폰 플래시로 조용히 켜놓고 바라본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쌔근쌔근 오르락 내리는 아이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웃고, 또 미안해하기도 한다. 설사 내일 시간이 생겨 기록하려고 보면, 기억도 오늘만큼 생생하지 못하고, 감정도 오늘만큼 다이나믹하지 않다. 아무리 피곤해도 오늘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라클모닝이 대세라지만, 절대로 미라클모닝할 수 없는 이유이자, 하지 않아도 오늘 새벽이 흐뭇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나간 아이들의 어제처럼 특별한 오늘을 미소지으면서 써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되면 감성은 가고 이성이 찾아와 글쓸 정신도 흩어질테니까, 지금의 피로와 무드가 일기를 쓰기에는 딱 좋다.
엄마의 자존감을 세워주는건 내 아이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 챙겨주기 힘드니 학원을 보내거나 필요한 공부 다 챙겨주는 스타일의 유치원을 보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몰랐는데, 돌도 안된 둘째를 보며, 초등 준비를 해야 하는 7살 첫째를 혼자 모두 케어하는 지금은 어떤 뜻인지 와닿는다.
첫째에겐 7살 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초등 준비'라는 당면한 과업이 있다. 하지만 만 1살이 안된 갓난쟁이에게는 엄마가 딱 붙어 있어야 하고, 즉각 케어를 해야 하기에 첫째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없어 늘 의무감에 무거운 마음이 든다. 그러다보면 조바심에 첫째를 다그치는 날이 많다.
옛 말에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전업맘이 된 지금 딱 이해가 된다. 집안일에, 갓난쟁이 육아에 혼비백산 되다보면 첫째를 공부시키는 데 흐름이 끊겨 집중이 어렵다. 나름 잘 나가던 여자였는데, 아무나 아무렇게나 해도 그만인 집안일을 이렇게 하루 종일 해야 하다니 불합리하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물씬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아이가 "엄마, 우리 오늘 진짜 많이 했지 않아~?"하고 잠결에 오늘 둘이 했던 공부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말하는 날이면, 내가 주는 꿀같은 보상을 몇밤 남았냐 물으며 손꼽아 기다리는(만원 문구사 교환권을 걸었더니 너무 행복해한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반복적인 집안일과 육아도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처럼 느껴지고, 지친 어깨를 으쓱 해본다. '엄마'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오늘 읽은 책 내용이 와닿는 순간이다.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자주 듣는 말로부터 사람은 존재의 이유를 자각하고, 자존감을 쌓아간다. 부모가 무심결에 짓는 표정과 말이 아이의 자존감을 형성하듯, 엄마의 자존감을 결정하는 것은 전업맘이 가장 많이 만나는 타인인 바로 '내 아이'다.
아무나 아무렇게나가 대신 내가 정성스럽게!
아무나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밥이라며 한 때는 계속 시켜먹었다. 이것 저것 정리하다보면 배달음식이 그렇게 시간을 아껴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시켜먹다보면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리 바빠도, 해야 할 일을 모른채 덮어두고,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 부르며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마음껏 보았다. 셔틀버스 하원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게 해주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여유부리며 책도 읽어주고, 집에 와서는 집밥도 해먹이고, 계획에 맞게 학습지를 풀고 원하는 책도 원없이 보여주었다. 첫째에게 내일 먹고 싶은거 다 말하라며, 잠든 아이들 옆에서 장바구니에 식재료도 마음 담아 넣어본다.
엄마 표정이 밝으니 덩달아 아이의 표정도 밝다. 어제 새벽까지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냈었는데, 오늘 하원하자마자 "엄마가 미안했어, 어제 말이야!" 하니 아이도 무슨 말인지 알거 같다는 오묘한 표정으로 흠칫 웃는다. 그리고는 "엄마,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 사랑해" 하고 문득 나에게 사랑 표현도 해준다.
미라클모닝보다 값진 새벽1시 감사일기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나는 지금 독박육아를 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과 우리나라 극과 극에 떨어져 있으며, 남편은 일을 하느라 집안일과 육아를 1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독박육아'가 아닌 '독점육아'라는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예쁜 아이들의 모습을 혼자만 봐서 모두에게 오히려 미안하다는 느낌으로 하루를 살면, 또 그렇게 행복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새벽 1시, 피곤한 넋두리가 감사일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나에게 미라클모닝은 없었다. 하지만 새벽1시 감사일기는 온전한 나의 것이다.
Mr. Sun, Mr. Golden Sun, Please shine down on me!
첫째가 둘째 읽어준다며 빌려온 책에 적힌 노랫말이 진리처럼 느껴지는 순간.
MR를 MS로 바꿔보자.
엄마는 집안의 햇살이라는 말이 정말 딱 맞다.
집안의 햇살이 되어 우리 집과 우리 집 사람들을 더 밝게 비춰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