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많이 올랐다며? 밥 한번 사

by 이진

시간 되면 언제 밥 한번 먹자.

우리는 종종 이런 안부를 나누며 기약 없는 약속을 한다. 이때 '밥 한번'은 채울 수 없는 미완의 숫자로 남곤 한다. 상대방과 적당히 연을 유지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관계.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있지만 프사가 바뀌는 정도만 아는 사이에서 주로 쓰인다.


내가 밥 한번 살게.

이 안부인사는 주로 좋은 일이 있을 때 쓰인다. 취업을 했다거나, 결혼을 하게 돼서 청첩장을 돌린다거나, 아님 상대방과 정말로 만나고 싶은 경우 쓴다. 밥 한번 먹자보다는 좀 더 가까운 사이에게 사용되며, 이 문장에서의 밥 한 번은 이뤄지는 확률이 높다.


밥 한번 사.

거의 사용되지 않는 문장. 이 문장이 쓰이려면 앞 문장이 필요하다. 축하할 사유가 있어야 이 문장은 완성된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쓰기 어려운 말이다. 농담조로 툭 던지듯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 정도는 돼야 한다.


살면서 위 세 가지 말을 하거나 듣곤 했지만, 최근 들은 밥 한번 사는 생소하면서 맞는 의미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뺨으로 스치는 10월의 평일 저녁. 부서를 옮기기 전에 같이 근무하던 과장님과 퇴근길에 마주쳤다. 평소 살갑게 나를 대하시는 분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보폭을 맞춰 걸으며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올해 초 내가 구매했던 집 이야기가 나왔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살만한가?/ 네, 좋아요.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 좋구먼. 그나저나 집값 많이 올랐다며.

네. 제가 들어갈 때보단 많이 올랐어요. 근데 저희 집만 오르는 게 아니더라고요. / 에이 그래도 그게 어디야. 좋겠어. 집값도 올랐는데 언제 밥 한번 사~


나는 멋쩍게 웃으며 흐지부지 대답한 뒤 당구장으로 들어가시는 과장님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과장님의 밥 한번 사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흔들거렸다. 집값이 올랐으니 밥을 산다. 계속해서 문장을 되뇌어봐도 어감이 이상했다.


내가 집을 샀고(대출을 많이 끌어서), 집값이 이후 올랐으니 나는 밥을 사야 한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진다면 내가 과장님께 밥 한번 사달라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님께서는 별다른 의도 없이 했을 말이었을 테다. 축하와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녕 밥 한번 사라는 말을 들은 나는 이게 정말 축하받을 일인가 싶었다. 집값이 올랐다고 당장 수중에 돈이 들어오진 않는다. 되려 세금과 대출이자를 내며 전셋집을 살 때보다 고정지출이 늘어났다. 아껴서 살고 있다.


지금 집을 고를 때 집값이 오르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했다. 실거주 1 채라는 단어에는 주거안정뿐만 아니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 기대는 현실이 됐다. 집을 갖기 전엔 집값이 오르면 풍악이라도 울릴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집값이 올랐다. 우리가 풍악을 울린다면 다른 동네는 트로트 가수를 불러 잔치라도 벌여야 할 것이다.


과장님과 밥 한번 사라는 안부를 나눈 그날 밤. 집에 들어와 불을 켜고서 밥 한번 사라는 말을 듣게 해 준 우리 집을 두리번거렸다. 오늘 너 덕분에(?) 밥 한번 사게 생겼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실도, 안방도, 주방도, 서재도, 천장 등도, 소파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볼 뿐이다. 과장님께 밥을 사긴 어려울 것 같다. 집값 올랐으니 제가 밥 한번 살게요라는 말은 앞으로 평생 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내 가족이 걱정없이,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샀을 뿐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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