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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ug 17. 2022

공기업 지방근무, 진짜 이래요?

와….

출처: 블라인드 게시글

한동안 공기업 지방근무 현실 짤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녔다. 사진에 달린 댓글들은 각양각색이었다. 갯마을 차차차 아니냐, 진짜 저런 데서 근무를 하냐. 그 와중에 공기업, 공공기관 재직자들은 저게 현실이다, 저긴 좋은 곳이다. 향수병이 돋는다는 둥 현실 고증 사진에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게시글을 올린 등록자는 네이버 직원이었다. 작성자는 아마도 말끔한 셔츠 위에 사원증을 두르고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채 빌딩 숲을 산책하며 여유 있게 점심시간을 즐기다가 이 짤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작성자의 ‘와….’라는 외마디 탄식이 모든 걸 설명해준다.


서울 빼면 시골이라 하는 대한민국에서, 저 사진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동네에서 2년간 근무한 나도 댓글이 달고 싶어졌다. 글자수가 초과되어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점심시간이 되면 읍 주민들의 핫플레이스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회사 건너편 공터에서 열리는 5일장을 둘러보았고, 20년이 넘은 사택 아파트에서 50대 과장님과 같이 살아야 했고, 퇴근하면 (거의) 매번 회식에 불려 나가야 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이런 지방에서 근무하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공공기관, 공기업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실제로 근무하며 그곳의 삶에 적응하거나 버티고 있을 것이다. 외부인으로서 2년간 시골에서 근무했던 나의 영광스런 수기를 이분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세상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지방 곳곳에서 고생하며 근무하고 있음을. 이곳들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임을. 결국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일생의 단 한 번뿐인 순간임을.


2016년 겨울, 영광스러운 삶의 시작

내가 재직 중인 회사는 규모가 꽤 큰 공기업이다. 덕분에 부모님께서도 취업소식에 기뻐하셨고, 주변에서도 많은 축하를 해주었다. 나 역시 취업준비를 하며 겪었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라 만족했다. 합격 발표 후 취뽀의 기쁨을 한껏 누린 뒤 신입사원 연수를 받기 위해 회사 연수원으로 입소했다. 이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는 뿌듯함도 잠시, 한 가지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과연 어디로 발령받을까?’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 1차 발령지가 발표됐다. 내 1 발령지는 광주전남 지역이었다. 1~5순위까지 희망지역을 넣었지만 광주전남은 5순위 내에 쓰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발표 결과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갯벌이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멍해져 있다 이내 현실을 받아들였다. 동기들과 '도시'에서 마지막 해후를 찐하게 벌였다.


 연수원 퇴소 며칠 뒤, 같은 지역으로 발령받은 동기들과 함께 지역본부가 있는 광주로 모였다. 본부 인사팀의 안내를 받아 동기들과 함께 회의실에 모여 앉았고 다들 원하는 2차 지역을 써냈다. 회의실에서 초조하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2차 발령지가 발표됐다.내 이름 옆엔 선명하게 ‘영광’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전남 영광. 그 굴비 유명한 동네? 한숨이 나오던 차에 다른 동기들의 발령지를 보고서 가만히 있어야 했다. 신안, 해남, 진도, 고흥 등 전국노래자랑에서나 봤던 동네들로 배치받았다.동기들은 내게 영광은 ‘수도권’이라며 부러워했다.


2차 발령지가 발표된 다음 날 바로 출근이었다. 광주에 연고가 없던 터라 해남으로 발령받은 동기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밤사이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눈이 왔다. 폭설에 첫 출근부터 지각할까 싶어 광주터미널에서 여섯 시 반 첫 차를 탔다.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여 걸려 영광터미널에 도착했다.  베이지색 단층 터미널 건물 위쪽엔 파란색 글씨로 큼지막하게 고속버스터미널이 적혀있었다. ‘진짜 영광에 왔구나. 하… 실화냐’ 군 제대 이후 처음 마주한 아담하고 푸근한 버스터미널 모습에 현타가 밀려왔다.


터미널에서 빠져나와 캐리어를 끌고서 눈길을 헤쳐나갔다. 정장에 코트를 걸치고서 읍내 거리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무척 부조화스러웠다. 내가 근무할 영광지사는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5분 남짓 걷다 보니 조그마한 로터리 건너에 전면이 큼지막한 유리로 채워진 4층짜리 회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와 영광은 처음이지?’

 눈이 내린 뒤 고요하기만 한 이른 아침, 공기는 왠지 모르게 더욱 차갑게만 느껴졌다. 회색 건물이 잿빛 웃음을 지으며 날 맞이해주는 듯했다. 첫날부터 폭설로 맞이해주는 걸 보니 이곳에서 펼쳐질 어드벤처가 심히 궁금해졌다.


지사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지사 현관에서 눈을 털어낸 뒤, 두리번거리며 2층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고서 당차게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분이 끔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누구냐 너는” 광주 사투리 억양이 가득 찬 말투였다. 정장을 입고서 얼어있는 사람을 보셨으니 당황하실만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영광지사로 발령받은 신입사원입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냐. 반갑다잉.”

그분은 내가 근무할 부서의 대리님이었다.


대리님의 광주 사투리를 듣자 내가 이곳에 온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나의 영광 라이프는 폭설과 사투리로 시작되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workinrural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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