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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Oct 29. 2022

지방근무 2년이 내게 남긴 것

우리 회사는 공기업이다. 공기업 특징 중 하나는 순환보직이다. 이로 인해 인사이동이 잦다. 잦은 인사이동은 복이기도 독이기도 하다. 만약 A지점에서 근무한 지 만 8년 정도 되면, 타 지점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8년 간 근무하는 동안에도 부서를 두세 번 정도 이동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어떤 사람들과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다.


전남 영광으로 첫 인사발령을 받고 나는 같은 팀에서 2년간 근무하며 3명의 팀장을 거쳤다. 첫 번째 팀장은 내가 발령받고서 한 달 뒤쯤 이동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2명의 팀장과 함께 일했다. 이 두 명의 팀장과 일하면서 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두 팀장들과 나와의 관계의 온도차는 극명했다. 첫 해 팀장님과는 스스럼없이 잘 지냈지만, 다음 해 팀장과는 그러지 못했다. 특히 입사 2년 차 가을, 겨울은 팀장과의 불화 때문에 삶에서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입사 후 처음으로 회사에 회의감이 들었고, 군대시절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미워하게 됐다. 꽉 뭉친 근육처럼 응어리진 증오를 풀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영광에서 근무하던 2년간의 이야기를 쓴 가장 큰 목적은 자기 극복이다. 팀장과의 불화로 비롯된 나의 어그러지고 모났던 마음은 구김살 없이 반듯하게 펴졌다. 나와 팀장 서로 간에 의견과 가치관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여기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2년간의 소중한 시간이 팀장과의 마찰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으로 얼룩이 져 나쁘게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쓴 이야기다. 시골에서 근무하고 지내면서 나빴던 것보다 좋았던 게 더 많았다고. ‘때문’보다 ‘덕분’이었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고. 지방에서 근무했었던, 근무하고 있을, 근무하게 될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몰랐을 것들을 써보고 싶었다.


도시에서는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처음으로 읍내에 생겼던 순간이 생생하다. 지사 옆 영광 로컬 주민들이 자주 찾는 카페에서 벗어나 정형화된 맛을 보장하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영광에서 마실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지사에서 거리가 다소 있는 편인데도 나와 내 또래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면 그곳으로 향했다. 시골 속 도심 공기를 마음껏 느끼고 싶어서. 이후에도 하나둘씩 생겨나는 프랜차이즈와 감성카페를 다니며 행복해했다.


TV나 철도역, 지하철에서나 보던 지역축제를 영광에 살면서 처음 가보았다. 영광은 매년 단오 무렵에 법성포에서 단오제를 크게 연다.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돼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민속축제다. 만약 영광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아 그런 축제가 있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직접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웬걸. 직접 축제에 가보니 기대 이상으로 즐길 거리가 많았다. 특히 단오제 초청가수로 온 임창정의 라이브가 기억에 남는다. 임창정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지척에서 들을 수 있었다. 군수님이 대접해주신 한정식을 거하게 먹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며 앵콜도 연달아 불렀다. 때깔 고운 굴비를 먹었는지 이날 임창정의 라이브는 전율이 돋았다.

웅장한 법성포 단오제 행사장 입구 ⓒ성진


운때가 좋았는지, 내가 근무하는 시절에 열린 음악회를 영광에서 녹화한 적이 있었다. 제40회 영광군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영광군민으로서 이건 꼭 가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고 TV로도 잘 안 보던 열린 음악회 녹화 현장에 참관했다. 태진아, 김연자, 박상민 밴드, 남상일, 양파, 유승우, 빅스, 우주소녀, KBS 관현악단에 이르는 초호화 라인업이 영광의 늦여름 저녁을 수놓았다. 영광군민들이 다 왔는지 공설운동장의 넓은 공터엔 사람들로 빼곡했다. 살다 살다 열린 음악회를 가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영광에서 근무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그곳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일만 하기 위해 시골로 떨어진 거라 생각했다면 우울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이제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말을 온몸으로 실현했던 2년이었다. 모르겠다. 더 오랜 시간 있었다면 계속 즐길 수 있었을지.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훨씬 더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너 2년밖에 안 있어서 그런 거라고. 더 오래 있었으면 다를 것이라고.


맞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라, 추억이라는 예쁜 포장지에 싸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2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나는 한 뼘 더 성장하게 됐다. 능숙한 업무능력을 갖추고, 상사와 동료직원에게 인정받는 '직원'으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 말이다. 직원으로선 아직도 준수하지 못하지만, 사람으로선 영광에서 근무한 덕분에 클 수 있었다. 외지인으로서 낯선 곳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나 스스로가 단단해짐을 느꼈다. 삶의 불확실성 앞에 의연해졌다. 까짓꺼 이쯤이야 괜찮다고 웃어넘길 수 있고, 진흙 속에서 진주를 보려 하는 마음가짐을 얻었던 2년이었다.


영광으로 발령받던 1월 중순의 첫날 아침이 떠오른다.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이 하얘진 읍내를 정장을 입고서 캐리어를 질질 끌며 눈길을 뚫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뒤, 영광에서 떠나던 날은 1월 초의 이른 오후였다. 지사 선배 동료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지사 건물을 나왔을 때 마지막으로 마주친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있던 팀장님이었다. 한 때 죽도록 싫었던 그 팀장님과 나는 짧은 포옹을 나누고, 작별인사를 드린 뒤 유유히 차에 짐을 싣고 떠났다. 겨울이었지만 눈이 시리도록 맑은 햇빛이 내리쬐는 한겨울의 적요한 낮이었다. 영광에서 근무했던 2년은 그렇게 내 등 뒤를 비춰주는 영원한 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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