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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Oct 19. 2022

스님께서 민원을 넣으셨다

난 대학시절 대학원에 가기 싫었다. 성적 맞춰 들어온 공대에서 이과 머리도 모자란 내가 전공흥미가 생길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수년간 연구실 생활과 분위기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전공수업을 듣던 건물 곳곳에 위치한 연구실을 지나갈 때 종종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회색빛 연구실의 풍경과 공기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 공간에서 수년간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있을 나 자신이 상상되지 않았다. 진득하게 앉아있는 성격이 못되다 보니 대학원생들이 대단해 보였다. 점심시간이면 연구실 곳곳에서 나오는, 어딘가 초췌해 보이는 대학원생들을 보며 마음을 굳혀갔다. 연구실보다는 사무실이 그래도 낫겠구나 싶었다.


다짐한 대로 4학년이 되자마자 곧장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취업 전선은 생각 이상으로 혹독했다. 수십 군데 회사에 지원했지만 낙방을 거듭했다. 쌓여가는 탈락 소식에 내 자존감은 점점 떨어져갔다. 너덜너덜해져 가벼워진 자존감은 가기 싫던 대학원 연구실로 흘러 들어갔다. 대학원에 갈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같은 과 몇몇 친구들이 취업이 되지 않아 도피성 대학원 진학을 하는 걸 보니 더 흔들렸다. 흔들림도 잠시, 일렁이던 마음을 이내 고쳐먹었다. 대학원 연구실에서의 내 모습떠올리자 섬했다. 곧 죽어도 학부 졸업 후 바로 취업해야겠다 절치부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공기업, 공공기관은 차순위였다. 지방근무 리스크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대학원이 낫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먼저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를 보고서 확고해졌다. 강원도 태백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합격소식을 듣고 수업중 환호성을 외치던 친구는 발령지를 통보받고선 곡소리를 냈다.


최전방으로 입사하게 된 친구에게 축하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전해야 했던 씁쓸함이 취업준비 하는내내 잔상처럼 진하게 남았다. 그렇게 친구는 취업 후 태백의 지박령이 되어 한동안 보기 힘들었다. 친구가 태백으로 가고서 정확히 1년 뒤, 사기업은 모두 떨어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한 공기업에 덜컥 합격했. 태백으로 간 친구가 다니는 회사였다. 산밖에 없는 태백에서 친구가 어찌 살지 걱정하던 나는 바다와 굴비밖에 없다는 전남 영광으로 발령받았다. 친구에게 건네던 축하와 안타까움이 내게도 고스란히 돌아왔다. 굴비 많이 먹겠다며 친구들에게 시샘을 받았다.


대학원의 갑갑한 공기에 염증느끼면서도 지방 가기 싫어 공기업을 꺼려하던 모순적인 내게 회사 판도라의 상자 던져주었다. 내가 속한 직군의 경우 업무 특성상 현장 나갈 일이 무척 많다. 고객, 민원인, 공사현장 등 직접 나가야만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영광에서 근무하며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은 현장에 나갔다. 악성민원이나 긴급한 현장을 나갈 땐 힘들었지만, 나간다는 거 자체는 대체로 좋았다. 갑갑한 사무실에서 나와 짧은 로드트립을 나가는 것처럼 숨이 탁 트였기 때문이다. 할 것 없는 시골살이를 현장에 자주 나가며 들이킨 공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있었다.


영광은 산과 바다 고루고루 볼거리가 많던 동네였다. 구석구석 다니다 보니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숨겨진 풍광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드라이브하며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대한민국 경관대상 최우수상에 빛나는 백수해안도로부터, 가을이면 붉은 물결이 지천을 뒤덮는 상사화 군락이 유명한 사찰 불갑사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영광에서 근무하는 동안 불갑사에서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종교단체 민원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 살짝 긴장이 됐다. 절 앞 공터까지 차를 끌고 와서 내린 뒤 조심스레 민원접수대장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사찰 시설을 관리하는 스님이 마중 나오셨다. 스님께서 민원인이었다. 합장하며 인사드려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았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스님은 내게 상황을 설명했다. 사찰 통하는 석교 증축공사를 하는 데 우리 회사 설비가 지장이 되어 이설 해달라는 민원이었다. 급한 건 아니니 잘 처리해달라 말씀하시고서 스님은 사찰로 돌가셨다.

가을의 불갑사 ⓒ성진


스님과 헤어지고 현장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정갈한 사찰 앞뒤론 얇은 실개천과 울긋불 엷은 단풍 색깔이 올라온 너른 산이 흐르고 있었다. 곧장 스마트폰 카메라로 현장 주변을 담았다. 여행사진이었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 스님께서 민원을 넣어주신 덕분에 한적한 불갑사의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현장을 다 보고 난 뒤 시간이 남무언가에 홀린 듯 사찰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 보았다. 그곳엔 머리위로 가을빛 단풍 구름이, 발밑으론 낙엽이불이 펼쳐 진 숲이었다. 사방이 온통 발갛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코끝으로 스미는 시원한 가을 공기에는 낙엽 냄새가 묻어났다. 걸을 때마다 발밑은 바스락거렸다. 가을이 온통 내 것만 같았다.

꿈만 같던 길 ⓒ성진


바닷가 작은 섬마을로 현장을 나갔을 때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절경에 한참이나 발이 묶였다. 조그만 모래사장 봉긋 솟아있는 동산 뒤로 펼쳐진 바다는 햇빛을 받아 윤슬로 반짝였다. 멀리 보이는 일자로 도열한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길처럼 보였다. 우두커니 서서 고요하게 움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고 입사동기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며 자랑했다. 이런 데가 현장인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부럽지 않냐고. 허공 속 메아리에 불과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난 현장에 나갔다가 또 한 장, 여행사진을 더다.

ⓒ성진


님이 민원인이고, 바다가 지척인 동네에서 근무한 덕분에 출장길이 여행길이었고, 현장이 관광지였다. 때로는 여행 목적지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염전 한가운데이기도,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축사이기도, 모터가 돌아가며 찰박찰박 물소리만 분주한 양식장이기도, 넓은 밭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농막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목적지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풍경과 사람들은 제각각이었지만 대체로 따스하고 푸근했다. 시골로 발령받아 처음 느꼈던 좌절 씁쓸함은 그들 덕분에 시간을 거쳐 고운 체에 걸려 쓸려나갔다.


 대학원의 갑갑한 공기가 싫었던 청년은 그렇게 시골에서 2년간 맘껏 바깥공기를 들이 쐬며 돌아다닌 덕분에 눈과 마음이 예전보다 조금은 더 트였다. 빛나는 풍광과 따뜻한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대체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어른이 돼서 돌봄을 받 수 있었던,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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