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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Aug 13. 2024

귀하고 소중한 내 인생 잠시 내려놓기

 2011년 1월 어느 늦은 밤, 아기를 만나려면 아직 두 달 이상 남았는데 갑작스레 배가 사르르 아파온다. 혹시 몰라 시간을 재어보니 3분 간격으로 주기적인 통증이 느껴진다. 조기진통이다. 산부인과에 내원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인다. 간호사들이 여기저기 다급하게 전화를 한다. 인큐베이터가 있는 대학병원을 수소문하는 중이리라. 생애 첫 구급차에 누워 40여분을 이동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배냇저고리 한 장 준비하지 못한 채로 아기를 만났다. 30주 2일, 7달 반 만에 세상에 급히 나온 나의 아들, 안녕 아가. 세상에 나온 것을 환영해.  



   

 사실 나는 사회적 성공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인턴을 시작했고, 바로 취업으로 이어졌다. 세상에 나가보니 학사도 좋지만 석사는 더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원을 준비해서 그 당시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학원에 합격했다. 대학원을 다니다가 결혼도 했고, 전업주부가 되기보다는 돌아올 곳을 만들어두고 싶어서 석사가 끝나기 전 계획 임신을 했다. 출산 후 육아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다시 복학을 해서 졸업과 다음 취업을 연결시켜보려는 나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만 나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인생이었다. 2011년 1월 갑자기 찾아온 나의 아가는 철저히 계획 중심인 나의 인생 위에서 나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이른둥이(조산아) 밤아(가명)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집중 치료를 받으며 체중 2kg이 되기를 기다렸다. 난 한 끼만 거하게 먹고 자도 다음 날 2kg쯤 훅 늘어나는 것은 일도 아닌데, 이 작디작은 아가는 하루에 0.01kg, 많아야 0.05kg 늘어난다. 40일이 넘는 입원생활 끝에 겨우 2kg이 되어 인큐베이터를 졸업했다. 이제 진정한 육아의 시작이다.


 이른둥이를 키우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신생아청력검사는 물론이고, 심장 초음파도 4번이나 찍어야 한다. 심장에 구멍이 있는데(아직 안 닫혔는데), 이 구멍이 닫히지 않으면 35세 때 중풍에 걸린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들었다. 엄마가 아가보다 더 무서워한다는 망막증 검사도 했고, 대학병원 문턱이 닳도록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 돌쯤 되었을 때, 우리 밤아가 여느 아가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딸랑이도 안 보고, 눈맞춤도 못하고, 옹알이도 없었다. 이유식을 준비하다가 냄비를 떨어뜨려 엄청 큰 소리가 났는데도, 밤아는 놀라지 않았다. 큰 걱정을 안고 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지하철 소리도 안 들리는 정도의 고도난청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고도난청 소리를 듣고 그 어느 부모가 마음이 좋으랴.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신생아청력검사도 ‘Both pass’라고 적혀 있었는데...갑자기 무슨 고도난청? 심지어 밤아가 고도난청이니 어서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을 날짜를 정하고 가라고 한다.


 “인공 와우 수술이 뭔가요?”


 그나마 나보다 이성을 좀 더 되찾은 것 같아 보이는 남편이 질문했다.

 

 “귀 뒤쪽을 절개해서 후두부 뼈를 깎고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해서 소리를 듣게 하는 수술이에요. 벽에 붙은 사진 보시면 나와 있으니까 한 번 보세요.”

 

 요즘 말로 MBTI의 ‘대문자 T’ 성격을 지닌 듯한 의사선생님의 과하게 쿨한 답변에 나는 한 번 더 상처받았다. 그리고 벽에 붙은 인공와우 수술에 관한 포스터를 보았다. 귀 내부 쪽으로 이식된 인공와우 임플란트도 무서웠고, 귀의 외부에도 뭔가 복잡하게 생긴 기기가 붙어 있었다. 보청기보다 크고 무거워 보였으며, 코일과 동그란 무언가가 머리에 부착되어 있는 심난한 사진. 이 한 장의 수술 안내 포스터가 나를 산 채로 집어 삼켰다. 그냥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아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저기, 선생님! 당신 아이였더라도 그토록 쿨하게 고도난청이다, 당장 수술 날짜 잡아라,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환자와 보호자 마음을 좀 헤아려보세요.’라고 의사 선생님 붙잡고 무슨 말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도 떨어지지 않고 눈에 뵈는 것도 없이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의지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당장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밤아는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방긋 웃고 있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나는 190㎝가 넘는 장신에 1m쯤 되는 어깨를 가진 언제나 듬직한 내 남편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수 개월이 지나도록 우리 부부는 인공 와우 수술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아직 애가 어려서 청력검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거야, 수면유도제가 제대로 안 들었을 거야, 잘 듣는 아가인데 검사에 오류가 있었을 거야...’ 수만 가지 생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철저한 계획 하에 대학원 진학과 결혼, 임신의 시기를 내 마음대로 맞춰왔던 나에게서 세상 모든 것을 내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거라 우기며 자신감 넘치게 살아왔던 내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마치 두 손 모아 가득 받은 물이 손가락 틈새 사이로 사라지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 손에 움켜쥔 것을 비워내야 비로소 그 손으로 내 것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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