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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Aug 21. 2024

또래보다 5년이나 발달 지연

 요즘은 영유아검진이 워낙 국가적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어서 생후 개월 수에 맞춰 발달해야 하는 과업들이 항목별로 체크업 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엄마들은 말이 조금만 늦어도 걱정이 앞서고, 혹여 우리 아기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상담센터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눈맞춤 잘 하고, 말귀 잘 알아들으면 아기의 성장 발달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대다수의 경우이다. 아인슈타인도 9세에 말문을 열었다고 하지 않던가! (극단적인 비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국가에서 해주는 무료 서비스인 ‘영유아건강검진’이 항상 스트레스였다.      

 눈맞춤을 잘 한다. (못한다. 눈맞춤이 길지 않다.) 

 대근육을 사용할 줄 안다. (돌 반 됐는데 못 걷는다. 기지도 못한다. 누워서 굴러다닌다.)

 소근육을 사용할 줄 안다. (이건 좀 잘 하나?)

 두 세 단어 이상 붙여서 말한다!!!!! (말은 개뿔...)

 말귀를 잘 알아듣고 행동으로 옮긴다!!!!! (누구 놀리냐...)     

 

 나는 체크할 항목이 없었다. 

 시력검사는 더 큰 스트레스였다. 영유아들은 숫자를 읽을 줄 몰라서(물론 줄줄 읽는 영재아들도 있겠지만) 주로 새, 우산, 비행기, 자동차 등의 그림을 맞추는 시력검사표로 시력 측정을 한다. 그러나 우리 밤아는 시력검사표를 보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영유아건강검진을 필수적으로 받은 후 그 결과표를 어린이집에 제출해야 한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검진 시기에 나는 일부러 정해진 날짜가 다 지난 이후 병원에 가서 기본적인 키, 체중, 머리둘레 등만 ‘유료’로 검진 받고, 그 확인서를 어린이집에 연체된 카드대금 메꾸듯 제출했다. 이렇게 하면 15,000원 손절이(유료 검진) 가져다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모든 현실을 이렇게 피하면서 지냈지만, 결론은 나도 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긴장이 앞선다.      


 “밤아 어머니~ 밤아가 낮잠을 안 자는데요. 밤아가 친구들 자는 것을 방해해서 친구들이 잠을 못 자요. 어머니께서 밤아를 데려가주시면 좋겠어요.”


 어린이집의 아이들 중에 낮잠 못 자는 아이가 어디 밤아 한 명일까. 잠 안 자는 아이들은 조용히 책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선생님과 쉬는 시간을 보내겠지. 그러나 우리 밤아는 잠도 안 자고, 잠자는 친구를 위해 조용히 시켜도 알아듣지 못하니 얼마나 난처한 상황일지 이해가 갔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밤아 어머니. 밤아가 불러도 안 쳐다봐요.”

 “밤아 어머니. 밤아가 친구들이랑 소통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밤아 어머니. 밤아의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올 것이 왔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밤아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상담 차 어린이집에 방문해도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애써 부인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밤아가 집에서는 불러도 잘 쳐다보고, 시키는 행동도 잘 따라 해요. 어린이집이 아직 좀 낯선가 봐요.”


 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늘어놓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만 36개월쯤 넘어가니 배변 훈련이 이미 많이 늦었는데, 말이 안 통하는 밤아에게서 기저귀를 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 조금씩 소변 가리는 것부터 연습을 시켰다. 그랬더니 밤아는 팬티에 그냥 실례를 몇 번 해버리다가, 이내 축축해진 팬티가 싫었는지 손가락으로 고추를 가리키며 나를 찾았다. 대변은 기저귀를 채워야 가능했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대변을 본 적은 없었으니깐 확률적으로 팬티에 대변을 실수할 확률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어린이집에서도 배변훈련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저귀 없이 보내기 시작했다. 

 9시에 등원시킨 이후로 엄마인 내가 더 긴장했다. 선생님께 소변 마렵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 혹시나 소변 못 보고 힘들어하는 건 아닐지 걱정을 했는데, 걱정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어린이집 배변훈련 첫날부터 밤아는 어린이집에서 소변을 보지 못했다. 밤아는 9시 등원부터 3시 30분 하원까지 소변을 참고 있었다. 선생님께 표현도 못하고, 그냥 팬티에 싸버리기도 싫어서 그 작은 아기가 6시간 이상 소변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만나자마자 소변이 마렵다는 표현을 했고, 어린이집 바로 앞 잔디밭의 흙이 패이도록 소변을 봤다. 맥주 3000cc 거하게 마신 아저씨처럼 3살 아기가 소변을 쏟아냈다.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밤아는 외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돌 이하의 수준에 머문 채 또래들과 발달 지연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밤아가 4세 때(생후 40개월 쯤 되었을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신생아청력검사부터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건강한 청력을 가지고 있단다. 동생이 돌쯤 넘어가니 엄마, 아빠, 슬슬 말하기 시작한다. 엄마가 된지 5년 만에 들어본 ‘엄마’소리가 감격적이면서도 슬펐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3살이나 어린 동생이 먼저 말을 하는 이 참담한 상황에 형이 형다워지려면 더 이상의 현실 기피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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