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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Aug 26. 2024

인공 와우가 뭐예요?

 인공 와우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수술 하루 전 아침부터 밤아 동생을 친정에 맡기고 밤아를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시켰다. 수술을 위해 추가 예방접종도 하고, 항생제 테스트도 하고, 여러 가지 밤아가 싫어할만한 것들을 많이 했다. 생각보다 울지 않고 버텨주고 있는 밤아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인공 와우 수술은 듣기를 담당하는 부분인 달팽이관에 임플란트를 이식해서 인공적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수술로 외부에(귀 뒷부분) 부착하는 어음처리기와 귀 안쪽 뼈를 깎아 삽입하게 되는 내부장치 임플란트로 구성되어 있다. 수술을 통해 임플란트를 이식한 후, 수술 부위가 아물면 후두부 측면에 외부 장치를 부착해서 바깥 소리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청신경까지 전달해주는 원리이다. 말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수술이야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부분이고, 환자는 외부 장치 받아서 잘 부착만 하면 된다. 그리고 한 쪽에 약 1,100만원 정도 되는 고가의 기기이니 분실에 각별한 주의를 해준다면, 언어 재활과 청능 재활을 잘 해준다면, 머리 안쪽으로 임플란트가 이식되어 있으니 MRI와 공항검색대 등 자기장의 영향 받는 것들만 피해준다면 (쓰다 보니 조건이 많네?)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수술 전 큰 관문이 두 가지가 있었다. 이발과 금식. 귀 뒤쪽을 절개해야 하니 이발이 필수였다. 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를 냈지만, 도저히 이발만큼은 내 눈으로 볼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밤아의 이발을 맡기고, 나는 밤아 동생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에서 저녁을 먹는데 남편에게 밤아의 이발한 사진이 카톡으로 왔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밤아는 아직 5세라 장시간 금식이 힘들 수 있으니 밤에 자는 동안 공복을 유지하고 아침 일찍 수술을 해주신단다. 나는 친정에서 와우 수술 전 마지막 밤을 겨우 보내고, 새벽부터 병원으로 향했다. 밤아가 잠에서 깨어난 후 물 한 모금 먹지 않도록 잘 달래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밤아가 잠에서 깼다. 나는 수술 시간까지 밤아의 시선을 돌릴 무언가를 계속 찾았다. 태블릿으로 ‘레이디버그’도 보여주고 색종이 접기도 해줬다. 퍼즐도 하고 스티커 붙이기도 했다.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밤아의 시중을 모두 들어줬다. 오전 8시가 지나가고, 10시도 지나갔다. 그러나 수술 준비하라는 말이 없었다. 간호사실에 문의했더니 오전에 응급 수술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밤아는 점점 배고파했다. 밤아는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쥔 채 입에 갖다 대며 물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물 한 방울 줄 수 없는 나는 애가 탔다. 거즈에 물을 적셔 혀를 한 번씩 닦아 주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공복의 힘겨움을 겪어보지 못한 밤아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러나 배고플 밤아 걱정에 마음 졸였던 엄마에 비해 밤아는 생각보다 허기짐을 잘 이겨내는 듯 보였다.     


 오후 3시. 생각보다 많이 길었던 공복의 시간, 그리고 애처로운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밤아가 수술실에 들어갈 차례라고 한다. 긴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렸는데, 수술 차례가 되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병원 베드 이송해주시는 분이 찾아와 밤아를 수술용 베드에 옮겨주셨고, 베드를 끌고 이동하시려는데 밤아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이가 말은 못해도 그 두려움이 나에게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안 가겠다고 울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결국 이송원님의 권유로 나도 베드에 함께 올라가 앉았다. 이송원님은 나와 밤아가 함께 올라가 앉은 베드를 조심스럽게 밀고 수술장 앞으로 데려다 주셨다. 드디어 밤아와 떨어져야 할 시간이다. 수술할 수 있도록 양쪽 귀 윗부분을 ㄱ자로 이발한 밤아가, 몇 시간 후엔 이발한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고 나오겠지. 

 자, 이제 정말 잠시 헤어져야 할 시간. 그러나 밤아가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면서 시간이 계속 지체되었다. 할 수 없이 의료진이 와서 수술장에서 놓아야 할 신경안정제를 미리 놓았다. 링거에 주사가 들어가고, 밤아가 한순간에 잠들었다. 그렇게 소리지르며 울던 내 아가가 이렇게 한순간에 스르륵 눈을 감다니. 내 눈이 미치도록 뜨거워졌다. 옆에 계셨던 친정 아빠도 쏟아지는 눈물을 힘들게 참아내셨다.


 밤아는 그렇게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밤아와 함께 굶었던 나와 남편, 그리고 친정 아빠는 서울대병원 근처 부대찌개 집으로 가서 쓰디 쓴 부대찌개로 요기를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무 맛도 안 나는 부대찌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수술대기실 앞으로 와서 앉아 있었는데, 수술해주시는 선생님이 수술장 밖으로 나오셔서 나를 찾으셨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급히 가보았다.


 “오른쪽 인공 와우 삽입 잘 끝났구요. 전기 신호 확인했어요. 소리 잘 들어가는 거 확인했고 방금 봉합했습니다. 나머지 왼쪽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다 끝난 후 연락드릴 테니 쉬고 계세요.”     


 아, 수술 잘 되었다는 말씀이시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사실 나는 밤아가 인공 와우 수술을 늦게나마 받게 되었지만, 끝까지 청각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닐 거야. 절대 그럴 리 없어. 곧 말 할 거야.’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허무맹랑한 믿음이 수술이 시작되고 난 이후까지도 나에게 계속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의사 선생님의 부름에도 ‘어, 정말 청각장애가 아니어서 날 부른 건가?’하는 의문이 아주 잠시 있었다. 그러나 소리 잘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는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로 모든 미련을 내려놓았다. 맞아. 인공 와우 수술만이 살 길이었다. 더 이상의 청각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이제 청각장애인의 엄마로서 나의 길을 갈 생각을 해야 한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장에 다시 들어가시고 두 시간 가까이 되었을 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이동하지 않고 수술대기실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수술 끝난 밤아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밤아가 있다고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밤아는 머리에 양쪽으로 호빵을 붙인 듯한 붕대를 감고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밤아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울었다. 너의 이 눈물의 의미를 누가 알까. 엄마인 나도 전부 알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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