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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Aug 22. 2024

극단에서 찾아낸 용기 한 자락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보, 내 생일 선물로 다른 거 해줄 필요 없고, 이거 하나만 들어줘.”

 “어떤 거?”

 “밤아 입원시켜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검사 좀 받자. 서울대병원 예약 가능하대.”

 “......”     


 남편이 서울대학교병원에 밤아의 건강검진을 예약했다고 한다. 청각장애가 맞는지, 아니면 다른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2박 3일을 입원시키고 진행하는 검사란다. 너무 벼랑 끝이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던 나는 남편의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검진은 기본적인 신체 측정부터 엑스레이, CT, 소아정신과 진료까지 총체적으로 진행된다. 나라에서 해주는 무료 영유아건강검진도 애써 피하던 내가, 서울대학교병원까지 가서 전신 건강검진을 하는 것을 동의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지만, 어느 순간 이 검진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박 3일 입원 날이 되었고, 밤아는 늘 그랬 듯 영문도 모른 채 병원에 따라와서는 환자복을 입고, 색종이와 태블릿에 의지한 채 겨우 짜증을 참아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통 속에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는 CT는 수면 유도제까지 맞아가며 감당해냈다. 물론 강제로 힘들게 먹인 수면 유도제가 잘 듣지 않아서 휠체어를 탄 채로 휠체어와 함께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그간 쭉 해오던 밤아의 대리 대답과 대리 행동 등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는 나는 단 1%의 감정도 이입하지 않고 담담하게 간호사들을 도와 2박 3일 간의 모든 검사들을 무사히 마쳤다.      


 결과가 나왔다. 역시나 고도난청이었고, 신체와 정신은 건강하지만 소통의 부재로 인한 심각한 발달지연이 있으니 수술 후 반드시 농학교(청각장애인학교)에 입학시켜서 집중 케어를 받으라고 한다. 혹시나 해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제 한 쪽 귀 달팽이관을 아이에게 이식해주면 안 될까요?”

 “불가능해요. 인체에서 유일하게 이식이 안 되는 곳이 귀입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에 짓눌렸다. 결국 검사 결과에 굴복하고 2015년 11월 17일 인공와우 수술을 예약한 후 퇴원했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장난감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치며 나의 유일신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물이 포도주 되게 하신다면서요.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눈 먼 자도 보게 하신다면서요.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얼마나 강인한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이 작은 어린 생명의 귀는 왜, 도대체 왜 외면하시는 겁니까?”  

   

 어두운 방에서 수도 없이 되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나의 하나님. 하지만 홀로 눈 감은 나의 텅 빈 어두움 속에서 흰옷 입은 커다란 존재가 나타나 나를 꼭 안아주었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3주 후 인공 와우 수술을 받는다. 수술을 하면 귀 뒤 쪽으로 와우기기를 항상 부착하고 있어야 할 텐데, 와우기기가 없는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 외삼촌과 함께 셋이서 롯데월드에 갔다. 물론 롯데월드는 와우기기와 상관 없이 갈 수 있지만, 사실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기도 했다. 롯데월드에 도착했다. 사람도 별로 없고 놀기에 딱 좋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다음 번에 이곳을 온다면 너의 귀 뒤에 와우기기가 붙어 있겠지? 그 때는 이 공간의 소음을 들을 수 있을까? 그 때는 네가 타고 싶은 놀이기구가 무엇이라고 네 입으로 말하며 표현할 수 있을까? 저 퍼레이드의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채웠다.      


 수술은 받기로 결정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극심한 슬픔과 우울, 분노, 공포, 그 어떤 부정적인 단어들도 나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가족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에 또 다시 혼자 장난감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문 아래 구석진 곳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울었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 아래 놓여진 서랍장을 밟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도 열었다. 뛰어내리자, 결심했다. 한 손은 창문에, 한 손은 창문틀을 잡고, 오른쪽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내 얼굴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비해 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다시 다리를 내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13층 우리 집. 참 높구나. 무서웠다. 조용히 내려와 창문을 닫았다.


 맞다. 죽을 용기조차 없던 나였다. 이런 내가 무슨 엄마 될 자격이 있다고...... 못났다. 정말 못났다. 나란 인간 정말 나약하고 지긋지긋하다. 인공 와우가 뭐라고. 내 앞에 이렇게 살아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이 귀여운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 눈 뜨면 엄마만 바라보고 엄마만 의지하는 이 핏덩이가 가엾지도 않은가.

 저 창문을 열어젖힐 용기로 청각장애 아들 한 번 멋지게 키워보자. 죽더라도 일단 한 번 살아보고, 그래도 아닌 것 같으면 그때 다시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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