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출산하면 “○○야, 출산 축하해.” 또는 “엄마가 된 것을 축하해!” 등의 축하메시지와 전화를 받는다. 산후조리원에 방문도 해주고, 꽃선물도 받고, ‘기저귀케이크’나 신생아 내복 같은 아기용 선물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임신 30주 만에 조산을 했고,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에 두고 나 홀로 조리원에 들어갔다가 우울감에 못 이겨 일주일 만에 환불을 받고 나와서 그 모든 축하의 과정들이 생략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대 재생산’되는 주변의 말들이 무서워서 출산 자체를 알리지 못했다. 심지어 30주에 출산했으니 ‘만삭’을 경험하지 못했고, 내가 임신한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을 정도로 배가 많이 안 나왔다. 그 당시 살았던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는 신생아를 안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임신했었냐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엄마 인생’은 고도난청의 조짐을 슬슬 보이기 시작하던 생후 몇 개월의 때부터 이미 고통의 길로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남들과 반대였다. 남들은 출산하고 축하받을 때 나는 칠삭둥이 미숙아 아들 걱정, 남들은 아기 재롱 만끽할 때 나는 ‘조금 달라 보이는 아기’ 걱정, 남들은 육아 휴직 나는 고통의 길.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부러웠다.
“○○야, 짝짜꿍, 짝짜꿍~”이라는 엄마 목소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마주치고 있는 여느 돌쟁이 아가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너는 짝짜꿍을 알아듣고 박수를 치는구나.’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공원에 나가면 가슴줄을 착용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강아지도 “앉아”라는 주인의 말소리를 듣고 바로 앉는다.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앞에 두고도 엄마가 “먹지마~” 라고 말하면 그저 애처로운 눈망울을 하며 맛난 먹이를 입에 넣기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바로 강아지이다. 난 그런 강아지의 청력과 정보처리능력이 부러웠다.
하루는 밤아를 데리고 앵무새 카페에 갔다. 나는 밤아를 안고 앵무새를 보며 “안녕~”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수많은 손님들의 사랑과 관심 덕에 이야기꾼이 된 앵무새는 나에게 “안녕!”하며 다소 거칠고 크게 화답했다. 앵무새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아가는 놀라서 운다. 그런데 우리 밤아는 평온하다. 앵무새의 말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앵무새마저도 내게는 닿을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사랑스럽고 귀엽고 예쁜 돌쟁이 시기에 나는 밤아를 바라보며 슬픈 웃음을 지었다.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봤고, 머리로는 우울한 상상만 계속 했다. 밤아는 계속 성장했다. 몸이 커가고, 주관이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나도 밤아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밤아는 엄마에게 본인의 의사가 전달이 안 되니 짜증만 늘어갔다. 매일 울고 짜증을 냈다.
마트에 가면 바닥에 드러누워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리 아이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뭔가 원하는데 엄마가 몰라주니 떼를 썼다.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는 그 장난감을 사주거나, 또는 밥 잘 먹으면 사준다는 등의 협상(?)을 하면 떼쓰던 것이 대부분 해소된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의사 자체가 전달이 안 되니 협상도 불가, 소리 지르고 우는 것을 멈추는 것도 불가.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찌푸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지나간다. 오지랖 많은 아주머니는 “내가 좀 안아줘볼게~” 하시면서 아이이게 스킨십을 시도하신다. 그러나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밤아에게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회색빛 도시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나의 뒷모습은 그저 살아는 있지만 상한 껍데기 같은 존재였다.
고도난청과 인공 와우 수술 이슈로 대학원 복학을 포기한 나는 세상과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누구를 만나긴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다. 이건 남편과 나의 암묵적인 1급 비밀이었다. 오랜 친구들의 경조사에만 밤아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나 홀로 참석하는 정도의 인간관계를 겨우 유지하고 살았다. 친구를 만나는 그 짧은 시간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그냥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아이 엄마는 나랑 동갑, 아들은 밤아랑 동갑이다. 아이들 생일도 일 주일 차이라 성장이 비슷하다. 물론 키 같은 외적인 성장만 비슷하다. 그 아이는 성장이 또래보다 빨라서 생후 18개월 쯤 되었는데 못 하는 말이 없다. 엄마한테 ‘노얀택 타(노란색 차)’를 달라며 말로 디테일하게 표현하는데, 세상 부러운 아이였다.
두 아이가 비슷한 시기에 감기에 걸려서 함께 소아청소년과에 방문하게 되었다. 진료 후 네블라이저를 2분 정도 코에 대고 있어야 하는데, 난 이 시간이 정말 난처하고 힘들었다. 같이 온 아이는 엄마가 소근소근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면서 2분의 네블라이저 시간마저 즐겁게 보내고 있다. 근데 밤아는.....네블라이저를 처음 접한 두려움과, 이 기계가 무엇을 하는 기계인지에 대한 궁금증, 하기 싫은 마음 등이 뒤섞인 듯 남의 병원 네블라이저를 집어 던지고, 코에 대지 말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울고 난리가 났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급기야 나는 아이를 병원 바닥에 눕히고 아이 위에 올라가 살짝 앉아서 강제로 네블라이저를 코에 대줬다. 당연히 밤아는 더 크게 울면서 지옥 같은 2분을 보냈다. 그게 뭐라고. 사실 안 하면 그만인데...나도 우울과 분노와 좌절 뒤섞인 모종의 감정들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밤아가 왜 그렇게 짜증을 내고 소통이 안 되는지, 내가 왜 그렇게 매일 어두운지, 영문을 전혀 알 리 없는 내 친구는 밤아와 나 사이에서 난처해했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내가 말했다.
“정현아(가명). 내가 아무래도... 괴물을 낳은 것 같아.”
친구는 당황했을 것이다. 제 자식을 괴물이라 하는 사람을 처음 봤을 테니까.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이미 코끝까지 차오른 뜨거운 눈물이 입을 여는 순간 괴물과 같은 소리와 함께 터져 나와 나라 잃은 백성처럼 통곡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