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냥 육아 너머 가치생 살기
“왜 나만 육아를 하는 것 같지?”
“왜 아무것도 안 해?”
“왜 우리 아들만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 것 같지?”
“왜 우리 딸만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
참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 ‘왜’를 붙이면 굉장히 커다란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육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간혹 우리는 ‘나 너무 많은 일을 해서 힘들어.’ 하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왜 나만 모든 일을 혼자 하지?’ 하고 스스로 커다란 문제에 빠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힘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그 속에서 힘듦도 슬픔도 업무도 혼자서 이겨내느라 말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힘들다는 한마디가 오히려 스스로를 도와주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놀이를 가만히 본 적이 있는가? 유치원 교사 시절에 아이들의 놀이를 가만히 보면 참 신기하다. 놀이를 하기 시작할 때에는 ‘오! 나도 같이 하자!’ 하고 쉽게 한마디를 건넨다. 쓱 들어오는 그 아이는 분명 지금 하고 있는 놀이의 낯선 이방인인데도 아이들은 엉덩이를 찔끔찔끔 비켜가며 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그들은 블록으로 성을 만들어 역할놀이를 시작한다. 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구성을 맡는다. 누군가는 성의 외곽 울타리를 두르는가 하면 누군가는 문 한 짝을 만든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의견을 말하거나 깔깔 웃기도 한다. 저마다 사용한 블록의 수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결국 만들어진 성 하나를 모두 자기들이 함께 만들었단다. ‘선생님! 우리가 만든 작품 사진 찍어주세요.’ 하고는 성 옆에 둘러서서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 그 작품에 진심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더 많이 했다고 이것을 ‘나의 성’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없다. ‘이 성의 문은 내가 디자인했으니 나만 문을 열 수 있어!’ 하는 아이도 없다. ‘왜 나만 만들어. 너는 왜 웃고만 있어?’ 하는 아이도 역시나 없었다. 그들은 함께 성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곁에서 지켜본 교사는 어떠한가? 교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가 문을 만들고, 누가 많은 블록을 썼고, 누가 만들기에 더 집중을 했으며, 누가 제일 마지막에 합류하여 사진을 함께 찍었는지도. 그런데 교사는 그 누구의 역할에도 ‘왜’를 붙이지 않는다. 다만, 너희들이 함께 만들어낸 그 성이 참 멋지다 말하고, 근사하다고 칭찬하며, 우리 이번에는 성의 내부를 함께 꾸며볼까? 하고 그들을 격려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놀이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지독히도 빨리 알아챈다. 분명 만들지 않고 웃고만 있는 아이는 둘인데, 아이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다르다. ‘얘들아 빨리 만들어! 우리 여기서 탈출 놀이를 할까? 아니면 여기를 하늘 위에 세상이라고 하면 어때?’ 하고 웃는 아이에게 아이들은 ‘오! 재밌겠다! 알았어. 빨리 만들자!’ 하고 답한다. ‘에이! 이거 뭐야. 너무 이상하네. 무슨 성이 이렇게 생겼어?’ 하고 웃는 친구에게는 아이들은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면 결국 갈등이 생기고 놀이 시간에 성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다. 서로 마음 맞는 친구끼리 다시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새로운 놀이를 하러 떠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교사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친구와 함께 성을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충분히 느끼고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 회사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일, 친구와 연인과의 인연을 유지하는 일. 관계가 얽힌 이 여러 일들은 블록으로 성을 함께 만드는 일과도 같다. 역할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수행 능력도 다를 것이다. 내 마음이 먼저 닿고 네 마음이 나중에 닿을 수도 있다. 다만 나중에 만들 성을 위해 나와 너의 마음의 무게가 맞아 들어간다면, 결국 끝에는 이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고 서로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으며 웃을 것이다. 성을 만드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교사가 되면 된다. 때론 답답하고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되고,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성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맞다면, 지켜보고 격려하고 믿고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도 그들은 느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의 아들 둘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건넨다.
“아들 둘아 잘 들으렴.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는 엄마와 아빠가 똑같단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한 명만 하는 건 없어. 아빠가 너희를 데리고 미끄럼틀에 올라갔다면 엄마는 아빠랑 너희가 마실 물을 사서 기다리고 있는 거고, 엄마가 앉아서 너희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빠는 기다렸다가 그 책을 제자리에 꽂아 두고 오거든. 그 누구 한 명의 희생은 없어. 왜냐하면 엄마와 아빠는 지금 멋진 성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