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냥 육아 너머 가치생 살기
“자, 아이에게 칭찬을 하는 방법은 따라 해 보세요. 이유를 먼저 말하고, 표정은...”
육아에도 유행이 있나 보다. 훈육이 화두이던 상담 기간이 있더니, 어느 때는 학부모님들이 ‘칭찬’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많이 꺼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SNS에도 아이들을 칭찬해야 한다는 글과 동영상이 올라온다. 누군가는 칭찬의 중요성을 말하고 누군가는 칭찬하는 방법을 친절하게도 안내한다.
유행은 돌고 돈다. 돌고 돈다는 것은 어쩌면 본질 그 이외의 것이라는 말이다. 옷도 유행이 있다. 어떤 해에는 온몸을 다 덮는 긴 패딩이 유행하는가 하면, 어떤 겨울의 마네킹들은 배꼽 위로 올라오는 짧은 패딩을 입고 있다. 음식도 그렇다.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사 먹던 사람들은 설탕이 코팅된 과일꼬치를 사러 줄을 선다. 사람들에게 유행은 중요하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더 수월할 수도 있고 집단 안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유행 또한 본질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는 옷장에서 지난해 사고 넣어둔 긴 패딩을 꺼내 입는다. 날이 추운데 짧은 치마와 멋들어지게 찢어진 구멍이 무슨 소용 있으랴. 겹겹이 껴입느라 옷의 유행은 가려진다. 실내에 들어와 외투를 벗으며 우리는 알게 된다. ‘아! 유행하는 옷을 입었구나.’ 배가 고플 때는 어떤가? 맛집 앞에는 기다란 줄이 서있고, 유행하는 음식점의 예약은 꽉 차있다. 유행하는 음식을 위해 기다릴 수 있을까? 당장 생각나는 음식, 묵은지 푹 끓여 만든 김치찌개 한 그릇이면 충분히 행복하다.
당연한 얘기를 이렇게나 길게 한다고 느끼는가? 아이들에게 칭찬을 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친절하게 써놓은 글과 동영상을 보며 나도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왜 아이들을 위해서는 당연한 얘기도 길어지고, 부모들은 그러한 육아를 마음속에 저장하며 아이를 칭찬할 때마다 꺼내어 생각할까? 아이와 나의 인생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 때문이다.
칭찬은 아이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칭찬의 방법은 아이를 위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며 들었던 칭찬 중에 기억에 남는 칭찬이 있는가? 그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에 집에 왔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려서 집에 까지 어떻게 하면 비를 최소한으로 맞을까? 혼자서 상상했다. 집 앞 분식집 위에 가림막이 있었나? 역에서 나와 가림막 아래를 따라 걸어가면 그리 많이 맞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상상하느라 따뜻한 커피가 벌써 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때 그 사람은 나의 상상 구름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 앞까지 차로 태워다 주는 그 따뜻한 마음이 참 멋졌다. 남들이 말하는 ‘멋진 차’는 아니었지만, 남들은 모르는 ‘멋진 마음’을 내가 알게 되어 그때 처음으로 참 설렜다. 그 사람은 오늘 나와 함께한 시간이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 사람과 나를 함께 알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집에 갔다면서? 잘 만났어? 걔가 지금 방금 전화가 왔는데 너 정말 예쁘다더라!” 그렇게 그 친구는 나의 남편, 내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다.
그 칭찬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특별했던 사람이 해준 한마디의 칭찬이다. 내가 직접 들은 칭찬도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말한 칭찬인지 나는 알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칭찬은 화장을 지우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계속 내 마음에 남았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까지 들리고 보이는 듯했다. 미소가 머금어지고 마음이 빈틈없이 가득 찼으며, 그 마음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과의 관계의 끈이 맺어진 것 같았고 다음에 봤을 때에는 더 예뻐 보이고 싶었던 그날 밤. 그게 나에게 기억 남는 칭찬의 느낌이다.
칭찬에 대한 긴 글과 동영상에 담긴 말은 모두가 맞다. 칭찬은 진심이 담겨야 하고, 반복되기보다는 다른 표현으로 말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칭찬에 대한 상황과 이유를 말해주어야 하고, 표정과 목소리 등 비언어적인 요소 또한 칭찬에 맞아야 한다.
이러한 칭찬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소중한 관계를 맺는 선생님, 엄마, 아빠의 이유 없는 말 한마디도 칭찬이 될 수 있다. 칭찬은 듣고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쌓은 블록 작품을 나의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 엄마 아빠가 안아주며 ‘우와! 정말 멋지다.’ 한마디는 아이에게 가치 있는 칭찬이다. 색은 어떤 색이며 모양은 어떤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가끔은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는 칭찬도 아이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아빠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아빠가 일하다가 깜짝 놀랐대. 너무 멋있어서!’, ‘선생님이 요즘 네가 그렇게 밥을 잘 먹는다고 좋아하시더라.’ 아이의 표정은 그때 그 밤의 내 표정과 닮아있다. 아마도 뭐든지 할 수 있는 그 마음도 가득 충천되었으리라.
육아의 유행은 꼭 적고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나의 육아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충분하다. ‘요즘은 칭찬에 대한 육아 정보가 많이 나오네.’, ‘요즘은 훈육에 대해 강조하는구나.’ 싶다면 나는 요즘 칭찬을 잘하고 있는지 훈육을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아이들의 육아 또한 유행이 아니라 본질에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