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시기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시작해 보니 중학교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잘 입지 않는 옷을 리폼해서 입거나,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이어도 레이어드 해서 입었으며, 가방을 디자인해서 직접 만들어 들고 다녔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디서 샀냐고 묻고는 했다.
옷을 만들거나 리폼을 할 때는 그 자리에 앉아서 5~6시간씩 꼬박 바느질을 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패션디자인 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와는 관련이 없었던 과이기도 했고, 굉장히 생소한 직업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어렴풋한 기억을 붙잡고 23살쯤에 패션디자인 학원을 찾아가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남은 한자리에 운 좋게 들어가 처음으로 패션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다.
다니면서 패션 쪽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모든 진로 결정에 있어서 공통적이겠지만 첫 번 째로는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으로는 내가 이 일과 잘 맞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2013년도에 입사한 회사에서 벌써 12년째 MD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도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몰랐다. 내가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이 일을 좋아한다는 것과 이 일이 잘 맞는다는 것 때문이다.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안 좋아하는 일도 해야 하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갈 때에 누구의 말이 다 옳을 수는 없고, 틀린 말도 딱히 없다.
왜냐하면, 삶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의 상황과 환경이 달라서 다 다르게 적용되고,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패션디자인 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것 중 한 가지는 나는 이 일이 잘 맞지만 디자인은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모방과 창조의 그 어떤 것을 잡아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도 공모전 준비도 해보고, 실제로 공모전에 출품도 해봤다. 하지만 유학파를 상대하기엔 역시 무리였다.
어쨌든 대학이나 학원을 다닌 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오래 일할 일자리를 얻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아무래도 디자이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방향을 살짝 바꾸어 MD가 돼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경험 부족에 나이도 많은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그때는 24살도 많은 나이였다. 2년제를 졸업한 22살의 신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24살이 어린 나이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취업 실패로 인하여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험을 쌓기로 했다.
그래서 MD가 되기 전에 다닌 곳이 교복회사 디자인 보조, 백화점 판매, 원단 회사였다. 그때 나이가 26살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곳마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계속 내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MD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싶겠지만 나는 그리 쉽지 않았다. 지금의 나도 면접 볼 때 경험자를 뽑게 된다. MD 업무를 잘 모르고 오는 사람들은 시장 가서 옷만 쓱 고르고, 코디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와서는 그렇지 못한 일들을 하려니 다들 도망가기 바쁘기 때문이다.
퇴사 사유는 항상 같았다. “생각했던 업무가 아니에요."
나름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의 MD 업무는 겉으로 봐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은 잡일 그 자체였다. MD는 잡일도 털털하게 할 수 있어야 오래 일할 수 있고, 잡일까지도 좋아해야 된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도 많지만 그동안 해 본 일 중에 MD가 일이 가장 많고, 챙길 것도 많고, 잡일도 많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진정한 MD인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아직도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