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지나면
가을은
놓아주기에
좋은 계절이어서
손에 쥔 것들을
살며시 놓았더니
가버리는 그것들이
너무도 아쉬워
설핏 가슴에 슬픔이
차오른다.
계절이 만든 빛깔에
눈이 부셔
먼 산을 돌아보니
가을이 저 만치서
손짓한다. 나를 부른다.
저토록 여유로운
숲과 강과 하늘과 바람.
휘돌아 나는 새 한 마리
붉은 나뭇잎 위에서
고개를 치켜든다.
하늘을 흐르는 흰 구름 사이로
한결 밝아진 햇살이 갈라진다.
창문에 부딪히는
작은 잎 새 하나
흔들리는 상념 속에
사르르 소리를 낸다.
가을은
잊기에
좋은 계절이어서
힐끔 기억 속을 더듬어보니
지난날이 남긴 한 마디
모두 놓아주고
모두 잊으라고.
가을이 지나면
호젓한 그 길에
남겨진 발자국,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만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