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ante e Cantabile
You are my celebrity
세상의 모서리
구부정하게 커버린
골칫거리 outsider.
코믹월드라고 불리는 만화 행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유명한 행사죠.
제가 그 행사에 처음 참가한 것은 코믹월드가 8회 차를 맞이했을 때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주 있던 행사가 아니다 보니 달력에 화려하게 표시해놓고 친구들과 그날이 되면 어떤 걸 해볼까 하며 들뜬 마음을 한껏 표현했던 학창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제 친구들은 모두 그림을 그리는 애들이라 멋지게 그림을 그려 활동했지만, 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림엔 소질이 없어 스토리를 써주거나 짧은 소설을 써 함께 동인지에 넣었습니다.
그 행사는 코스프레로도 유명하지만, 실은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는 하나의 등용문 역할도 했습니다. 제 친구가 유명 만화잡지 편집자에게 명함을 받았을 때 우리 모두 축하해줬고, 제가 좋아하던 작가가 몇 해 후 만화잡지에서 데뷔를 했을 때,
'아! 나 저 사람에게 데뷔 전에 펜레터도 보냈었는데.'
하며 괜히 마음속으로 기쁘고 반가워, 서점 한 구석에서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축하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을 때도 있었죠.
지금이야 웹툰이나 웹소설로 만화를 바라보는 인식도 많이 변화했지만, 사실 만화나 라노벨을 즐기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저는 이제껏 많은 소수 문화를 사랑해왔죠. 호기심도 많아서 궁금한 게 생기면 꼭 뛰어들어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질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만화나 라노벨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게임, 타로카드,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어쩌다 보니 이상한 잡학 사전이 제 안에 만들어지게 되었죠. 이 정도면 취향이 메이저 문화를 거부하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서 이런 성향을 숨기는 편은 아닙니다. 제 취향이 부끄럽다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좋아하면서 숨긴다니! 존경하는 창작자에게 오히려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당당했죠. 게임을 하고, 만화책을 보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아니니 더 꺼림칙할 게 없었죠. 숨김없이 과감한 모습을 보이니 친척이나 가족들도 차마 말리기보단 그저 무시하는 선택을 했죠. 사실 당당하면 욕을 덜 먹습니다. 마이너 문화를 즐기며 얻은 삶의 지혜죠.
취향만 마이너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여기에 예민함까지 더해지니 소수에서도 소수가 되어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 덕질 생활은 대체로 누군가와 나누기보단 혼자 즐기게 되었죠. 덕분에 홀로 상상, 공상, 망상으로 가득하지만, 뭐 어떤가요? 저 같은 아이 하나 세상에 굴러다녀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유별난 예민함을 보이는 부분은 청각, 후각, 촉각입니다.
청각 예민함은 귀가 밝아 생활 소음을 들으면서, '배달 도착했어.'라든가 '아빠 들어오셔.'라는 말을 할 정도라, 가끔은 '개냐?'라고 물을 정도죠. 사실 우리 집 강아지보다 제 반응속도가 빠를 때도 있습니다. 음악회에 가서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소릴 듣고 '응? 뭐지?'하고 금방 알아차리고, 거리에서 엠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에는 괴로워합니다. 하나 더 듣기 어려워하는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섞인 노래입니다. 미세하게 들리는 잡다한 기계소리, 음이탈, 기교가 한껏 섞이는 노래는 정말 감당이 되질 않습니다.
후각의 예민함은 인공향을 거부합니다. 인공향을 어려워하니 향수도 까탈스럽게 고릅니다. 음식에 담긴 인공향이 독하게 느껴져 음료나 디저트에서 그런 향을 맡고 나면 도저히 입에 넣지를 못하죠. 비단 인공향뿐만 아니라 그저 자극적인 냄새에 국밥집에서 밥 한술 뜨기가 힘들고, 술집에서는 독한 알코올 냄새에 기름 냄새, 오래된 오물 냄새까지 뒤엉키니 절대 걸음 하지 않습니다.
촉각은 후각과 함께 어우러져 예민함을 보이는데, 이런 이유로 대체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 스테이크를 도저히 삼키질 못합니다. 비건이냐는 오해를 받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이 아니라 그나마 넘기는 것이 야채일 경우가 많아서 먹는 것이고, 실은 야채의 쓴 맛이나 돌기에서 느껴지는 촉감 때문에 야채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입이 짧다 못해 마음이 예민해지면 바로 음식을 거부하게 되는 거죠. 마비가 생긴 후 한 동안 덜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감각이 돌아온 후로 더 까탈을 부려대니 버겁기만 합니다.
생긴 건 뭐든 잘 먹게 생겨서 예민과는 거리가 멀듯한 이미지에 까탈을 부려대니 주변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예민함이 저도 감당이 어렵습니다. 사람과 만나고 알아가고 깊어지는 관계 흐름 속에서 제가 가진 예민함은 벽을 만듭니다.
성격이라도 무던하면 좋으련만, 이 예민함은 성격에도 깃들어 말 한마디 그냥 넘기지 못하고 담아둔 채 끙끙대고, 타인의 표정, 느낌, 목소리톤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긴장하죠. 눈치는 빠르지만, 싫은 것을 좋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나름 신념이나 기준은 확실해서 그 선을 넘는 걸 타인이 넘어오는 것도, 제가 넘는 것도 꺼리죠. 겁이 많은 탓도 있지만 사실 저는 모난 돌이 맞습니다.
"어린 거지."
"미안합니다."
"미안한 건 아니고 그냥 그게 너인 거지. 바뀔 인간이면 이미 변했겠지. 그냥 받아들여."
하고 언니는 오늘도 시니컬하게 충고합니다. 사실 언니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건 저도 이런 제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겁니다.
예민함도 취향도 세상에 섞이기 힘든 조건이라 해도 사실 노력한다면, 세상의 메이저인 척 연기하며 섞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거부함을 선택한 것이겠죠. 어딘가에 물들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내 안에 가진 것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욕심.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채 지키기에만 급급한 게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놓는다는 건,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 모난 부분을 다듬는다는 건 어떤 걸까요? 그게 정답이지 않을까요?
이런 고민이 들었을 때 언니는 제게 아이유의 <팔레트>이라는 노래를 소개해줬습니다. 언니가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말이죠.
"이 노래를 들어봐. 아이유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는지. 강해진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아, 이 아이는 정말 강해졌구나, 단단해졌어. 진짜가 되어가는 구나를 느낄 수 있지. 넌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아. 넌 나를 미워하는 걸 알아. 하지만 아이유는 그 남의 평가를 무조건 수용하며 일희일비하지 않아. 어쩌라고? 이게 나야! 하고 대답해. 그 평가는 남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너는 네 가치를 남의 이목에 두고 있어. 남들이 모두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또 남들이 모두 너를 미워할 수 없지. 너를 세상에 맞게 굴려 깎아내면 너는 만족할까? 어쩌면 그 조각이 사라진 걸 너는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고 상실감을 느낄 거야. 마음 내킬 때 <Celebrity>도 들어봐. 들어봤으면 좋겠어."
그렇게 노래 추천을 받고 정작 그 노래를 들은 건 시간이 꾀 지난 이후였습니다. 연습이 유독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대체로 수업을 다녀온 후 4일째에서 5일째 작은 고비를 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넘어가던 게 그런 날이면 악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괜히 힘이 더 드는 겁니다. 억지로 건반을 눌러봐도 소리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고 리듬도 제멋대로. 진득하게 템포를 유지하지 못하고 엉망인 그런 날입니다. 물론 이 날이 지나면 다음 날은 대체로 나아지는 편이지만 사실 이 날이 너무 괴롭습니다. 욕을 한 사발 하며 괴롭혀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만 울컥거리죠. 붙잡히지 않는 집중력에 딴짓만 늘어갈 때, 언니가 추천했던 노래를 들었습니다.
아이유의 노래에는 엇박이 많은 편이지만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꾀 매력적이죠. 그래서 그나마 좋아하는 가수가 아이유입니다. 잠깐의 일탈을 결심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다리를 휘적거리며 음원을 찾았습니다.
음악이 시작됩니다. 아주 짧은 호흡. 그리고 바로 덤덤하게 아이유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짧은 호흡은 현재 긴 겨울을 나고 있는 모든 사람의 등에 얹어주는 따뜻한 손. 그는 잔뜩 웅크리고 움츠린 친구에게 담담하게 말합니다.
너는 말이야 세상의 모퉁이고 구부정하게 걷는 아웃사이더야. 그리고 네 취향은 어쩌면 세상에서 당장 받아들이기엔 독특할지도 몰라. 그래서 넌 의기소침해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런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르지? 그게 얼마나 멋지고 유일한지 모르지? 내가 너에게 셀럽이듯 너도 누군가의 셀럽이야.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일 뿐. 아직 어둠 속에 숨겨진 별일뿐.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찾게 되고 알게 될 거야.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야.
건반에 기댄 채 바보처럼 큰 소리를 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저보다 어린 이 작은 소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요? 이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고심을 해온 걸까요? 아이유가 담담하고 다정하게 건넨 응원가에 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어버리고 나니 마음의 갑갑함이 경칩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려보내고 다시금 정신을 차려 건반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건반 하나 누르기에 힘이 들어갑니다. 틀리는 건 여전하고, 마음에 쏙 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 번 쏟아낸 눈물에 제 조급함과 열등감을 함께 쏟아낸 듯합니다.
"나도 강해 질 수 있을까?"
"있잖아. 넌 네가 약하다고 착각하는데, 너 절대 약하지 않아. 넌 네 아픔에도 물러선 적이 없어. 언제나 맞서고 도망을 선택하지도 않았지. 참 우직하게도. 문제라면 너는 네가 가진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것. 하찮게 보고. 네가 가진 것들을 쓰레기 취급해. 그런데 아냐. 그건 네 길로 가는 이정표야. 예민함이 없다면, 네가 원하는 걸 확실하게 모른다면, 너는 옥석을 가려낼 수 없어. 네가 가진 예민함이나 어쩌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습관과 성격에 단점만 있는 건 아냐. 나는 말이야. 네가 가진 그 원석을 네가 잘 키워내고 있다고 믿어. 내가 이 노래를 너에게 추천해 준 건 너는 너에게 셀럽이고, 그리고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에게 셀럽이라는 걸 잊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야."
이후 이 노래는 제 응원가가 되었습니다. 힘들고 나를 부정하는 마음이 들 때면 귀에 이어폰을 끼고 가사를 음미합니다. 소리를 듣는데 힘은 들어도 이 작은 소녀가 건네는 응원가는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도록 도와줍니다.
언젠가, 상황이 허락하는 언젠가. 아이유 씨를 만날 날이 온다면, 그의 손을 꼭 쥐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당신의 응원가를 들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라고 말이죠. 너무 부담스럽게 느끼실까요? 결국 전 이 말도 악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손편지 수줍게 내미는 것으로 이 마음 표현하겠죠. 고마운 마음 다 전할 수 있다면 다행일 텐데 그마저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소심한 팬이 전하는 마음. 작게나마 전해봅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지나온 겨울은 추억이 되었겠죠?
제게도 그런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당신의 응원가가 있으니까요.
You are my celeb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