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야 안녕, 우리 다시 만나

너무 짧았던 우리의 시간

by 연상은

아기가 아직 엄마 뱃속인 줄 안다고, 그래서 엄마가 대신 숨을 쉬어주는 상태로 호흡을 해서 산소를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이러다가도 숨 쉬는 법을 순간 터득하면 그 후에는 괜찮아진다고 했다. 엄마랑 아기는 탯줄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통한다는 이야기를 봤다. ‘열매야. 이렇게 숨 쉬는 거야. 따라 해 봐~ 들이마시고 뱉고.’ 수없이 혼자 되뇌었다.


아기를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열매 몸에 수많은 기계와 줄들이 달려있었다. 어제는 분명 아기가 통통했는데 밤새 빼짝 말라있다. 핑크빛 피부도 어딘가 모르게 어두워져 있다. 예뻤던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아기가 엄마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힘을 낸다고 한다. ” 열매야. 엄마 아빠 여기 기다리고 있어. 얼른 나와서 만나자. “

토요일 저녁, 아기가 위독하다고 했다. 우리는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밤을 새울 생각으로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혹시 우리한테 오는 건 아닐지 무서웠다. 우리를 제발 그냥 지나쳐주길 간절히 바랐다. 많은 기계들이 왔다 갔다 했다. 열매를 검사하러 온 거라는 걸 알았다. 갑자기 의료진들이 너무 바빠 보였다. 왔다 갔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반복했다.

문이 열리고 주치의가 나오더니 심장 마사지 중인데 가망이 없을 것 같다 한다. 문 틈사이로 보이는 열매. 그 작은 몸으로 심장 마사지를 견뎌내는 중이다. 남편이 울면서 너무 아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가망이 없냐고.. 그래도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났다.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래도 몇 분만 지나면 일요일인데 그럼 사흘을 사는 건데… 이틀은 너무 짧잖아. 한 번만 안아보게 해달라고 했다.


아기는 파란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안았을 때 열매가 차가울까 봐 무서웠는데 아직 아기는 온기가 남아있었다. 이렇게 작았구나 우리 아기. 이렇게 작은 몸에 그렇게 많은 줄들을 달고 힘든 치료를 하고 힘들었겠다. 열매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열매의 인생은 36시간이었다. 그중 28시간을 위태위태하게 보냈다. 열매가 이제는 안 아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아니.. 이런 말들로 내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 세 가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많이 울었다. ”열매 가는데 우리 웃는 모습 보여주자. 울지 말자 여보. “ 기억이 흐릿한데 그냥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 테니 다시 와달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이렇게 짧은 시간이 아니고 영원일 거라고.. 잘 가라고 아프지 말라고 인사했다. 눈물이 안 났다. 안 믿겨서인가, 뭘까. 담담하게 이별을 하고 병실에 올라왔다. 그러고 나는 발작을 했다고 한다. 몸이 떨렸던 건 기억이 난다. 순간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그 좁은 침대에 둘이 누워서 밤새 이야기했다. 이제 아기는 갖지 말자고. 우리는 예쁜 딸이 있으니 그만하자고 했다. 그렇게 둘이 어떻게 살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날이 밝았다. 너무 집에 가고 싶었다. 오늘은 이르다고 내일 괜찮으면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이 병원에 10년 넘게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자기도 너무 당황스럽다고 한다. 그 말이 싫었다. 처음 듣는다고, 너네만 겪은 희귀 케이스라고 이런 말들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이 트라우마는 결국 다시 아기를 낳고 키워야만 없어지는 거라고, 우리 병원이 아니어도 좋으니 꼭 아기를 낳으라고 했다. 참나…

그렇게 월요일이 왔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었다. 퇴원 짐을 싸고 있는데 신입처럼 보이는 의사 한 분이 왔다. “퇴원하신다고 해서 왔어요. 이런 일 종종 있어요. 산모님만 겪는 게 아니에요. 우선 조리 잘하세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가끔은 있는 일이라고, 우리만 불행한 게 아니라고 그런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나를 수술해 준 주치의도 다시 와서 왜 이렇게 됐는지 차트를 꼼꼼히 다시 봤다고 했다.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다시 돌아가도 바꿀 게 없을 만큼 완벽했다고 한다.

집에 왔다. 집에 오니 임신 기간 동안 열매랑 보낸 시간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이틀을 같이 병원에서 보냈지만, 사실은 우리는 열 달을 함께 한 거지. 열 달 동안 열매랑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괜찮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아이를 잃은 부모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용기가 안 난다.


열매와 매일 바라보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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