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임신하고 갑자기 찾아온 피부질환은 나의 생활을 완전히 망가트렸다. 막연히 출산만 하면 나아지겠지 했던 기대와 달리 얼굴에서는 여전히 진물이 나왔었다. 벌겋고 두꺼워진 얼굴 때문에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쁜 남편 대신에 두 아이의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고 그 시간 동안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길고 긴 가뭄에 자갈 바닥을 드러내는 강처럼 나의 인내심 또한 바닥이 드러났다. 아이들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한 가득이나 체력이 고갈되는 저녁에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는 날이 늘어났다. 2, 5살 아이들이 징징거리고 떼쓰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몇 번 다독이다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 붙은 홍보문을 보았다. 육아 심리에 관한 강의가 진행된다는 글을 읽고 주저 없이 신청했다. 마침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때라 오전 시간에 참여가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총 3번의 수업에 모두 참여했다. 강의는 주양육자의 태도 및 심리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아동의 나이별 성장에 대한 이론과 주양육자의 행동이 어떻게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는가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 마지막 수업일에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날 강사분은 수강생들에게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눈을 감은 채 할머니 집이라고 생각되는 집 앞이고 대청마루가 있는 집을 떠올리고 그 안에 들어서는 본인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고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어떤 장면이 보였는지에 대해 나누면서였다.
"엄마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어요."
"엄마가 나를 안아줬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내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방 문을 열었던 내 앞에 보였던 것은 깜깜한 방이었다. 아예 보이는 것이 없는 깜깜한 장면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입을 떼었다.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말했는지 아니면 보이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 말과 동시에 북받치듯 울었다. 스스로도 놀랐다. 강의를 잘 듣다가 누군가 잠긴 수도꼭지를 돌린 듯 내 안에 쌓인 무언가가 툭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누군가가 가져다준 휴지로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어떻게 수업이 마무리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이유조차 모르는 눈물이 민망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집에 돌아가는 내내 왜 깜깜한 장면만 떠올랐는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의 무의식이 옛 일을 떠올리는 것을 막은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하며...... 옛 일이라면 어릴 때의 기억들일테고 그 기억들 대부분이 좋지만은 않을 테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망가진 TV처럼 꺼진 화면 같은 어둠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옛 기억들을 거슬러 가다 보면 가끔 '정말 내 기억이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재편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그때의 일을 찬찬히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내 아이들이 나와 유사한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또는 유난히 내가 예민하게 구는 아이들의 행동을 발견할 때마다 '아! 내 기억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연재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도 불안함이 차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큼 노력하셨는지 알기에 받았던 상처를 끄집어내어 글로 풀어간다는 다짐 자체가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만에 하나 내가 쓴 글을 읽고 상처받으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가족과의 통화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가끔은 전화받기가 두려운 날이 여전한 것을 보면 내 안에 쌓인 감정을 쏟아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딸이 되겠습니다.'는 나의 다짐이나 마찬가지이다.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거절을 잘하지 못하겠고 혹여 거절을 하더라도 전전긍긍하며 부모님 눈치를 보는 내 모습을 바꿔보고 싶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을 거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