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종종 신랑을 꼬셔서 동네 호프집에 간다. 안주도 다양해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 좋고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신랑과 대화하면 풀리기 때문에 이 시간을 좋아한다. 아파트에서 가까운 곳이라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제법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갈 수 있다. 그날도 신랑이 아이들과 함께 저녁도 해결할 겸 맥주 한 잔 하러 가자고 권유해 호프집으로 향했다.
가족 중 아빠와 연락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빠는 신세한탄을 내게 쏟아내셨다. 뭐 딸 입장에서 아빠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술을 드시면 정도가 심해지신다는 점이다. 평소에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편인데 술이 들어가면 더 과해졌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이 알코올의 힘을 빌려 쏟아내셨다. 몇 년 전 동생이 아빠의 연락을 차단하면서부터 아빠의 술주정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동생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내 귀로 들어왔다. 동생과 아빠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내 잘못은 아니지만 뒷감당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달래줄 겸 신랑은 외식을 제안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와 감자튀김, 치킨을 시키고 맥주를 주문했다. 입맛도 없어 맥주만 홀짝이는데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칭얼대자 신랑이 서비스로 나오는 뻥튀기를 가지고 아이들과 놀았다. 아이들이 입을 벌리면 맞은편에 앉은 신랑이 뻥튀기를 아이들 입 속으로 던져주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두 딸들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장난기 많은 애들 아빠는 아이들과 티키타카하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웃고 있는 딸내미들을 보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와 같은 나이였던 5학년 때 나는 아빠가 술 드시고 오는 날이면 불안했다. 두 손 가득 맛있는 간식을 사 와도 좋지 않았다. 잠든 척하는 나를 끝까지 깨우는 것도 싫었고 매번 엄마와 싸우는 소리도 무서웠다. 차라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엄마 아빠가 맥주 한두 잔을 마시는 내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아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아빠는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술과 자신에게 관대했다. 술 취해서 가족을 힘들게 한 일은 '애정'으로 포장했고 사람이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죽하면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다짐 했을까. (다행히 신랑은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고 설령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이면 조용히 잠을 청하는 스타일이라 요란하게 부부 싸움한 적은 아직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