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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Dec 13. 2023

아빠한테 잘해야 한다.

  엄마 아빠는 자주 싸우셨다. 오죽하면 내가 5학년일 때 '이혼을 하세요. 전 고아원에 들어갈게요.' 라는 말을 했겠는가.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딸내미에게 훈계를 들어야 하나며 헛웃음을 지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아빠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좋아도 무를 정도로 좋은 것이 문제였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는 단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니 일을 핑계로 늘 사람들을 만났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원래 일이 그렇다면서 술자리를 더 자주 가졌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난 만큼 일도 늘어나야 하는데 아빠의 사업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아빠의 회사는 부도를 맞았고 드라마에서 본 빨간딱지까지는 아니어도 몇 달간 아빠는 집에 오시지 못했다. 피아노와 침대, 책상가 있던 나만의 방은 친척 집으로 흩어지고 외할머니 댁 방 한 칸을 빌려 엄마와 여동생 함께 지냈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동생은 학교에서 안 하던 짓을 했고 난 엄마의 하소연 담당이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변함없으셨다. 여전히 술을 즐겼으며 일을 시작하셔도 오래가지 못했다. 평소 타인에게 싫은 소리 못하던 아빠는 술 한잔 걸치시면 용기를 얻어서인지 목소리도 커지고 화도 자주 내었다. 엄마의 잔소리에 적당히 넘어가는 분이 술이 들어가면 했던 말씀을 계속 반복했다. 엄마는 진저리 치며 화를 냈고 나와 여동생은 취한 아빠를 달래어 더 큰 화가 나지 않도록 아빠를 재우는 일을 했다. 평소에 딸바보처럼 애정이 가득했지만 술 취한 아빠는 나를 너무 괴롭혔다. 다음 날 술 깬 아빠에게 항의를 해도 다 애정의 표현이라며 웃으셨지만 그런 애정은 받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가장이라고 배웠지만 내 눈에는 엄마가 가장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가장인데 당시 엄마는 가게 일 뿐 아니라 건물 청소까지 하셨다. 게다가 집안일도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잠자는 시간도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엄마는 자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으로 얼마 뒤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열었다.


음식 솜씨 좋은 엄마 덕분에 가게는 좀 더 크고 깨끗한 건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엄마가 가장처럼 느껴졌다. 저녁 장사 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아빠는 주변 가게 사장님을 핑계로 자주 사라졌다. 그 탓에 엄마는 아빠의 몫까지 배로 일하고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가게 청소를 도왔다. 타고나길 몸이 약했던 엄마는 정말 이를 악물며 살았다. 하지만 사람의 체력에 한계가 있지 않은가. 결국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탈이 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과 남편은 결국 엄마를 주저앉도록 만들었다.


엄마가 갖는 아빠에 대한 원망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합당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향할 분노를 우리에게 쏟아냈다. 아빠에 대한 비난은 확대되어 자식들에 대한 흉으로 번지기 마련이었다.


"너도 아빠랑 똑같아."

"지 아비를 닮아서 끈기가 없어."

"아유 답답하다."


빠르고 야무진 동생과 달리 아빠를 닮아 흐리멍덩 한 나는 엄마의 날카로운 공격에도 대응할 수가 없었다. 나까지 반항하면 엄마가 버틸 힘이 없을 것 같았다. 아빠 사업이 힘들 때 엄마를 잃을 뻔했다. 그 탓인지 엄마의 말을 거역하기 어렵다. (결혼한 지 14년 차에 10대인 딸을 키우는 지금도 엄마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말 한마디에 신경을 쓰게 된다.)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것이 힘들어서 집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심한데 돈도 없어 시도조차 못했다.(내 동생은 시도라도 해봤다.) 중고등 시절을 이렇게 반복해서 사니 아빠가 미웠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긴 했지만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어렸던 나조차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아빠가 나를 때리거나 바람이 나서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웠다. 그 핑계로라도 선을 긋고 싶었다.  그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렇게 아빠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면서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네는 아빠한테 잘해야 해. 아빠가 너희들에게는 진짜 잘했어."


우리가 어릴 때 술 먹고 새벽에 들어와도 너희들이 놀아달라고 아빠를 깨우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함께 외출하거나 놀아줬다는 이유였다. 잊을만하면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은 나에게 인이 박혔다. 아니 그런데 주말에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라면 응당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여전히 나는 어린 시절에 멈춰있는 게 분명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당시에 상처받았던 아이가 툭 튀어나와 유치한 감정만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풀어내야 했다. 그래야 치유도 가능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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