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움 Dec 20. 2023

혼란스러운 나를 발견하다.

마음으로는 알겠는데 행동으로는 왜 이렇게 안되는지.

  아이를 키우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육아에 대한 지식은 없었던 것이다. 첫 아이를 낳은 후 초유가 흘러나오는데도 그것을 유축하거나 아이에게 먹여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초유는 출산 후 약 5일 정도 나오는 모유로 아이의 두뇌와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인자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제왕절개로 움직임이 힘들어 수유패드만 갈 뿐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이가 먹지 못한 모유를 빼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보다 약 두 달 먼저 출산한 친구가 입원 4일 차에 찾아와 모유 때문에 젖은 병원복을 보고서는 말해줬다. 그제야 간호사에게 유축기 대여를 요구했다.


  두 돌이 지나면서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밥을 먹는 태도부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행동 등을 가르칠게 수백 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맞게 가르치는 것인지 또는 과하게 통제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이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내가 친구 엄마에 비해 아이에게 제제하는 행동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엄마는 식당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험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지만 아이의 행동에 조금은 자율성을 주었던 반면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발도 흔들면 안 되고 쩝쩝 소리를 내거나 밥을 먹을 때 장난치지 못하게 하는 나를 발견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자율성을 주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아이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머리로는 내가 배운 대로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이게 맞을까?'라는 물음표가 꾸준히 그려졌다. 혼자 고민만 하다가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나의 이야기를 듣던 언니는 내가 겪는 혼란스러움이 어릴 때 내가 받아왔던 훈육방법을 스스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가 햇살이라면 엄마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니?"

"어?"

"네가 딸이라고 가정했을 때 엄마가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그대로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


 엄마는 엄격했고 기준이 높은 사람이었다. 초등 4, 5학년 때부터 새벽 6시 이전에 깨워 아파트 뒷산을 오르게 했고 아침 수영반을 등록해 운동시킬 정도로 엄마는 근면 성실을 강조했다. 반항 한 번 할만한 데 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의견을 말해도 말대꾸한다며 혼나기 일쑤였고 혹여 엄마가 화를 내면 그 여파가 온 가족에게 끼치는 파장이 컸기에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눈에 나는 늘 덜렁대고 칠칠맞은 아이였다. 예민하고 민첩했던 동생에 비해 당연히 야단맞을 일도 많았다. 


늘 정직과 겸손을 강조했던 엄마는 칭찬에도 인색했다. 커서 엄마에게 왜 칭찬해주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자만하게 될까 봐.'라는 답변이 돌아왔을 때 얼마나 허탈하던지. 아무튼 엄격했던 엄마의 행동 기준은 나를 힘들게 했고 자식을 낳은 어른이 되어도 영향을 끼쳤다. 아이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친정 엄마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 03화 아빠한테 잘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