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번 만화책 데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놀던 경험

by 샌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던 아이들은 한글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보기 시작했다.

세상 순수한 그림과 글이 있는 책을, 세상 순수한 마음으로 보던 아이들은 어느 날 학습만화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만화책을 학교에 갖고 와서 보는 친구들도 있고, 어린이도서관에 가보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대체로 학습만화이므로...


마법천자문을 시작으로 만화책에 입문을 한 아이들은(특히 아들은) 다른 책 보다 만화책을 우선해서 보기 시작했다. 짧은 문구와 의성어, 의태어로 가득한 만화책보다는 긴 호흡의 동화책에 흥미를 가졌으면 하는 건 엄마의 바람일 뿐이었다.


주변에 만화책에 대한 의견은 다 달랐다.

'만화책도 책이다'. '학습만화이므로 도움이 많이 된다', '만화책이라도 읽어주면 고맙다'라는 엄마들은 만화책을 전집으로 구비해서 집에 들여주기도 했다.

반면에 '만화책은 최대한 나중에..', '아무리 학습만화라도 만화는 만화'라는 엄마들은 굳이 집에 들여놓지 않았다.


나는 후자의 의견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화책을 볼 때 너무 재미있어해서 무턱대고 못 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한 규칙이 "만화책 데이"다.

한 달에 한번, 마지막주 주말. 하루 종일 만화책만 읽어도 되는 날이다.

첫째, 둘째가 초등학교 2~5학년이었을 때 한 2년 정도 했던 것 같다. (2년 정도하고 끝난 이유는 도서관에 있는 학습 만화책을 거의 다 읽었기 때문이다)

만화책 데이에는 아이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 갈 준비를 했다. 도서관 문 여는 시간부터 문 닫을 때까지 온종일 만화책을 실컷 봤다. 중간에 밥 먹으러 나갔다 오는 시간 빼고.


그리고 도서관 시간이 끝나면 만화책을 20권 빌려와 집에 와서 무한반복으로 읽었다. 1명당 5권씩 빌릴 수 있었는데 우리는 4인 가족이었으므로 4명의 대출증을 총동원하여 20권을 빌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지낼 수 있었던 데에는 집 주변에 좋은 도서관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

당시에는 제주도 서귀포에 살고 있었는데, 근처에 시설 좋고 쾌적한 어린이 도서관이 참 많았다. 더구나 서울에 비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인구가 적어서 전세 낸 듯 이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한 달에 한번 있는 날이라서 그랬는지 만화책을 쉬지 않고 읽어댔다. 이런 집중력을 보니 동화책데이를 정할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이게 통할리는 없었겠지만)

하루에 전집을 다 끝낸 날도 있고, 여러 번 읽은 책도 있었다. 마법천자문, 삼국지, 그리스로마신화, 와이, 하우 등등 나중에는 영어문법을 만화책으로 풀어낸 책까지 섭렵했다. 1년 정도 그런 날들을 보냈을까.

주변 도서관 4-5군데를 돌며 만화책 데이를 보내더니 이제 읽을 만화책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이들은 더 이상 만화책에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가끔 이야기한다.

그때 만화책데이 참 재미있었다고.

지금 남는 기억은 그때 읽었던 만화책이 재미있었던 것보다 엄마 아빠랑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 읽고, 낮잠도 자고?, 도시락 먹고, 집에 만화책 잔뜩 빌려와서 늦은 시간까지 읽었던 그 경험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아이들의 요청으로 한 달에 한번 '게임 데이'를 만들기도 했었다. 치킨, 피자, 떡볶이 등을 시켜 먹으며 게임과 폰을 실컷 해도 되는 날이다. 그런데 이건 두 번만에 폐지했다. 부작용이 너무 컸다. 게임과 폰은 한번 그렇게 시작하니 끝내지를 못했고 먹는 시간도 아까운지 식사도 제대로 안 하려고 했다.

혹시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명심하시라. 스마트폰은 조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실컷 했다고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아이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직접 겪어보니 안 좋은 점이 많은 건 확실하다.


'만화책 데이'만 좋은 추억이던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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