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닿고 싶어.
"야, 너 진짜 은결이랑 사귀는 거 아니야?"
하연은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예진은 재밌는 농담처럼 말을 흘렸지만, 눈빛엔 날이 서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냥 연습 맞추는 거지. 대회 얼마 안 남았잖아."
하연은 웃어넘기려 했다.
"흠~ 근데 너 원래 그렇게 티 안 내잖아. 요즘 좀 다르다?"
"어휴, 왜 다들 그렇게 과몰입이야. 연습 맞추는 것도 범죄냐?"
"하긴, 은결이 멋있긴 하지. 묘하게 분위기도 있고. 그런데, 너랑 같이 있는 거, 좀 의외긴 해. 하필 왜 너야?"
"왜, 나는 별로야? 은결이랑 어울리면 안 될 정도로?" 하연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예진을 장난스레 흘겼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그냥 네가 남자애랑 그렇게 붙어 있는 게 처음이니까... 뭐 좀 신선하달까? 은결이도 그렇고..."
당황한 예진이 손사래를 치며 변명을 늘어놨다.
"뭘 그리 또 열심히 변명을 하시나. 나도 농담이야."
예진의 등을 팡팡 두두리며 웃음을 터트린 하연의 안에서 무언가 작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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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연습실로 가던 하연은 학교 계단 아래서 서 있는 은결을 봤다.
혼자 벽에 기대어, 이어폰을 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눈빛은 멀리 어디론가 빠져 있었고, 손에는 악보가 아닌 수학 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하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은 평소 연습실에서 보던 은결과 조금 달랐다.
마치, 자기 자신과 말없이 싸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끌었다.
그래서일까, 마음 한쪽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을, 자신만 본 것 같은 기분.
그건, 묘하게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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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 문을 열었을 때, 은결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하연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늦었네?"
"..... 너 보다가 좀..."
"보다가?"
"응. 계단 아래. 너."
은결은 살짝 눈을 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들켰네.
하연은 웃었다. 그리고 둘은 별말 없이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연주는 자꾸 어긋났다. 활을 쥔 하연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 탓이었다.
'너랑 있으니까 좀... 의외긴 해.'
예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자신이 거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문득 확신이 흔들렸다. 은결은 하연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말수가 줄었고, 그날의 합주는 유난히 조용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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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은결은 책상에 앉아 아무것도 쓰지 않은 노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울렸다.
- 넌 음악으로 뭐가 되겠니.
엄마의 빈정이던 목소리 위로 하연의 얼굴이 겹쳐졌다. 창문 옆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눈빛. 살짝 틀린 음에 웃던 얼굴.
'..... 너 보다가 좀...'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들켜도 괜찮다고 느꼈다. 그게 하연이라서, 더 그랬다.
"나는..." 은결은 조용히 읊조렸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말을 스스로도 믿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