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은결이랑 요즘 자주 붙어 다닌다?”
쉬는 시간.
친구 예진이 하연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목소리는 가볍지만, 눈빛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장난 같으면서도—어디까지가 농담인지 모를, 그 애 특유의 말투.
하연은 물병을 열며 웃었다
“요즘 연습 많잖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말끝을 대충 흐리며 마셨다. 거짓은 아니었다. 전부 진심도 아니었지만.
“근데 말투가 좀 이상한데? 너 원래 거짓말 잘 못하잖아.”
하연은 웃었다. 말로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지만, 그 웃음 안쪽에서 작은 멈칫거림이 있었던 걸 예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언제 못 했어. 네 생일 케이크 맛있다 그랬던 거, 그거 진심 아니었는데?”
“헐, 진짜 나빴네—”
예진이 웃자, 하연도 함께 웃었다. 웃음은 가벼웠고, 분위기는 여전했다. 다만, 입안에 잠깐 남는 묘한 뒷맛 같은 게 하연의 마음 어디쯤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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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합주실.
하연은 은결 앞에 앉았지만, 시선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렀다. 창밖, 복도, 스치는 그림자.
누가 뭐라고 한 건 아닌데..... 누군가 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은결은 그런 하연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악보를 넘기고 튜닝을 했다. 그 모습이 평소 같았다면 마음이 놓였겠지만, 오늘은 그 조차 불편했다.
“은결아.”
하연이 말을 꺼냈다.
“응?”
“혹시… 우리, 너무 자주 붙어 다니는 것처럼 보일까?”
은결은 고개를 들며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인지 한 박자 늦게 이해한 듯한 표정.
“왜? 누가 뭐라 그래?”
“아니. 그냥 다들 좀 묘하게 보는 것 같아서.”
하연은 시선을 피하며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가 힘들었다
은결은 말없이 현을 조율하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하연을 바라봤다.
“신경 써야 해?”
그 단순한 반문에, 하연은 웃을 뻔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부럽게 느껴졌다.
“… 아니. 그냥 좀 그런가 싶어서.”
은결은 조용히 웃었다. 자주 보지 못한 미소였다. 하지만 하연은 그 미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좋았는데.”
그 말이 툭—하고 떨어졌을 때, 하연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봤다. 입 안에서 말이 잠시 맴돌다.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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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하연은 휴대폰을 켰다.
메모장에 짧게 남겼다.
-걔 웃으면 진짜 좀… 반칙임.
그 웃음이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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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연습실을 나간 뒤에도, 은결은 한참 동안 첼로를 닦고 있었다. 닦을 만큼 닦았는데도, 손은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하연이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말투도, 눈빛도, 자꾸만 어디쯤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그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익숙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나누던 시간들이 오늘은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해서, 괜히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혹시 우리가 너무 자주 붙어 다니는 것처럼 보일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은 좋았는데. 그저 함께 있는 게 편했고, 하연 옆에 있을 땐 시간도 연습도 조금 더 가벼웠다. 그게 단지 음악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은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을 하연도 같은 무게로 느끼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좋았는데.’
그 말은, 은결 나름의 조심스러운 고백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꺼낸, 작고 조용한 용기.
그런데도 그 말을 꺼낸 이후의 하연은 전보다 더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거리감이 생기는 듯한. 마치 어디까지 다가가도 괜찮을지 하연 자신도 잘 모르는 것처럼.
창밖 어딘가에서 바람이 스쳤다. 은결은 조용히 첼로를 눕혔다.
말로는 다 닿지 않는 마음이 활 끝에, 손끝에, 잔잔하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