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말이 많은 편이다. 반대로 나는 말하기보단 잘 들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말문이 트이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 한 번은 밥 먹다가 아이들이
"전세계에서 누가 제일 부자에요?"
라는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과거 기록에 남아있는 사람 중 가장 부자였던 사람은 아프리카에 살던 누구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이 왜 가장 부자인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역사 이야기까지 줄줄이 흘러나온다. 이야기 끝에 가서는 세계 지도를 보면서 마무리까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혹시라도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아빠의 이런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역사, 전쟁, 과학, 설화, 신화, 심지어 다양한 장례 문화 이야기까지 나온다. '장자의 호접몽' 같은 철학적 우화부터 '인디언은 미국에 사는데 왜 인디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같은 흥미로운 배경지식까지. 가끔은 나도 모르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들이 무작정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하면 남편은 "갑자기 그러면 생각이 안 난다"고, "이야기의 실마리를 줘야한다"고 해버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빠를 잘 건드려야 한다고 머리를 굴리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엽다.
또 한 번은 아이들 재우고 밤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다가 문득
"내가 사과를 사려고 보니까 가격이 장난 아니게 올랐더라! 그래서 못 샀지 뭐야?"
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1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났는지,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안 좋아지면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들어야 했다. 나는 이미 사과값 이야기를 꺼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가끔은 자려고 누워 불을 껐는데 강의 모드로 전환돼서, 졸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많다.
남편은 책도 많이 읽어서 종교, 역사, 철학, 과학 관련 지식이 무궁무진한 사람이라 작정하고 이야기하면 몇 시간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남편과 관심사도 많이 다르고 그 쪽 분야는 잘 모를 때가 많다. 남편은 사자성어나 역사에 대해 '당연히' 알거라는 전제를 하고 이야기하다가 내가 눈빛이 흐려지면
"이걸 모른다고??"
하면서 그 배경부터 설명해주느라 또 최소 한 시간은 순삭된다. 문제는 그 이야기들은 내 머릿속에 잘 남아있지 않는다는거다. 어떤 건 예전에 몇 번은 설명해줬던 내용이라고 한다…(머쓱)
결론, 그의 말문은 조심해서 건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