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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터바다 Oct 24. 2021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이유

모성애 없는 상담사의 공동육아 이야기

난 첫 아이를 조산원에서 낳았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니 의아할지 모르겠다. 결혼까지는 내 선택이었는데 임신에 대해선 모호하다. 가임기 여성이 결혼했으니 임신은 당연한가? 당연히 우리 부부도 가족계획이란 걸 했다. 남편은 아이 낳지 말고 우리끼리 살길 원했고 난 낳는다면 둘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합의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아이가 우릴 찾아왔다. 부모는 아이를 자신들이 선택한다고 여기지만 실은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부부가 난임으로 힘들어하고, 또 어떤 부부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힘들어하지 않는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하다 여기는 임신과 출산, 육아도 그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일 수 있다.     


현재 두 아이의 부모로서 준비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얘기한다는 게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 관한 계획에서는 오로지 책임과 의무만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첫 아이는 준비되지 않는 부모를 찾아왔다. 너무 감격스러웠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출산과 육아는 현실이었으니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기로 하면서 현실을 즉시 했다. 내가 정말 아는 게 없다는 것을. 일반적으로야 산부인과 병원 다니며 각종 검진을 받아 10개월을 채우면 아이가 태어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근데 정말 그게 전부인가?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20대에 상담 공부를 하며 막연히 임신과 출산의 주체자인 엄마와 아이가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가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게 내 현실이 되고 보니 공부가 필요했다.





          

첫아이의 출산은 모든 부모에게 가슴 벅찬 일이면서 동시에 참 두려운 일이다. 언제 아이가 나올지 알 수 없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 긴장하는 탓이다. 특히 산모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자신의 몸에서 경험해야 하니 아이를 만난다는 기쁨 이전에 두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도 그랬다.          

사실 난 그 두려움 때문에 조산원에서의 분만을 택했다. 기존의 병원에서의 분만 시스템은 전적으로 의사의 편의에 맞춰져 있다. 특히 분만 자세는 의사가 앉아서 아이를 받기에 가장 최적화된 형태이다. 그 말은 산모에게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말과 같다.          

병원에서는 산통을 겪을 때 침대 위에 누워 있다 보니 스스로 자세를 바꿔가며 통증을 완화하기 어렵다. 특히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무통 주사는 자연분만에는 오히려 역효과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이가 산도를 통해 나오려면 엄마가 힘을 주며 함께 도와야 한다. 그때 따르는 고통을 완화한다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분만 후 가장 힘든 게 회음부 절개로 인한 고통이다. 모든 산모가 그 고통 때문에 출산 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사실 그것도 병원에서는 인위적으로 하는 처치다. 칼로 베인 상처는 원래 자연적으로 찢어진 상처보다 더 빨리 아물기가 어렵다.          






마지막 출산 정기검진을 병원에서 마치고 이미 예약해 두었던 조산원 검진을 했다. 아직 아이가 내려와 있지 않으니 좀 더 많이 움직이면 좋겠단다. 특히 쪼그려서 앉아 물걸레질을 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옛 어른들의 지혜이기도 하다. 아이를 맞이할 준비도 할 겸 청소하며 분주히 보냈던 그 주 주말 새벽 출산 임박을 알리는 이슬이 비쳤다. 서둘러 준비해둔 가방을 들고 우선 검진을 받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벌써 진행이 시작되었고 양수도 곧 터질 것 같다고 바로 입원을 하잔다. 조산원에 전화를 했다. 조산원이 수도권에 몇 군데 없다 보니 거리가 멀었고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게 걱정이 되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란다. 병원 간호사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하고 서둘러 조산원을 향했다. 다행히 새벽 시간이라 차는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차 안에서 양수가 터진 상태라 수중분만은 의미가 없었다.          


남편과 함께 아늑한 온돌방에 들어서자 오는 동안의 긴장이 풀리며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곤 긴장감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의 빈도는 빨라졌고 나중엔 엎드리기도 버거울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내가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웅크리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니 견딜만했다. 분만 직전까지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진통과 함께 아이를 낳았다. 정말 하늘이 노랗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다.          

탯줄을 자르기 전에 먼저 아이를 가슴에 안고 인사를 한다. 그 순간 시간도 공간도 멈춘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아이가 가파른 호흡을 내뱉는다. 얼마나 애썼을까. 아이의 고통이 엄마의 고통에 10배라지 않던가. 기특하고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순둥아 엄마야.... 반가워. 고생했어. 고마워.”          


갑자기 조산사가 분주하다. 아이의 호흡이 불안정하단다. 출산 과정에서 태변을 먹은 것 같다며 산소기를 아이에게 가져다 둔다. 다행히 호흡은 안정을 찾았고 아이와 함께 지낼 세 가족이 방으로 옮겨졌다.     





     

모유 수유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았기에 아이와 2주를 더 머물며 산후조리를 했다. 내가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아이 여럿이 태어났지만 한 번도 산모의 신음 소리나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산모에게는 진통할 때 소리를 내면 아이에게 가야 할 산소가 부족하니 가능하면 깊은숨 쉬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안내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산과 함께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없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첫 폐호흡을 돕기 위해 울도록 하지만 조산원에서는 굳이 아이를 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탯줄을 자르기 전에 충분히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가능한 아이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충격을 덜 받도록 하는 배려다.          


그 배려는 은은한 조명에서부터 작은 손길에까지 아이와 산모에게 맞춰져 있었다. 경험 많은 조산사에 대한 믿음과 집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남편이 모든 과정에 함께 하고 있기에 가능한 환경이었다.          

사실 모든 출산 과정은 아이와 산모에게 맞춰져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임신과 출산은 병을 치료하는 과정이 아니다. 의사보다는 아이와 산모가 주체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산모와 아이는 모두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 그 외의 조치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한 준비일 뿐이다.          






실제 둘째는 태반이 자궁경관을 일부 덮고 있는 전치태반이었다. 자연분만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일반 산부인과에서도 종합병원으로 의뢰를 해야만 했다. 이런 경우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현대 의학 기술이 감사할 뿐이다.          


본의 아니게 난 양극의 출산 경험을 했다. 대학병원은 마취도 전신마취를 하지 않았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 경험을 했다. 이 경우는 산모이기 이전에 환자이니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도 안아 볼 수 없었고, 둘째도 폐호흡에 문제가 있어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1주일을 꼬박 보내야 했다. 다행히 금방 회복이 되었지만 일단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검사를 해야 하니 태어나자마자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지만 건강히 회복되어 함께 퇴원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마음만으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부모로서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이랬으면 더 나았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자식에 관한 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할 때가 과연 올까 싶기도 하다.     


다만 아이가 독립하기 전까지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행여 결과가 좋지 못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누구의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단 한순간도 내 삶을, 그리고 아이의 삶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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