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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21. 2024

친절은 돈 주고 사는거야

가식이 뭐가 나쁜데요

아이의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굉장히 친절한 분이셨다. 하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갈때면 온 몸으로 아이를 꽉 안아주시며 온갖 칭찬과 사랑이 듬뿍 담긴 말을 해주시곤했다. 유치원 선생님 특유의 애교라고 해야할까, 아이들을 정말 이뻐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는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원에 있는 동안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CCTV도 없고 제대로 확인할 길은 없다. 등하원 시간이나 가끔 상담 전화를 할 때 빼고는 유치원 선생님을 직접 접할기회는 전무했다. 특히나 코로나 시기라 더더욱 대면하기 힘든 시기였다.


상담전화를 할 때에도 아이의 특징과 행동양식에 대해서 아주 소상히 알고 계셨고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한번 통화하면 핸드폰이 뜨거워질때까지 이야기가 이어졌고 나중에 내가 제풀에 지쳐 끊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길었다.


하루종일 근무하고 피곤하실텐데도 그런 열정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고,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서 아이가 한 말과 행동을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모든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선생님이 등하원 때 잠깐씩 보여주는 아이를 향한 제스쳐는 너무나 애정과 사랑이 넘쳤기 때문에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마음이 무척 편했다.



그런데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런 나의 입장과는 조금 상반된 평판이 퍼지고 있다는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에 대해 "굉장히 가식적이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같은 말과 행동도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 아이에게만 그런 애정어린 표현을 한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도 안아주거나 쓰다듬거나 사랑해하는 식으로 적극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았는데, 다른 엄마들은 그 모습을 별로 탐탁지 않게 느낀 것이다.



왜 그걸 가식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선생님을 다시 보니, 약간은 가식적이라는 느낌도 들긴 했다. 가식 프레임을 가지고 바라보니, 내 눈에도 그렇게 비친거겠지만.



처음에는 나도 동네 엄마들 의견에 살짝 휘둘렸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게 가식이면 좀 어때?



요즘같은 세상에 가식이라도 아이를 예뻐해주고 한 번 더 와서 쓰다듬어주는 표현은 귀찮으면 안 할수도 있고 굳이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공립유치원이었기에 선생님께서 원장의 눈치(?)를 봐야하는 지위도 아니었다. 부모 앞이라서 좀 더 과하게 표현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적극적인 행동 자체를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점수를 더 받으려고 가식적으로 한 행동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가식적으로 행동하는것도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로하는 일이다.



마음에 없어도 좀 더 친절한 목소리로, 사랑스러운 눈빛을 담아서 아이를 예뻐하는 일은 한 두명도 아니고 이십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하자면 보통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니다. 나라면 피곤해서라도 왠만하면 피했을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애들 데리고 수업하고 뒤치닥꺼리 하느라 피곤하고 지친상태임에도 그런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것은 설령 그게 가식이라고 해도 부모님이라면 되려 감사할 일이 아닐까.



가식이라는 말이 조금 어패가 있긴 하지만 조금은 과한 친절이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 하다.


우리는 친절함을 상당히 중시한다.

아이들도 학기초에 어떤 선생님을 만나고 싶느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친절한 선생님을 원한다고 대답한다.

관공서에 일을 보러 갔을 때도 공무원이 친절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편하고 안락한 서비스 뿐만 아니라 좀 더 친절함을 느끼기 위해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

동네 소아과 병원도 엄마들 사이에서 중요한 평판 중 하나가 어느 원장님이 더 친절한가 아닌가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처방약 쓰는거야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쉽게 그 친절함을 구매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다니는 발달치료센터 중에서도 가장 치료비가 비싸고 시설이 넓고 쾌적한 곳의 선생님들이 제일 친절하다. 그 곳에 들어갈 때면 늘 선생님들께서 웃으며 환대하고, 마치 내 아이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으로 아이를 응대해준다.



적은 돈이 아니라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센터인데 이토록 친절하고 갈 때마다 기분 좋게 대접받는 느낌이라 쉽사리 그만두고 싶지가 않다. 치료 경과나 발달 상황과는 별개로 그냥 아이에게 이 친절함을 보여주는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아이도 나와 마음이 통했는지, 상당히 긴 시간의 치료를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이 센터에 가자고 하면 한 번도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고 가서도 열심히 임하는 편이다.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눈 마주치고 열심히 들어주신다. ADHD 특징 중 하나인 언어충동성이 있어서 굳이 해도 되지 않을 쓸데없는 말들까지 사설을 늘어놓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걸 다 집중해서 들어준다.



센터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내가 해야할 일인데 사실 아이 얘기 좀 들어주는게 뭐가 힘드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것도 한두번이지 하루종일 비슷한 얘기 계속 반복하는걸 듣고 있자면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다.



남편에게 이 센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비싼값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제는 치료 효과보다도 이 친절함에 중독되서 계속 다니고 싶은 것이다.

아무래도 이걸 노리고 센터 선생님들이 다 교육을 따로 받아서 친절한걸지도 모르겠다.



친절함을 누리자면 돈이 필수가 되버린 세상이다.


그런데 아이가 다녔던 유치원의 선생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가식적이라 느낄 정도로 친절함을 보여주셨다.

설령 그게 가식이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동네엄마들의 지배적인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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