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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22. 2024

낯선 타인에게서 더 큰 위로를 받다

가족보다도 더

근 며칠간 제정신이 아닌채로 지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터져나오고 심장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무래도 다음 아이 병원 정기 진료 때 나도 같이 진료받고 약처방을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약없이 버티는게 내 목표였다. 약없이 버티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제는 그만 받아들이련다. 그래, 내가 졌다.


블로그에 최근에 겪었던 아이의 어려움을 상세히 썼다. 머리가 아프고 두통이 와서 뭔가를 쓴다는 것도 세상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둬야 이 엉망진창 대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뒤엉킨 실타래같은 현실이 조금은 정리가 된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제 3자의 입장에서 약간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되고, 허접하지만 나름의 해결책도 내리게 된다.


생각나는대로, 떠오르는대로 지금의 힘든점을 써서 올렸다. 각자 남다른 자녀를 키우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엄마들과 댓글로 소통하면서 지내왔다. 이웃수가 무색할정도로 찐으로 소통하는 이웃은 다섯손가락 내에 꼽히지만 그래도 소중하다.


그 중 한 분이 써준 댓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욱,하고 목이 메어와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두서없는 엉터리같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아이에 대해 걱정되는 점을 써서 되는 대로 올린 내 글에 정말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본인 자녀를 키웠던 경험과 느낀 점을 바탕으로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위로와 해결책을 나에게 선물처럼 전해주었다. 에이포 용지 한 장과 같은 분량의 그 정성스런 댓글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지금 나에게 이렇게 큰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아예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그 분도 나름대로 남다른 발달의 아이를 키우면서 고생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 육아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는 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 일단 발달문제를 가진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도 별로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또래 센터 다니는 엄마들이고 서로 증상이 상당히 달라서 각자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에게서 받은 위로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서 오전 나절을 그 댓글만 반복해서 읽으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의 저자 최인아님의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최인아님도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와서 인도인가 산티아고순례길인가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초대받은 가정집에서 너무 따뜻한 환대와 친절함에 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와 한참을 대성통곡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시원하게 낯선 타인 앞에서 한바탕 울고나니까 이상하게 마음 속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내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거다. 실제로는 단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그저 온라인에 올라온 글을 바탕으로 댓글 소통 몇 번 한것 밖에 없는 얄팍하고 피상적인 관계속에서 나는 가족도, 친정엄마에게서도 받기 힘든 위안을 받은 것이다.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에 대한 어려움도 이제 남편과만 상의하는 정도지 양가 가족들에게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상하게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위로받기보다 더 큰 불안감과 걱정만 전이 되버리고 남는건 공허함 뿐이랄까. 특히 시댁 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에게는 말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정도다. 늘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내가 이제 걱정거리가 없는데 너희 때문에 마음을 못 놓고 산다'는 말이라서 말미에는 내가 부모님께 되려 걱정마시라고 위로를 건네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따로 심리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우울증 진단을 받은것도 아니라 내키지도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소극적이지만 나 스스로 이런 저런 방법들을 시도해보면서 내 멘탈을 건강하게 관리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조차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불쑥불쑥 불안감이 찾아오면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모르겠다.


온라인 SNS 공간에서 맺어진 인연은 얕디 얕을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이번에 가장 큰 힘을 얻고 에너지를 받아서 그나마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직접적으로 맺고 있는 그 어떤 인연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하면, 나 좀 이상한 사람인가? 모르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블로그 이웃이지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라 오래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때로는 이런 식의 위로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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