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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08. 2024

너의 다름을 응원해,라는 개소리

비속어 사용 죄송합니다

내 SNS 알고리즘은 발달장애에 관한 주제 위주로 자꾸 뜬다. 그러니 도저히 클릭을 안하고 못 배기는 경우가 많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면서 키토식단까지 실천하고, 치료 과정과 방법론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올리는 어느 분의 글을 읽게 되었다.


나의 심금을 울리는 글귀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너의 특별함은 소중해


너의 다름을 응원해



따위의 말들 때문에 화가 나고 너무 너무 열받는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소중하고 뭘 응원한다는건지, 애 때문에 죽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정말 울컥한다고...

이런 허울 좋은 말들이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 마음을 두 번 죽이는 격이라고 했다.



왠지 그동안 올바른 소리, 옳은 말만 읊어대는 발달장애 관련 책들만 주로 읽던 나에게 그 어느 구절보다 사이다같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발달장애 서적에는, 책이라는 교양적인 수단 혹은 그에 준한 권위만큼이나 교과서적인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발달이슈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해야할 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 연령별로 해야하는 치료법들, 남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갖춰야할 소양 등.. 알아야할 것도 배워야할 것도 내 생활의 일부로 숙지하고 체화해야할 것도 급체를 불러일으킬만큼 넘쳐났다.


그리고 꼭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 마무리는 조금 남다른 우리 아이들이지만 응원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아름답게 끝이 나곤 한다. 순간적으로 홀려서 나도 긍정적인 위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한 스푼 추가된다. 물론 게중에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들도 있어서 간간이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 엄마의 말이 맞다.

대체 뭐가 소중하고 뭘 응원한다는 말인가.



최근의 소아정신과 분야 책을 보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신경다양성'이다.

토마스 암스트롱이라는 아주 유명한 양반이 한 말 같은데, 신경다양성이란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을 병리학적으로 볼게 아니라 그들의 차이를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강점과 재능에 집중하도록 하는 관점으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말은 참 좋다. 말 한 번 진짜 멋지긴 하다. 신경다양성이라는 말.


그런데, 이 말은 누가 과연 인정해주는걸까?


정상발달을 키우는 부모들 중에 신경다양성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라도 한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말은 그냥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를 위로하고 달래기 위한 이름만 공허한 개념이 아닐까?


어느 순간 '다양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추앙받고 아묻따 존중해야만 하는 영역의 것이 되었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배웠던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남과 내가 다르더라도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더라도 서로 다름을 존중해야한다는 그 개념. 우리는 서로 다 다르기에 더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라는 말.


신경발달이 일반적인 아동들과는 좀 다르게 어긋나서, 조금 특별한 남다름을 타고나게 된 아이들도 그저 다양성을 가진 존재라고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과연 구축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정신의학과 전문가들이 말하는 신경다양성에는 자폐스펙트럼, 틱, ADHD, 지적 경계 등이 있다. 소위 정신질환이라 불리는 질병이다. 자녀가 DSM-5에 수록된 정신의학적 진단을 받은 대부분의 부모는 그 때부터 센터 라이딩 인생이 시작된다. 센터란 인지치료, 언어치료, 심리상담, 모래놀이치료, 음악치료 등 발달이 느린 아동을 돕기 위한 아동발달심리인지센터의 줄임말이다.


정말로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그저 다양한 인간 군상의 하나라면, 다양한 성격적 특질 중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면 왜 장애 진단을 받아야하며, 수 많은 센터 치료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일퍼센트라도 더 정상발달 아동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부모의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야한다는 말인가.


MBC 라이프라는 채널에서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생활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부모 둘 중 한 명은 아이를 전담케어해야함은 당연하고 일주일 내내 타이트하게 짜여진 센터 치료 스케쥴을 데리고 다니는데에 시간과 돈을 쓰고 있었다.


어떤 집은 치료비만 평범한 직장인 월급만치 이삼백만원은 우습게 나간다고 했다. 그래도 대학병원 교수님께서 지금이 가장 치료 개입의 효과가 좋을 시기라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발달이 늦춰지지 않게 하려고 힘들지만 월급의 대부분을 아이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고, 일상에 짓눌려서 피곤에 지친 얼굴로 대답했다. 어떤 엄마는 얼마든지 아이를 위해 모든걸 쏟아부어도 좋으니 아이와 소통하고 싶다고, 엄마에 대한 애정을 말로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더이상 보기가 힘들어서 꺼버렸다.


다양성이라는 말도 이제는 좀 불편하다. 애초에 다양성이라는건 똑같은 눈높이라는, 동등한 지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생겨나야 하는 말이 아닐까. 처음부터 사람답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부재가 된 아이, 주변 사람들의 말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주의집중력이 결여된 아이, 아이큐가 낮아서 인지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그저 다양성이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은 물론이고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난 이 아이들을 위해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부모가 너무 나이 들어서 더 이상 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노인이 되더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시스템 말이다. 그런 사회적 체계가 완비된 세상은 유토피아에나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부족한 아이들까지 우리가 다 책임져야 하느냐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전적으로 이해한다.


치료받느라 고통받는 모든 아이들이 다음에는 자폐 스펙트럼도 ADHD도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바란다. 약물복용도, 센터치료도, 대학병원 진료도 받을 필요 없는 세상에 태어나서 제때에 언어도 습득하고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자기 감정 표현도 멋지게 하면서 그렇게 평범한 속에서 빛나면서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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