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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1. 2024

그래도 아빠가 있는 게 낫다

아이를 생각하면..

유치원 선생님은 나에게 아이를 데리고 외국에 가시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셨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상에서는 아이가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취지에서 하신 말씀이었다. 특수교육을 받을 만큼 많이 부족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일반 아이들과 섞여 있기에는 아이로서는 험난한 미래가 예상된다고 하셨다. 정말 아이를 많이 생각하고 걱정해서 하신 말씀임을 알기에 그땐 더 마음이 미어지게 아팠다.


선생님이 그런 제안을 하실 정도면, 아이의 기관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래들과의 소통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원어민보다야 훨씬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언어적 장벽이 덜하고, 큰 마음먹고 결단만 내리면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가서 특수 교육 자체가 더 세분화되어 있는 등 선진국이 여러모로 나으니 아이를 위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거다.


비록 초등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결단이란 걸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사립초, 대안초, 혁신초 사이에서 고민만 죽을 만큼 하다가 집 앞 일반초를 보내게 되었고 죽을 둥 살 둥 적응 중이다.



아직 해외라는 옵션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단 둘이 해외에 나가볼까 하는 꿈을 저버리지 못했다. 남자아이라 군대 문제도 있고 중증 장애가 아니면 요새는 다 현역으로 군대를 간다 하니 더 경악스러웠다. 그냥 체력만 좋다고 견뎌낼 수 있는 게 군대 문화가 아님을 익히 안다. 24시간 단체 생활을 장기간 해내려면 기본적인 사회성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몇 년간의 발달치료에도 아직 또래 수준에 미치기도 힘들다. 물론 아이 나름대로 성장은 하고 있지만 이런 성장속도라면 과연 스무 살이 되어 군대를 갈 나이가 된다고 해서 아이의 삶이 보통사람처럼 편해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남편은 어차피 같이 나가기 어려운 터라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간다면 나랑 단 둘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가끔 간다면 어느 나라로 얼마만의 기간만큼 나갈지 꿈꿔본다. 할 일이 없으면 검색창에 밴쿠버니 시드니니 유명한 이민 도시들을 검색해 보거나 adhd 아이를 위한 학교도 알아본다.


남편도 우리나라 교육 자체가 아이가 가진 타고난 특성과 증상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주변에 친구들 와이프도 몇 명 자녀 교육을 위해 해외로 나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아주 부정적인 입장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도 아니고, '애한테 좋으면 한 번 시도해 볼 만하지 뭐' 정도의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그런데 너 혼자 아이를 데리고 그 먼 타국에 가서 적응할 수 있겠냐고 나에게 묻는데,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애를 위해서 못할게 뭐 있어, 애만 좋아진다면 다 해봐야지.'라고.


이따금씩 상상해보곤 한다. 내가 아이를 혼자 데리고 해외에 나가 살면 어떻게 지내게 될지. 어떤 집에서 살면서 아이와 둘이서 어떤 일상을 꾸려나가야 할지 그려보는 것이다. 기왕이면 영어 습득을 위해 한국인이 너무 많지 않은 지역을 원하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학생 때 미국에서 길지 않은 연수기간에도 그새 향수병에 걸려서 주말이면 한인마트와 한인타운 식당을 찾아 헤매던 나다.


책임질 가족도 없이 자유의 몸이었음에도 타지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만약 아이를 데리고 남편도 없이 혼자서 나간다면 과연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내 삶에 좋은 변화가 될지도 몰라. 영어도 더 편하게 접할 수 있고 아이의 미래에도 더 나은 선택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너무 심심해할 것 같다는 거다. 여기서도 사회성 이슈가 있어서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고 제대로 친한 친구 하나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해외라고 애가 없는 사회성이 뚝딱 생기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초반에는 언어의 장벽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말도 정말 눈물 나게 어렵게 틔었는데 영어는 뭐 얼마나 쉽게 습득할 수 있겠는가. 언어 감각이 좋은 일반 아이도 힘들지 모르는데, 아직 언어치료까지 병행하는 애가 해외에 나가서 어떻게 편하게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상태에서 친구도 없이 오롯이 나와 둘이서만 보낼 시간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물론 아파트가 아닌 잔디가 깔린 마당에 이층 집안에서 뭔가 여유 넘치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지만, 미드에 흔히 나오는 그런 집은커녕 지금 집보다 못한 방하나 딸린 스튜디오 렌트 안에서 답답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럴 땐 차라리 남매나 형제라면 둘이 같이 의지하고 어울리면서 놀 수 있으니 외국에서 친구 못 사귀어도 좀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간 엄마를 유튜브에서 봤는데 그 집은 쌍둥이다. 다행히도 쌍둥이 중 한 명은 정상발달이라서 자폐가 있는 쌍둥이 자매의 플레이메이트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아빠 없이 해외에 거주하는 어떤 블로거도 비슷한 또래의 아들 둘이라서 어딜 가든 둘이 같이 많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일가친척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아이랑 나랑 단둘이 불굴의 의지만 가지고 해외에 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 한편에 품은 불가능한 꿈 정도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 그 꿈을 불식시켜 줄 만한 현상이 우리 집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아이가 아빠 퇴근 시간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남편은 보통 직장인들보다 퇴근 시간이 늦은 편이다. 뒤늦게 집에 와서 급하게 고픈 배를 채우고 씻고 나면 금방 잘 시간이 된다. 애가 어렸을 때는 이보다 더 늦게 퇴근한 적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스케줄 속에서 아이가 아빠랑 살 비비며 놀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이가 처음 소아정신과를 가고 각종 검사를 하고 발달 문제를 인지하게 되면서 아빠와의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부랴부랴 아빠의 육아참여를 늘려보고자 부단히 애를 썼지만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었다.


퇴근해서 아이와 삼십 분 정도는 놀 시간적 여유가 된다 쳐도 문제는 아빠의 체력이었다. 일터에서 녹초가 될 대로 된 상태에서 집에 온 아빠는 아이와 노는 법도 잘 몰랐고, 어떻게 영유아 아이와 놀아야 재밌는 지도 잘 몰랐다. 옆에서 나는 꾸준히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법을 책과 미디어에서 자료를 찾아 남편에게 공유했다. 남편이 기분 나빠할까 봐 최대한 가르치는 느낌이 안 나도록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야기해 준다는 뉘앙스를 띄려고 신경 썼다.


왜 티브이에 나온 아빠들처럼, 외국의 아빠들처럼 우리나라 아빠들은 자녀와 노는 걸 어색해할까 근본적인 의문도 들었다. 남편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는데, 애정표현은 무언가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준다거나 가끔 좋은 여행지에 데리고 간다든가 하는 식이었지 같이 부대끼며 놀 줄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보드게임도 사고, 아이와 할 수 있는 몸놀이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늘 아이와 놀아야 하는 사람은 주로 엄마인 나였다. 한창 사회성이 발달되어 또래와 함께 노는데에서 더 즐거움을 느껴야 할 시기에도, 아이는 아직 그게 너무 어려웠기에 내가 놀이 대상이 되어주어야만 했다. 휴직하고부터는 정말 부단히 내 한 몸 바쳐 같이 자전거도 타러 나가고 집안에서도 끊임없이 언어자극을 줄 수 있는 놀이를 했다. 주말이면 나도 좀 쉬고 싶어서 남편과 아이 둘만 놀이터에서 놀고 오라고 일부러 내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아빠를 기다리게 된 이유는, 같이 운동을 하고 싶어서이다. 정확히는 야구공 던지기를 함께 하고 싶어서이다. 야구는 애가 너무 어렸을 때는 함께 즐기기 어려운 방식의 운동이었다. 최근에 야구를 보러 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스스로 배트와 글러브를 들고 야구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물론 대근육이 느려서 아직 몸이 많이 따라주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공을 치고받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지기는 했다.


내가 열심히 던져주고받아주고 했는데, 아빠랑 몇 번 하다 보니 나와하는 게 시시해졌는지 엄마랑은 재미없어서 야구를 같이 못하겠다는 거다.


'뭐... 뭐라고? 너 방금 뭐라고 했니..'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엄마는 아빠만큼 공을 잘 던져주지도 않고 공에 힘이 없어서 하는 재미도 덜하다는 아들이 말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드디어 네가 운동다운 운동을 좀 하게 된 건가 싶은 것이다.


아빠가 던져주는 야구공이 더 재미있고, 축구 연습도 아빠랑 하는 게 더 재미있다는 아이의 말을 나는 두 손 들며 가열하게 환영했다. 보통의 남자아이들이 할법한 멘트가, 평생 듣지 못할 것 같았던 그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감격스러웠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운동에 크게 흥미나 관심이 없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소싯적 동네에서 야구로 남의 집 유리창 깨 먹을 정도의 실력이었다는 말은 늘 해왔다. 다른 건 몰라도 야구는 꽤 좋아해서 자주 했다고 들었는데 본인의 아들과 직접 배트와 글러브를 가지고 하는 야구는 나름대로 재미있어하는 눈치다. 애 어렸을 때 데리고 놀아달라할 때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피곤한 티를 팍팍 내더니, 애가 축구공도 좀 세게 차기도 하고 야구공 던지는 실력도 좀 느는 걸 보더니 적극적으로 먼저 하자고 나선다.


부자가 야구 연습을 하고 있으면 나는 집안일을 하든가 앉아서 좀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걸 보는데 십 년이나 걸렸구나.


더군다나 외동에다가 사회성 발달이 느린 내 아이 같은 남자아이에게는 아빠의 존재가 더더욱 소중한 것이다. 동네에서 편하게 만나서 같이 운동할 친구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아빠가 유일한 운동메이트가 될 수밖에 없다. 센터 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다들 각자 치료 스케줄이 너무나 바쁘기도 하고 다들 형제가 있어서 그런지 우리처럼 간절하지는 않다.


여전히 퇴근 시간이 늦어서 같이 운동해 봐야 집안에서 십 분에서 이십 분 정도가 전부지만 아빠와 야구공을 주고받을 때면 즐거운지 자주 웃을 때가 많다. 한참 연습하다가 나에게 둘이 뛰어와서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열심히 설명하기 바쁘다.


아들은 커갈수록 의외로 아빠랑 더 잘 지낼 수 있고, 아빠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창 애가 어려서 아이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내가 전담할 때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최근에 그런 두 부자간의 친밀해진,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빠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큰 의미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하루에 잠깐의 시간이라도 아빠를 매일 보면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해외에서 영어를 배우고 선진 교육을 받는 것과 그래도 죽자 사자 우리 세 가족 함께 비비대 살 맞대면서 함께 사는 것 중 어느 게 더 아이에게 가치가 있을까, 아이의 미래에 뭐가 더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아직은 후자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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