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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Aug 02. 2021

#11 북서향 집에 노을빛이 들어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여름이 되자 해가 길어졌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늘었다.



북서향 집에서 햇빛을 마주하고 있으면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들어오는 손님처럼

빛은 조심스럽게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지는 빛이라 약하지만, 꽤 밝다.

오후가 되어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밖을 바라본다.


재택근무를 하면 시간의 흐름에 둔해진다. 작업을 집중해서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새하얀 종이와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보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면, 새하얗던 아침의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어있다. 서향의 창문에서는 눈부셔서 보지 못했던 노을이 북서향에서는 보인다. 희미하게 저물어간다.


북향이지만 서향이 끼여서일까. 열심히 작업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살며시 노을빛이 들어온다. 새하얀 커튼을 통과하지는 못해도 약한 빛은 유리창 너머 책상 위를 살며시 적신다. 매일 컴퓨터 작업으로 씨름하는 나에게는 이런 약한 자연 빛이 두 눈의 피로를 씻어주기도 한다.


눈이 부시지 않을 정도로 살짝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가늠한다.


오후 3시가 되면 간식시간이다. 따뜻한 차와 가볍게 먹을 간식을 내온다. 책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작업을 시도하지만 한번 막힌 스토리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벌써 한 달째다. 한 줄 쓰고 지우고 한 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거의 다 쓴 원고를 마음에 들지 않아 다 고칠 때도 있다.


그렇게 고치고 고쳐도 부족하다. 머리가 아프다.




책상에 매일같이 쌓이는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진통제가 위태로운 마음을 증폭시킨다. 이 무더운 여름날, 짜증도 한층 더 깊어진다. 


막혀버린 스토리와 컨셉 정리를 하다가 다 때려치우고 베란다로 나갔다. 잘되지 않는 작업 현황에 속이 상해 울고 싶지만 그럴 힘도 없는 무더운 여름이다. 뜨거움이 조금 식혀졌을 때 베란다 창문에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군데군데 보이는 녹빛 나무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힌다.


창가에 노을빛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찌들었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진다. 멈춰있던 머리가 돌아간다.


아. 사건 하나만 더 추가하면 스토리가 풀리는구나.
연결고리가 부족했던 거였어.
이 부분은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거구나. 


더 가볍게 생각하면 되었는데.

한 달 내내 막혀 있던 스토리가 풀리는 그 순간이 즐겁다.


작은 거로도, 막혔던 일이 순식간에 풀리기도 하는 인생처럼 창작도 그렇게 작은 부분으로 풀려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충전을 하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노을빛을 보고 싶어도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밤이 된다. 잠깐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하늘을 보지 못할 때가 늘어난다. 저렇게 새파랗고 이쁜 하늘인데도 하루에 몇 번 보지 못하다니. 늘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살아가게 된다.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오늘은 밀린 빨래를 널면서 노을을 감상해야겠다.


더운 여름날,

노을빛을 보며 북서향 집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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