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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Jun 12. 2021

#10 커튼을 달았습니다.

새하얀 커튼을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베란다와 커다란 창은 마음에 들었지만

큰 창으로 인해 밖이 훤히 보인다는 게 신경 쓰였다.


“커튼을 하나 달까?”

그래서 찾아보기 시작한 인테리어 소품들 덕분에

생활에 활기가 차오른다.


커튼은 집에 들어왔을 때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커튼이 집에서 보이는 면적이 넓은 데다가, 햇빛이 들어왔을 때의 집안 분위기도 좌지우지한다.


나는 원래 녹색의 커튼을 좋아했었다.

정확히는 리프 그린(leaf green).

노란 끼가 감도는 어린잎의 녹빛을 좋아한다.


햇빛이 들어왔을 때 방이 녹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보이는 녹빛 때문에 가끔은 숲 속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녹색의 커튼이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면 있지만, 마음에 들면 사이즈가 없고, 사이즈가 있으면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녹색의 커튼은 햇빛이 들어와야 예쁜데, 북서향 집은 햇빛이 거의 안 들어오잖아?


그런 단순한 이유로, 나는 녹색 커튼을 포기하게 되었다.





인테리어 소품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어떤 커튼을 달까 다시 고민하다가 ‘할인’이 붙어있는 커튼 하나를 발견하였다. 거의 반값에 가까운 할인에, 색도 하얀색이다. 조금 긴 게 흠이지만 사이즈도 적당해서 마음에 든다.


사자.


핑크, 녹색 등. 늘 컬러가 있는 커튼만 달아보다가 처음 산 새하얀 커튼.


그런데 받아보니 커도 너무 컸다. 가로 사이즈는 딱 되는데, 세로가 너무 길다.


오랜만에 재봉틀이나 해볼까? 긴 커튼을 핑계로 싼 재봉틀 하나를 구매했다.


일본에서 처음 재봉틀을 써본 뒤, 한국에 가면 꼭 사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쓸 일이 없어 구매를 미뤘다가

이렇게 얼떨결에 구매하게 되었다. 생긴 건 장난감 같아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놔둬도 귀여울 것 같다.


커튼의 사이즈를 재고 재단을 한다. 오랜만에 쥔 재단 가위의 느낌이 좋다. 사각사각 잘 잘린다. 시침 핀을 박고, 장난감 같은 재봉틀로 박아본다. 꼭 소꿉놀이하는 기분이다.


덜덜 덜덜덜덜


역시 싼 만큼 자주 덜덜덜거린다. 재단이 좀 삐뚤게 된 것 같지만. 뭐 어때. 

커튼도, 재봉틀도, 재단 가위도, 심지어 시침 핀까지 모두 싸게 산 거라 부담이 전혀 없다.


즐겁게 커튼을 수선하고 달아본다.

커튼을 달기 전 주문한 커튼 봉의 부품 몇 개가 누락되어 커튼 봉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일이 있었지만

괜찮아. 달기만 하면 되지 뭐.


키가 작아 의자 위에 올라서도 손이 조금 모자란다. 아슬아슬 위험하게 까치발을 든 뒤 겨우 커튼 봉과 커튼을 달았다. 그렇게 새하얀 커튼을 달고 나니 빛이 들지 않아도 집이 화사해졌다.


커튼 하나로 집 분위기가 바뀌다니.

은근히 힘들었던 커튼 달기도 뿌듯하게 느껴졌다.


북서향 집에 새하얀 커튼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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